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의 마음

TEXTIST PROJECT

by 서인석

쿵-

가운데 자리 어디쯤에선가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빠르게 번졌다.


주일미사를 보는 중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정적인 미사 자체의 분위기와 어르신들이 많다는 상황이 맞물려서인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만 이어졌다. 몇 안되는 '젊은' '남자'였던 나는 후다닥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수녀님의 부축을 받은 한 학생이 정신을 잃은 상태. 재빨리 반대편 어깨를 받치고 환자를 밖으로 옮겼다. 몇몇 신자들이 도우며 따라 나왔다.

학생을 마당에 뉘였다. 중년 자매님들께서 어찌할줄 몰라하며 말수를 늘렸고, 안으로 옮길지 앉혀야 될지를 걱정하며 논쟁했다.


하지만 나는 학생을 평평한 곳에 반듯이 눕힌 후, 의식을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뒤집었다.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 있었다. 바로 입을 눌러 열었는데 혀는 말리지 않았다. 일단 다행이다. 다시 학생의 어깨와 볼을 짚으며 의식을 확인했다. 학생은 슬며시 눈을 떴다가 금세 또 감았다. 정신이 약하게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신자분들 중 한 분이 119에 신고를 했고, 그 사이 학생이 정신을 점점 차렸다. 학생의 어머니가 성당으로 달려왔다. 학생은 조금 놀란것 같았다.

"친구, 어디 몸 부딪힌 느낌은 없나요?"

라고 먼저 물었다. 정신차린 환자에게 이 질문을 먼저 한 이유는, 첫째로 쓰러지면서 정말 어딘가 심하게 부딪히진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로는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가 되고 인지가 어느 정도까지 돌아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걱정과 놀람으로 가득찬 옆 어른들은 "세게는 안부딪혔어요.", "부딪히진 않았어요." 등으로 대신 답했다. 첫째와 둘째 목적 모두 확인하지 못했다.


구급대가 도착했다. 대원에게 빠르게 설명했다.

"잠깐 의식이 없다가 지금은 이렇게 깼어요. 혀가 말려들어가지 않은 걸 확인했고, 바로 심폐소생술 하려 할때쯤 정신을 차려서 의식확인만 반복했어요."

놀란 탓인지 학생의 눈에서는 누운 채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와주신 신자분들 덕분에 학생은 119에 안전히 인계될 수 있었다. 나는 당황하진 않았음을 고백한다.


대신, 학생을 어깨에 싣고 밖으로 옮기며, 어떻게 눕히고 어떻게 의식을 확인하고 어떻게 119를 부르고 어떻게 심폐소생술을 해야될지를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그렸었다.

그림은 선명했다. 정말 우연히도 최근 심폐소생술 교육을 이수했었기 때문에, 걱정은 됐지만 절차에 대한 겁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조금만 빠르고 적절하게 조치한다면, 가장 중요한 시간에 할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정말 다행히도 머릿속의 선명한 그림보다 빠르게 학생은 의식을 찾았다. 그렇다고 상상 속 예행연습이 불필요했을까. 전혀 아니다. 만약 최근의 교육이 없었고 내가 머리나 마음으로 준비되어있지 않았다면, 나 또한 걱정으로 우왕좌왕하는 머릿수 하나를 추가했을지 모른다.


'훈련을 실전처럼, 실전을 훈련처럼'이라는 표어를 군 훈련장에서 종종 마주할 수 있다. 훈련이 잘된 군대가 잘 싸울 수 있는 이유는 정말 준비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군인 개개인이 그들 스스로 준비가 잘 되어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감이다. 당황할 시간, 우왕좌왕할 시간을 소거하는 자신감.


준비의 중요성이라는 뻔한 말을 경험하게 됐다. 사실 밖으로 표출된 내 행동과 도움은 별게 없다. 환자를 옮겼고 눈과 혀와 의식을 확인했고 구급대에게 인계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AED라는 용어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고 심장압박을 하기 위해 서둘러 팔을 걷었다. 준비되어 있었기에 걱정과 겁을 개별의 감정으로 분리시킬 수 있었다.



중학생이라고 했던 학생은 잘 돌아갔을까. 엄마와 구급대가 함께 갔으니 금세 괜찮아졌을 것이다. 창백해졌던 학생의 피부와 놀라서 흐른 눈물이 떠오른다. 학생이 평안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길. 따듯하고 푹신한 꿈을 꾸길. 오늘의 일을 사소하게 넘겨버리고 평범한 월요일을 맞이하길. 비록 이름도 모르는 친구지만, 눈이 떠지고 동공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깊이 느꼈던 고마움의 안도감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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