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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07. 2024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2)

루카의 단편집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1)'에서 이어짐)


 소울이의 코마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에서는 뇌의 활동량과 재생력 분야의 전문가인 한시연 박사를 섭외했다. 단기 채용 계약에 싸인한 한 박사는 첫 출근일부터 소울이의 뇌파분석에 몰두했다. 그녀는 우선 혼수상태에 있는 소울이의 뇌파와 에너지 소모 총량, 발생 전력량 등을 분석했다. 그리고 권기득 박사가 남겨놓은 데이터와 비교하며 분석했다. 이후 한 박사는 여러 연구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수석 연구원 중 한 명인 오성한 박사와의 질의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 박사는 권기득 박사와 가장 오랫동안 연구를 수행했고 소울이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원해왔다. 


 “소울이가 3~4주 간격으로 재차 방전됐는데 어떻게 깨웠나요?”

 “신체의 여러 수치들을 확인한 후 뇌에 순간적인 전기를 흘렸습니다.”

 “뇌 자체의 성능에 해를 주진 않았을까요?”

 “혹시 그렇게 될까봐 권 박사께서는 철저히 뇌의 상태에 대해 데이터 분석을 끝낸 후 리부팅을 진행했습니다. 소울이의 생활을 직접 지원하는 연구원들도 소울이 상태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분석을 했었고요.”

 “아, 미안해요. 추궁하려는 건 아니에요. 리부팅이라는 같은 방법을 여섯 달동안 다섯 번이나 반복했길래 혹시나 해서 물은 거에요.”

 오 박사는 경계심을 조금 낮춘 후 대답했다.

 “일단은 소울이가 켜지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기록처럼 일단 전기충격으로 리부팅이 성공하면 최소 한 달가량은 원래의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한 박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 같아도 그렇게 했겠어요.”


 한시연 박사는 소울이가 눈을 감고 있는 유리방과 자신의 연구실을 끊임없이 왔다갔다했다. 그녀는 때때로 소울이의 눈꺼풀을 뒤집거나, 귀에 입을 대고 크게 “한소울씨! 일어나세요!”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며, 바늘로 소울이의 손가락을 찔러 보기도 했다. 물론 소울이는 미동조차 없었고 몸에 연결된 여러 장비에서 보여지는 그래프도 전혀 변동이 없었다.


 일주일간 밤낮없이 소울이를 분석한 한 박사는 뇌 수술 전문의 몇 명과 혈관의학과 교수, 신경외과 박사 추가채용안을 상부에 건의했다. 연구소장과 과학기술부장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한시연 박사는 큰 화면에 갖가지 자료를 띄우고 설명했다. 

 “우선 소울이 가동시 가장 큰 문제는 뇌의 인풋대비 아웃풋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뇌로 가는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지만 뇌의 활동량은 너무 높다는 거죠. 일단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울이의 뇌 가동에 불필요한 부분을 셧다운 하는 겁니다. 

 어차피 소울이를 개발할 때의 목적은 미래에 대한 고난이도의 예측과 연산이었어요. 신체를 쓰거나 감정을 느끼는 부분으로의 뇌 에너지 소모를 줄여준다면 당장 필요한 연산은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소울이의 생활은 어떻게 됩니까?”

 연구소장의 질문에 한 박사는 소울이의 신체별 발생 에너지를 표시한 그림과 숫자들을 띄운 후 조금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식사나 호흡,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신체활동을 제외하면, 운동같은 활동은 아예 억제됩니다. 이미 소울이의 하루 신체활동량이 높았던 편은 아니지만...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저도 구체적으론 알 수 없어요. 그거라도 해봐야 안다는 거죠. 감정에 소모되는 에너지까지도 일단은 줄여보자, 뭐 이 정도의 의미에요.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감정을 위해 뇌가 쓰는 에너지량도 적지 않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뇌의 필요한 영역으로 티끌이나마 모아 주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두 분도 소울이를 저렇게 꺼트린 상태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할 수 있도록 켜 놓는 게 낫지 않으시겠어요?”

 장관과 소장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분야야 뭐 한 박사가 전문가니까 우리가 아니라고 할 순 없죠. 말씀한대로 소울이를 저렇게 놀릴 수도 없고요. 그러면 재가동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건가요?”

 “리부팅은 권기득 박사가 수행했던 전기충격을 그대로 따를 겁니다.”

 장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 그래도 괜찮을까요?”

 “권 박사가 수행한 리부팅은 다섯 번이었고 소울이의 코마는 여섯 번째입니다. 보시기에 소울이의 리부팅이 계속 실패만 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재가동 자체에는 전기를 흘리는 방법이 충분히 효과적이었다고 증명된 셈입니다. 다섯 번이나 전기로 뇌를 깨우고도 어느정도 기간동안 소울이는 데이터 손실없이 가동했으니까요. 

 이번 리부팅에는 소울이가 혼수상태인 지금, 뇌의 외과수술을 통해 불필요한 부분으로 분산되는 에너지와 열량 루트를 차단한 후 전기로 제세동을 진행할 겁니다.”

 연구소장과 장관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더라도 좋은 방안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기약조차 없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연구소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장관은 결정을 내렸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해봅시다. 이미 소울이와 이 연구소에만 1년동안 육천만 달러가 들어갔어요. 지금 이 시간에도 초단위로 돈은 줄줄 새고 있고... 일단 빨리 깨워서... 하다못해 원주율 계산이라도 시켜야 되지 않겠어요?”

 한시연 박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


 두개골을 열고 뇌의 일정 부분을 차단하는 수술은 로봇과 나노기술의 발달로 충분히 해 볼 만한 외과 수술로 자리잡았다. 그렇다 해도 일반 환자에게 이런 수술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뇌의 일부분을 차단하는 기술을 굳이 쓸 상황 자체가 많지 않다. 그래서 소울이의 뇌 수술을 담당할 수 있는 의료진은 극히 드물었다. 한 박사가 추가채용안에 반영한 면면은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손꼽히는 전문가들이었다. 

 수술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소울이는 보호자가 존재하지 않았고 수술의들은 메스를 움직이며 벌벌 떨 필요가 없었다. 


 수술이 끝난 후 한 박사와 수술 인력들, 그리고 연구원들은 각자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뇌의 리부팅을 위해 카운트다운을 센 후 소울이의 머리로 연결된 전선으로 전류를 흘려 보냈다. 이미 기존의 연구원들은 권 박사와 수행했던 다섯 번의 리부팅을 통해 이 절차에 익숙했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전류 들어갑니다, 천천히 10초 단위로 뇌파와 박동 보면서 전류량을 계단식으로 올리겠습니다.”

10초 동안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다시 전류량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순간 모니터에서 소울이의 뇌파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솟구쳤다. 

 소울이의 눈꺼풀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큰 머리를 가진 괴이한 생명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여섯 번째 리부팅은 성공했고 소울이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한 박사가 인사했다. 

 “한소울씨, 나는 한시연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성도 같네요?”

 소울이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한 박사를 응시했다. 소울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은 자세로 정지했고 한 박사는 그의 답을 기다렸다. 베개 크기만한 머리가 무거운지 그는 잠깐 손으로 앞통수를 받친 채 눈을 길게 깜빡였다. 한 박사는 바로 옆에 있던 오성한 박사에게 물었다. 

 “어떤 거 같아요? 이전 리부팅이랑 비교했을 때.”

 “글쎄요... 소울이는 원래 말이 많은데... 일단 너무 조용하고요... 표정이 좀 뭐라고 할까...”

 갑자기 소울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왜 되게 멍청해진 기분이... 드네요.”

 연구소 내에 적막한 공기가 5초 정도 흘렀다. 오 박사가 덧붙였다.

 “말투도... 목소리의 높낮이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네요.”


*


 소울이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생활하긴 했지만 생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전 다섯 번 진행했던 리부팅 중 코마까지 가장 오랫동안 소울이가 가동됐던 최대기록은 6주였다. 그러나 뇌 수술 후 진행한 여섯 번째 리부팅 이후 소울이의 정상 가동은 6주를 가뿐히 넘겼고 두 달에 육박했다. 한시연 박사를 비롯한 추가채용된 전문가들은 마음을 놓았다. 한 박사는 계약을 더 연장할 필요없이 원래 근무하던 대학병원 연구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소울이가 생존해 있는 것과 개발 목적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소울이는 더 이상 탄생 초창기처럼 난제들에 호기심을 갖고 파고들거나 하지 않았다. 연구원 누구라도 붙잡고 궁금한 것들을 수없이 던져대던 모습 또한 사라졌다. 그렇다고 소울이가 한없이 방에서 멍하니 앉아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들은 여전히 잘 풀어냈다. 그러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는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고 그나마 풀어내는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들조차 오성한 박사가 추려준 문제들만을 심드렁하게 건들 뿐이었다. 

 소울이를 탄생시킨 후 가장 연구원들이 주목했던 점은 직접 난제를 발굴해 내는 부분이었다. 스스로 사회적 이슈들을 관심있게 바라보고 어떤 점이 문제인지,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쫑알대며 신나게 설명하곤 했다. 단지 한 가지의 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여러 예측 모델을 발굴하고 개발하면서 연구원들로 하여금 소울이를 만들어 낸 게 인류의 혁신이라는 뿌듯함을 자아내게 했었다. 

 비록 반복적으로 꺼지긴 했지만 소울이를 리부팅하더라도 이런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었다. 인터넷과 신문을 재밌어 했고, 오래된 논문들을 게임하는 것처럼 닥치는대로 읽어댔다. 무엇보다 이런 정보 습득하는 과정 단계에서도 누구나와 대화하는 걸 즐겼다. 감정 표현이 컸고 열성적이었다.  


 그랬던 소울이가 여섯 번째 리부팅 후에는 아예 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나마 숙제하듯 무미건조하게 풀고 있는 수학 문제들조차 중간 과정을 공유하지 않고 결과만을 메모해 둘 뿐이었다. 배고플 때는 밥을 먹었지만 맛을 따지지 않았다. 원래의 소울이는 스크램블 에그를 좋아했다. 지금의 소울이는 미각을 잃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식사를 대했다. 


 결국 수석연구원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아시다시피 이대로면 소울이는 존재의미가 없어요.”

 “계산은 여전히 빠르긴 해요...”

 “그건 십만 달러대의 슈퍼컴퓨터로도 충분한 일입니다. 소울이에게 육천만 달러가 들어갔어요. 게다가 지금도 비용은 계속 발생하고 있고요. 이건 차로 20분 거리를 항공모함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한시연 박사를 다시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정도로 성능이 떨어졌으면 청문회라도 열어야 할 판입니다.”

 “한 박사는 이미 이런 점을 우리에게 주지시켰어요. 기억하시잖아요? 그리고 지금 셧다운 해둔 소울이 뇌의 일부분은 필요하다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고요.”

 “지금 소울이가 꽤 오랫동안 가동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저기 보세요.”

 수석연구원 한 명이 중앙 유리실을 가리켰다. 소울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실눈을 뜬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연구원은 이어서 말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활발했는데도 체력적으로 버거워 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지금은 말도  몇 마디 안하고 하루 종일 전동휠체어로만 생활하는데도 저렇게 자주 힘들어해요. 저 정도면 언제고 다시 꺼져도 이상할 게 없어요...”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소울이에게는 비타민이나 영앙분을 임의로 주입할 수 있도록 여러 주사가 꽂혀 있었다. 외관만으로는 중증 환자와 같았다.

 “이 정도 돈 들였으면 소울이로 노벨상이라도 하나 타야 합니다. 어떻게든 다시 원래의 소울이 상태로 되돌려야 해요. 한시연 박사를 단기 채용했던 것처럼 체력과 관련된 전문가를 임시 채용해서 벤치마크를 제대로 돌려 봅시다. 지금 우리 모두 뇌 말고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잖아요.” 수석연구원들은 각자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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