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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05. 2023

홍범도와 오펜하이머, 대답이 정해진 작은 방에서

영화리뷰

 영화 <오펜하이머>는 평단의 찬사를 넉넉히 받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과학에 대한 헌사'와도 같은 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과감하고 세밀한 플롯 배치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세상의 이야기와 매칭시켜보려 한다. 




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다. 대답은 해보든지.


 홍범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만약 홍범도 장군이 먼 세계에서 이 논란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채팅창에 물음표를 남발하고 있을지 모른다. 생전에는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사실과 사건이, 생후에 발생한 사상과 철학으로 재단되면서, 가치판단이 이뤄지는 우스운 상황 말이다.


 <오펜하이머>는 크게 세 개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컬러로 표현되는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분) 시점의 이야기, 그리고 좁은 방에서 진행되는 비공식 청문회, 마지막으로 흑백의 스트로스 제독(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의 공직 통과와 관련된 청문회 시점이다. 

 여기서 두 번째 시점을 주목한다. 좁은 방의 비공식 청문회 말이다.

 

 이 부분을 집중해서 관람하다 보면 터무니없는 답답함에 하품이 나오거나 얼이 빠진다. 

 묻는 이들은 뭐를 묻는지 확실하지 않다. 묻는 이들은 답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묻는 이들은 답을 정해 놨다. "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다."라는 답 말이다. 


 그리고 이 답에 맞춰질 수 있는 온갖 요소들을 하나하나 갖다 붙이는 형태로 문답이 진행된다. 오펜하이머의 관점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 관객들은 당연히 답답하다. "아니 시방 저게 뭔 개떡 같은 질문이야?"라는 생각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감독 또한 이 좁은 방에서의 청문회 씬이 관객들에게 어이없는 답답함을 온전히 선사하도록 플롯을 배치한 듯하다.




대답을 듣는 건 질문자의 목적이 아니다


 홍범도가 빨갱이인지 아닌지가 2023년 세상에게 중요한 질문인가? 아닌 듯하다. 이미 홍범도 장군이 빨갱이라는 답은 정해진 상태에서 각종 스피커들에 의해 같은 문답이 읊어지고 있다. 무엇을 묻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질문들 말이다. 그나마 오펜하이머는 생존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뭐라도 답을 할 수 있었지만, 홍범도는 사자(死者)이다. 자신을 향해 각종 문답들이 난무함에도 한마디도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다시 오펜하이머의 좁은 청문회 방으로 돌아온다. 

 묻는 이들은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라는 답을 여전히 정해 놓은 상태다. 이들에게는 오펜하이머의 대답이 중요하지 않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에게 굴욕과 비참함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영화에서는 오펜하이머를 치욕스럽게 만드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쏟아낸다. 

 

 바로 이때,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알몸이 된 오펜하이머를 비춘다. 불륜 상대인 진 태틀록(플로렌스 퓨 분)을 갑자기 알몸으로 청문회장에 등장시키는 묘사를 활용한다. 오펜하이머의 왼쪽 뒤에는 부인키티(에밀리 블런트 분)가 앉아있다. 오펜하이머가 느꼈을 치욕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오펜하이머는 맞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성실하게 내밀지만 결국 아무 의미 없다. 오펜하이머의 치욕스러움은 사라지지 않고, 청문회장에서의 문답은 어떤 결과를 향해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은 오펜하이머가 느꼈을 무력감과 절망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 후로 오펜하이머는 과학적인 명예뿐 아니라 개인적인 명예까지 완전히 실추된 채 조용히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때는 영웅이고 지금은 아니다, 근데 또 바뀔 수도 있음


 국방부의 유튜브에서는 홍범도가 왜 공산주의자가 아닌지, 그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혁혁한 전공을 세웠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2018년에 업로드되었던 이 영상이 2023년에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국방부의 유튜브에서 알려주었던 홍범도의 전공이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묻는 이들은 뭘 묻는 것일까. 


 홍범도는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장에 알몸이 된 채로 앉아있다.  


 <오펜하이머>에서 스트로스 제독은 끊임없이 과학자들에 대한 자신의 컴플렉스를 드러낸다. 특히 아인슈타인(톰 콘티 분)과 오펜하이머가 만날 때, 스트로스는 '분명 그들은 나를 모욕했을 거야'라고 단정 짓는다.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가진 과학자들이, 권력과 부만을 가진 스트로스를 '당연히' 무시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작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 제독과는 전혀 상관없는 더 먼 미래의 논의를 나눴는데 말이다. 결국 오펜하이머를 청문회장에서 알몸으로 발가벗긴 건, 당사자는 전혀 모르는 시선에 의해, 힘만 가진 누군가의 컴플렉스였다는 사실이 갑갑하다. 



 세상은 2018년에는 영웅이었던 자를 2023년에는 발가벗겨서 청문회장에 앉혔다. 지구상에서 처참히 패배했고 완벽히 실패한 공산주의 사상에, 아직도 컴플렉스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저 '내 편 감별기'


 사실 이 세상은 누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오펜하이머가 실제로 공산주의자였다고 하더라도 그가 친정부적인 자세로 수소폭탄 제조에 참여했다면, 그 청문회장에 앉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 오랫동안 영웅대접을 받으며 높은 직위에 올랐을지 모른다. 


 세상은 엉망이다. 

 그저 내편 네편을 나누고 있고, 어떤 상징물을 족쳐야 그 편을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 계산할 뿐이다. 홍범도 장군은 괜찮은 기준선이자 감별기로 선정됐을 뿐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기준선 왼쪽과 오른쪽으로 '헤쳐 모여'하고 있다. 자신이 과거에 홍범도 장군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다. 지금 어디로 줄 설지가, 그들 스스로에게는 소중한 요소로 보인다. 과거와 말을 뒤집는 행태가 발굴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부끄러워야 하는 건, 결국 그들에게 표를 준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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