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의 단편집
소울이가 여섯 번째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권기득 박사는 신속하게 해직 처리됐다. 소울이의 뇌 상태에 관한 유지관리 책임자였던 권 박사의 해임은 연구소의 모든 이가 충분히 수긍했다. 그러나 그의 앞길에 대해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중책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 권기득 박사의 명성은 국내의 그 어떤 뇌 과학자보다 충천했고, 해임이 그의 커리어에 별다른 흠집을 주지 못할 것도 확실했다. 이미 웬만한 세계 유수의 대학교와 기업 연구소는 권 박사를 먼저 데려가기 위해 지갑을 가득 채워 놓은 상태였다. 권 박사는 줄 선 스카우터들을 하나하나 만나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조건을 고른 후 우아하게 싸인만 하면 될 터다.
해임이라는 단어와 상반된 편안한 표정의 권 박사는 연구원 한명한명과 찬찬히 인사를 나누었다. 1년여간 열성적으로 인간 신체와 뇌의 한계를 함께 실험해온 동료들이다.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모두는 헤어짐을 미소띈 채 받아들였다. 시원해 보이기까지 했던 권 박사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진 건 마지막으로 연구소 중앙을 돌아봤던 순간이다. 그는 원형의 유리실에 잠자듯 누워있는 기이한 외모의 인간을 잠시 응시했다. 권 박사는 들릴듯 말듯 혼잣말을 남긴 채 캐리어를 끌고 돌아섰다.
“한번 더 리부팅 해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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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성공에 이른 몇 안되는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정부의 목적은 뚜렷했다. 인류가 풀지 못했던 난제들을, 그리고 컴퓨터가 한계에 부딪힌 사회적 문제를, 복제인간을 활용해서 풀어보고자 했다. 22세기에 가까워질수록 슈퍼컴퓨터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지만 풀지 못하는 문제들도 컴퓨터의 발전 수준에 정비례하며 늘어났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빠른 계산이 가능했지만 인간의 심리와 감정이 개입하는 문제에는 여전히 기초적인 수준의 답도 내기 힘들어 했다. 그들은 방대한 데이터로 확보한 사례를 기계적 알고리즘에 따라 조합해서 흉내낸 대답을 할 뿐, 진짜 인간은 아니었다.
정부와 과학기관은 뇌 용량이 훨씬 큰 인간을 탄생시키기로 목표를 설정했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진짜 인간이 슈퍼컴퓨터급의 계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노벨상급 난제를 풀어내는데 상당한 성과가 있을거라 판단했다. 특히 사회학, 심리학적 요소가 개입되는 종교, 전쟁, 문화 문제들을 비롯해서 마침내는 사랑이나 죽음에 대한 문제까지도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해 봄 직했다.
그렇게 한소울씨는 20세 정도의 신체로 만들어졌다. 원형의 연구소 정중앙 유리방이 소울이의 공간이었고 연구소 모든 곳에서는 투명한 유리를 통해 소울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울이는 외출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외출할 정도까지의 신체적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가늘었고 몸도 얇았다. 하루에 천걸음을 제 발로 걷기 힘들었기 때문에 주로 휠체어로 생활했다. 가끔 소울이는 흥얼거리며 걷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휘청거렸다. 소울이는 일반적인 인간의 외형과 많이 달랐다. 이목구비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이었지만 머리통이 일반 사람의 그것보다 두 배 이상 컸다. 머리의 무게 때문에 신체 균형이 올바르지 않았던 소울이는, 태어난 후부터 자연스럽게 휠체어 생활에 적응했다. 필요한 모든 것은 연구원들이 제공한 탓에 소울이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연구원들 또한 굳이 현재 상태에 적응한 소울이의 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울이는 목적을 갖고 태어난 생명체였기 때문에 목적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소울이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