에필로그: 어떤 동생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편지

소설 연재

by 서인석

오빠의 '그 생활'이 마무리된지는 벌써 1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종종 "입원한 이야기만 안했더라도.."라며 저를 책망하시기도 합니다. 그래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오빠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오빠는 표현이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엄마와 나를 아끼는 사람입니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가장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오빠가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던지고, 차 한대에 망원경을 싣고 '그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엄마와 제가 단 한마디의 걱정도 표현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기도 했어요.

항상 많은 것들을 미뤄놔야 했던 오빠의 하루하루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큰 일이 아니었던 엄마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오빠의 '그 생활'이 계획대로 딱 100일을 채웠더라면 오빠는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아마 오빠가 '엄마가 입원했던 기간이 있었다'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더라면, 훨씬 더 큰 짐으로 남았을 거에요.



저는 이 블로그가 있는 줄, 오빠가 '그 생활'을 끝낸지 한두달을 넘기고서야 우연히 알았어요. 처음에는 건조하게 쓰여진 이 블로그가 마치 오빠의 '실험일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의 타임라인을 따라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어떤 소설보다도 재밌게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막연히만 알고 있었던 오빠의 별에 대한 사랑, 하늘에 대한 사랑,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조금 민망하지만 '오빠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빠는 지금은 블로그를 잘 안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깐 이렇게 방치되어 있겠죠?

오빠가 컴퓨터하는걸 본 적이 있는데, 별 사진은 매우 자주 보긴 하더라고요. 가끔은 오빠답지 않게 흥분해서, "야, 성연아, 이 성운은 진짜 잘 찍지 않았냐?"하면서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아마 저장해놓은 원본을 보는 거겠죠?



엄마와 저는 오빠가 더 경험하지 못한 23일의 '그 생활'이 한동안은 미안했어요. 정작 오빠는 '그 생활'을 77일이나 해낸 것에 대한 뿌듯함이 더 큰 것 같았어요. 한번 세 가족이 모여 소주를 마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 때 엄마가 미안하다고 얘기하니깐, 오빠는 '100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얘기하면서, '세상은 계획보다 계획 안 한 일들이 열 배는 더 많이 일어나더라, 돌아온 것도 사소한 계획 변경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77일동안 봤던 별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곤 합니다.



오빠의 노트북에 깔려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해서 잠깐 빌렸어요. 제가 종종 들어가곤 하던 오빠의 블로그를 이렇게 들어오니깐 기분이 이상하네요. 1년전 특정 시점에 멈춰있는 게시글과는 대조되게,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댓글들을 보게 되었어요. 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오빠의 생활을 동경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댓글을 달았구나,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오빠가 일부러 블로그를 더는 들어가지 않는지 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오빠는 기본적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이런 것들을 하는 성향이 아니에요. 아마 이 블로그도 전적으로 개인적인 용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블로그를 본 김에, 오빠의 소식을 기다리는 분들께, 몇마디 소식 정도는 대신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뭐, 혹시라도 오빠가 언젠가 블로그를 보고 맘에 안든다면 이 글을 알아서 지우겠죠?



오빠는 요즘 뭐하는지 궁금하시겠죠? 오빠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회사를 다닌지 반 년 정도 됐어요. '누리호'를 발사했던 고흥의 우주센터와 협업을 하는 외주 회사입니다. 우주 사진 촬영 관련 기술을 주고받는 연구회사인거 같아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오빠에게 맞는 회사를 찾은 것 같고, 회사에서도 필요한 사람을 구한게 아닐까 짐작할 수는 있었어요.

아직도 도대체 오빠가 무슨 계기로 나름 안정적이고 괜찮은 삶을 살다가, '그 생활'을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오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건, '그 생활'이 오빠의 안정적이었던 커리어에서 단절을 가져온 건 절대 아니었다는 거에요. 저는 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빠의 촬영이 얼마나 만족스러웠고 성공적이었는지는 몰라요.

다만 '그 생활' 자체가 오빠에게는 일생동안 다시 겪을 수 없는 큰 일탈이자 해소의 역할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생활'을 기점을 오빠의 삶은 아마 훨씬 더 활기차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빠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그 열정어린 눈빛들에서요.



세상의 여느 남매들이 그렇듯, 어쩌면 오빠도 저에게는 '오빠새끼'정도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 생활'과 관련해서는 저는 감히 오빠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꿈 때문에 대부분의 것들을 한 순간에 놓고 뛰쳐나가는 그 용기를, 무려 피를 나눈 가족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지요. 그렇게 오빠가 채워온 꿈과 용기와 열정은 온도가 너무 높아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그 에너지를 나누어주고 있다는걸, 오빠에게 언젠가는 말해주고 싶었어요.



며칠째의 이야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은 짤막하게 써진 이 글일겁니다.

- 구름에 하늘이 가려서 거의 안보임. 동네 사는 어떤 여자분이 사흘째 별을 보고 싶다고 찾아옴. 그나마 잘 보이는 B별을 위주로 몇가지 설명.


오빠와 저는 그다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에요. 대부분의 남매들이 그렇겠지요. 그래서 오빠가 누굴 만나고 연애를 하고 이런 이야기를 저는 전혀 몰라요. 하지만 오빠는 아주 가끔 어딘가 멀리 훌쩍 떠났다 오는거 같긴 해요. 전라남도에서 강원도면 가까운 거리는 아니죠. 별만 보겠다는 목적이라면 여기 어느 산골을 가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빠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만 열어둘게요. 더이상은 저도 잘 몰라요.



오빠의 일탈이 많은 분들에게 소박한 전율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오빠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글 또한 오빠가 언제 볼 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여느 남매가 그러하듯 오빠에게 직접 말하기에는 너무 민망하고 오글거리기 때문에, 이 글에서나마 남기려고요.


오빠가 자랑스럽고, 오빠의 일탈의 날들과 지금의 날들 모두를 응원한다고 말이에요.


모두가 태양일 수 없지만, 아주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는 별이라도, 어딘가에서는 반짝이는 별일 거에요. 오빠의 반짝거리는 하루하루를 응원한다고, 또 그렇게 나도 내 자리에서 반짝거리기 위해 노력할 의지가 생긴다고 남기며 이 글을 마치렵니다.


모두들 어디서든지 반짝거리시길 기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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