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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09. 2023

10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4)


비로소 돌아온 사이클


 조선업이 호황기일 때는 '거대하다'는 업계 특성이 경영진에게도, 임직원에게도, 지역의 입장에서도 이득이 되었다. 그러나 불황에는 정반대다. '거대하다'는 말은 '가만히 있어도 지출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로 치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형 조선사는 '빅3'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HD한국조선해양(구 현대중공업),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다. 

 2010년대 이후 중국 조선사들의 약진으로 인해 3대 대형 조선사들을 비롯한 국내 관련 기업들은 위기에 처했다. 그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다.(여기에는 오너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얽혀 있을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그룹, 지주사 체계를 출범시키고 회사를 쪼갰다.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 한화가 인수를 준비하는 사이에 10년 동안 묵혀져 있던 분식회계가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한화오션이 인수한 상태이다. 

 삼성중공업은 힘겨운 2위 싸움을 오랫동안 지속해 오며 사업의 방향성을 모색했다. 플랜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삼성중공업의 사정이 좋지 못했다는 점은 2013년에 함께 입사한 삼성그룹 동기들 중, 삼성중공업 소속의 동기들은 10년째 '성과 인센티브'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점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리라.(최근 수년만에 '목표 인센티브'를 지급받긴 했다.)


 2018년 무렵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차치하더라도, 중국의 선박들을 사용해 본 선주사들의 불만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품질면에서 한국의 선박들과 차이가 심하다는 것.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1)'에서 선주사들의 입장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이 정도 금액차이가 나면 고장 나서 버려도 싸게 먹히겠는걸?" 

 중국 선박을 써본 선주사들은 곧 알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그 '고장'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말이다. 한번 사서 7-8년 타고 바꾸는 자동차로 생각하면 안 되었다.



2018년 이후 한국 조선업은 다시 궤도에 올라오는 듯했다.(출처 : 네이버 기사 검색)

 한국 조선업계의 선박 수주량이 서서히 늘어났다. 사이클이 돌아온 것이다. 이제 조선업계는 다시 과거의 위상을 기억하며 도크에 물을 채우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무렵의 한국 조선업을 대하는 언론의 타이틀은 꽤 희망차 보였다.




사람이 없다


 기업은 효율성이 집약된 조직체이다. 전원책 변호사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기업은 원숭이와 사람 중에 원숭이가 일을 더 잘하면 원숭이를 채용할 것이다." 

 표현이 거칠어 보이지만 기업의 속성에 맞는 말이다.


 문제는 조선업의 사이클이 길다는 점이고, 필요한 능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빨리빨리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IT업계와는 다르다. 특히 관리자 급으로 갈수록 이 현상은 심화된다. 불황기의 사이클을 거치며 '효율화'를 명목으로 조선사들은 인력을 줄였다. 만약 조선사들이 활황의 사이클을 다시 맞이했을 때, 제대로 날아보겠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면 필요한 관리자급 인력들이나, 근속연수가 긴 '장인'들은 '효율화'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앞서 얘기한 기업 구조 변화 과정을 거친 조선사들은, 경영승계나 지분 관리 같은 이해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우선순위였을 것이다. 


 중국과의 수주실적 경쟁에서 다시 그래프가 올라오는 중이다.(왼쪽, 출처 : 연합뉴스), 빅3 조선사들은 부족한 인력을 외국인 노동자로라도 메꾸려 한다.(오른쪽, 출처 : 동아일보)

 돌아온 사이클을 조선업계들은 뒤숭숭하게 맞이하고 있다. 수주를 따와도 일할 사람이 없다. 울산과 거제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달리 많이 보인다. 서울과 수도권 쏠림현상으로 인해, 어떤 산업군이건 지방에는 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없다'라고 울상인 청년들의 분위기라면 너도나도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조선업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업무 강도나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갈만한' 회사들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거 받고 이렇게 일해?"라는 분위기는 오래됐다. 게다가 지난 불황기를 핑계로 대형 조선사들의 임금은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3대 조선사들은 뒤늦은 인력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형 조선사들의 일감이 많아지면 중소 조선사들도 바빠진다. 안타깝지만 조선업이 강력한 하드 파워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소프트 파워를 너무 많이 잃었다. 지난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의 (2)편과 (3)편에서 언급한 '과하다 싶은' 지역 사회와의 활동은 불황기를 명분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힘든 일'이라는 인식도 팽배해 있다. 



2018년 이후의 희망찬 기사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특히 이데일리의 기사 타이틀은 '인력을 해외에서라도 데려와야 할 정도'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단순히 임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임금 이외의 소프트 파워도 꾸준히 하락해 왔다. 당연히 조선사들의 인력 수급에 그대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이다.



부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조선사들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삼성중공업으로 발령받은 동기들은 다가온 호황의 사이클에 성과인센티브를 최초로 받을 수 있을까. 


저가수주로 세계시장을 공략한 중국 조선사들은 업 자체가 가지는 하드 파워적 특성을 잘 공략했다. 거대한 사업에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여하면 충분히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특징이다.

 그러나 선주사들이 슬슬 고개를 젓기 시작한 까닭은 결국 소프트 파워를 향상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을 중국이 증명한 셈이다. 이제 중국의 조선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동안 중국이 가지고 있던 국가 자체의 소프트 파워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 조선업계는 뼈를 깎는 품질 개선을 이룩해야만 한다. 한국 조선업계가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온 노하우나 결과물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한국 조선업계조차 기회를 맞이하자 비로소 위기가 또 눈에 보인다. 한국의 조선사들이 선주사들에게 찬사를 받던 시기의 인력들은 과연 업계에 남아있는가. 장인들은 다시 기지개를 켜며 도크에서 노동자들과 열정 넘치는 기술 논의를 하고 있는가. 중국 조선사들이 뒤집어쓴 오명이 한국에도 유효해선 안 된다. 

 최근 IT회사들은 '의자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허먼밀러'사의 의자를 구매하여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허먼밀러 의자는 개당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효율성과 이윤추구가 기업의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인 비용 지출로 보인다. 

NHN, 네오웨즈, 엔씨소프트 등은 허먼밀러 의자를 직원들에게 제공했다. 사진은 안랩.(출처 : 한겨레)

 그러나 직원들의 만족도를 들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루 8시간 이상씩 책상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는 개발자들에게 '직원들의 허리와 목, 자세 보호를 위해, 회사는 이 정도의 비용도 아깝지 않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다. '쏠 거면 제대로' 쓴 사례다. 

 IT 분야를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도 '허먼 밀러 의자'는 소프트 파워를 발휘한다. 단지 "그 회사 가면 좋은 의자에서 앉을 수 있어."가 아니다. "그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회사니까-"가 되는 것이다. 대형 조선사들이 호황기에 지역사회와 임직원 가족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했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강력한 하드 파워로 이룩한 성과들 중 일부를 소프트 파워에 재투자하고, 이 소프트 파워의 향상으로 좋은 인력이 유입되거나 재직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선순환이 생긴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대형조선사들이 움츠러 있는 동안 세대가 바뀌었고 더 이상 조선업과 조선사들은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다. 반짝반짝한 취업준비생들은 반짝반짝한 업종과 기업 앞에 줄을 서있다. 한국의 조선사들은 하드 파워로부터 분출되는 에너지를 소프트 파워로 이어지도록 다시 순환 고리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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