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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01. 2023

09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3)


그 외의 기억들과 그로 인해 생긴 이미지


 현대중공업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만큼 울산시 동구의 다양한 행사 일정은 현대중공업에 의존했다. 가령 각 학교들은 사립 공립을 막론하고 현대중공업의 하계휴가 기간을 공유했다.


 내가 어릴 때는 '현대어린이 미술대회'라는 행사를 현대중공업에서 주최했었다. '미술대회'라는 명칭이었지만 사실은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거대한 놀이 같았다. 어린이날 개최되었던 이 행사 때 현대중공업은 개방되고 영빈관 잔디밭에 가족단위로 편한 곳에 앉거나 누워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부모들은 여가를 즐기곤 했다. 그림을 그리느라 힘들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 그저 잔디에 누워서 보이는 풍경이 맑고 밝았던 기억, 땀나게 뛰어노느라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동구 전체의 행사와도 다름없었던 이 행사동안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아빠의 회사'가 얼마나 행복한 장소인지를 느꼈을 것이다. 그것도 매년 말이다.


2003년의 현대중공업 사내 홍보기사. 기사 및 본문에 소개된 미술대회는 조선업 불황기를 거치며 규모가 축소되었고, 현재는 현대백화점에서 주최한다.(출처 : HD현대중공업)

 

 이외에도 종종 현대중공업 주관으로 주최했던 큰 규모의 페스티벌이나 여름캠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동구를 떠나지 않고도 즐거움을 발산시킬 수 있었던 기회였다. 

 서울, 수도권에서 일상을 영위했던 이들에게는 '그래봐야 일개 기업 내부의 행사 아닌가.'라고 치부될지 모른다. 그러나 모르는 소리. 위에 소개한 행사들은 조선업 호황기,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호황기에는 단언컨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행사였다. (호황기의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도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가족 행사들을 꾸준히 진행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솔직히 말하면 근로자 당사자들에게 현대중공업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회사였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회사원인 입장에서 어쩌면 이 질문만큼 무의미한 질문도 없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근로자의 배우자들 중 '나의 배우자가 이 회사를 떠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근로자 본인의 만족도는 확인할 수 없더라도, 근로자 가족들의 만족도는 상당했다.

 

2010년 10월에 현대중공업에서 주최한 '현대백일장' 행사(위, 출처 : 뉴스와이어), 2010년 5월에 삼성중공업에서 주최한 어린이날 행사(아래, 출처 : 거제타임즈)

 

 이 생각은 자녀들에게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아빠의 회사에 대해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이 대부분인 자녀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현대중공업은 어쩌면 처음 울산 조선소 도크를 열었던 70년대 후반부터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소프트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것일지 모른다. 근로자 본인들에게는 '어쨌든 직장'으로 한정될 뿐이지만, 그들의 가족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꾸준히 투자해 왔으니 말이다. 


 현 HD현대의 정몽준 총수는 1988년 정계에 입문한 후 울산 동구 의원으로 무려 5선을 지냈다. 이후 당적의 변경과 전략적인 출마를 통해 타 지역에서 의원대수를 늘렸다. 정몽준 의원이 울산 동구에서 압도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현대중공업 때문이다.(울산 동구의원으로 출마했던 13~17대 국회의원 선거까지의 정몽준 의원 득표율은 모두 50%를 상회한다. 14, 15대 선거에서는 70%를 넘겼다.)


 만약 근로자들이 소속 조직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못했고, 그 가족들 또한 부정적인 인식이었다면 20년 동안 압도적인 득표율의 의원으로 자리 잡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매우 개인적인 내용으로 '내가 어린 시절에 느낀 현대중공업의 이미지'를 서술했다. 찬양 일색으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 분명 조선업 자체의 업황이 매우 좋았고, 회사의 재무적 상황이 괜찮았으며, 지역사회가 현대중공업에 상당히 협조적이었다는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현대중공업 또한 울산 동구에 여러 기여를 했지만, 사실 이 또한 기업 스스로를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할 수 없다. 동구 주민들 대부분이 자사의 근로자이니 말이다. 다른 국내의 조선사들이 비슷한 기간에 지역사회에서 어느정도까지 비슷한 모양새였을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업은 사이클이 극단적인 업종이라는 점과, 한 개의 지역사회가 해당 업종에 거의 대부분 투입되어야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특징을 감안한다면, 분위기 자체는 다르지 않았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좋은 이야기들은 뒤로하고 다음 편을 통해 최근 조선업은 어떻고, 그들의 소프트 파워가 어떤 형상으로 변했는지를 꼬집어보도록 하겠다.


('10 막강한 하드 파워로부터(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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