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May 23. 2020

조앤 롤링 "저주받은 아이"

책리뷰

<때론 묻어두는게 더 아름다울지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가져온 문학계의 파장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저 나와 같은 시대를 보내온 이들은 해리 포터라는 소년과 함께 청소년으로 자라고, 청년으로 컸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조앤 롤링이 남긴 이 대작은 수 많은 매체들을 통해 재탄생되었다. 롤링이 어마어마한 부호가 되었음도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입체적인 캐릭터와 깊은 고뇌가 담겨있는 선악의 구도를 통해 재미를 증폭시켰다. 또한 소설의 가장 마지막 결말로 나와야 할 권선징악과 엔딩이라는 기본 뼈대 외에도, 정말 그 세대의 소년들이 겪을 고뇌들을 선명하고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7권으로 완결된지 십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리포터의 매니아들은 세계관을 이어나가고 있고, 확장시키고 있으며 더 자세한 묘사들을 곁들이고 있다. 영화로 재현된 본작 이외에 '신비한 동물사전'도 나왔다. 오늘 소개하는 '저주받은 아이'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해리포터에 대해 내가 갖는 애정이 큰 만큼 이런 류의 스핀오프나 연장된 세계관 -확장된 세계관과는 명확히 다르다-은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다. 무분별하게 작품이 연장되면 분명 설정 오류도 생기고, 갸우뚱하는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본작에 대한 애정과 몰입도를 극도로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끝판왕'은 가장 강해야 한다.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나 엑스맨 시리즈, 영화 킹스맨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사실 알고 보니 더 강한 녀석이 있었다!'는 설정들이 덧붙여질수록 독자나 관객들의 집중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본작/원작에서는 마음졸이면서 봤던 순간들이 '흥, 어차피 저 악당은 주인공에 의해 패배하고, 더 쎈 악당이 나올테니깐.'이라는 잠재적인 짐작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무리한 작품의 연장은 작가나 제작자들이 '와, 이거 너무 질질 끌었다.. 어떻게든 되돌리지 않으면 기존 팬들이 다 침을 뱉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이를 무마시킬 설정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직면한다. 그 순간부터 창작자들은 하지 말아야 할 무리한 설정을 또 덧붙여야 한다. '사실 꿈이지롱!', '시간을 돌리면 되지롱!',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지롱!' 등이 그런 류다.


 영화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가 무분별하게 연장되면서 생겨버린 오류들과 클리셰들을 바로 잡아준 엑스맨 시리즈 프리퀄의 두번째 작품이다. 영화 자체는 한동안 엑스맨 시리즈가 들어오던 혹평들을 뒤집으며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애당초 엑스맨 시리즈가 무리하게 뻗어나가지 않고, 적정선에서 프리퀄로 넘어갔더라면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좋은 평들로 이어나갔을 것이다. '더 울버린', '아포칼립스', '다크피닉스', '최후의 전쟁' 모두 오히려 나와서 욕먹은 작품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인물과 작품성에 집중한 '로건'은 매우 좋은 평을 받았다. 팬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박수받으며 퇴장시키느냐를 보여준 매우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해리포터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선 해리포터 시리즈가 완결된지 십 수년이 지났음에도 재창작되고 있는 점에는 매우 자긍심을 갖고 있다. 내 상상 속, 기억과 추억 속의 한 소년이 잘 성장한 후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뿌듯함을 준다. 앞에서 묘사했듯 나와 그 세대들은 같이 자라온 기분이기 때문이다.

 '저주받은 아이'는 연극 대본이다. 거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극을 실황으로 관람한 사람들은 책으로 접한 포터의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아 이렇게 세대가 옮겨질 수 있겠구나'로 한 번 즐기고 끝낼 수 있다. 결정적으로 연극과 소설은 표현 매체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왜 굳이 롤링은 이를 책으로까지 내었어야 했는가. 책으로 담겨버리는 순간, 그리고 책에 롤링이라는 저자 이름이 실어지는 순간부터, 팬들이 기대하는 수준은 극도로 높아진다. 완벽한 결말로 최고의 마침표를 찍은 작품에 원작자가 다시 등장했다면 그 마침표보다 더 완벽한 마침표가 있어야만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가. '죽음의 성물'에서 한 세대가 넘어가고 자연스레 이어질 소설로서의, 혹은 그 정도 수준의 롤링 작품을 기대한 이들에게 과연 만족을 줬는가? 그저 다른 수 많은 창작물들이 원작의 성공에 도취되어 이야기를 덧대고 덧대는 형태를 답습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소설의 형태가 아니라 연극 대본의 형태로서.


 우리는 볼드모트라는 악당을 해리포터가 성장하고 고통받는 7년동안 함께 물리치려 노력했다. 그만큼 볼드모트는 강력한 악당이었다. 그 주변에 포진한 죽음을 먹는 자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 정도로 강력한 악당이 이렇게 쉽게 다시 나타났다. 위에서 말한 쓰지 말았어야 할 설정이다. '사실 더 강력한 악당이 있었지롱.' 그런데 그걸 막기 위해 쓰지 말아야 하는 설정을 다시 써버린다. '시간을 되돌리면 되지롱!'.


 책을 통해 상업적인 이득을 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소설가들이 가난하다는 통념도 대부분 옳다. 소설로만 부자가 된 이들은 극도로 드물다. 소설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들은 그에 준하는 수입이 영화나 영상 매체에서 지불한 저작권료로 거둬진다.

 성공한 작품으로 상업적은 성공을 다시 노리는 일이 나쁜 것이 아니다. 소설가도 먹고 살아야 한다. 다만 조앤 롤링은 그럴 필요가 없는 수준의 작가다. 새로운 도전은 응원하지만, 그 도전으로 인해 해리포터라는 완성된 그림에 더 멋진 무늬를 그려 넣으려다가 물감을 엎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출판은 되었고 엎질러진 물이다. 제발, 제발, 제발, 그만. 여기까지만..

작가의 이전글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