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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22. 2024

거미의 집(5)

루카의 단편집

('거미의 집(4)'에서 이어짐)


 아내가 한 공간에 있어서 그랬을까. 방 정리는 빠르게 끝났다.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아내의 분주한 움직임은 마치 팔과 다리에서 바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이 소리는 마치 나에게도 빠른 행동을 끊임없이 지시하는 무언의 경고 같다. 책의 분류에 뿌듯함을 느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허둥지둥 무언의 경고에 쫓겨 노끈으로 책을 묶어댔다. 내가 겨우 책꽂이 한칸한칸을 정리하는 동안 아내는 몇번이나 밖을 다녀왔다. 분리수거를 몇번 내렸을 것이고 조심히 다뤄야 하는 가전을 차에 실었을 것이다. 책을 다 정리할 때쯤 등 뒤를 돌아보니 이미 책상도 해체되어 나사까지 풀린 채 깨끗이 벽에 세워져 있다. 

 뭔가 생각할 새도 없이 아내가 말했다. 

 “열시야. 얼른 가보자. 비밀번호는 받아놨고 빈집이니까.”

 시간이 늦어서 그럴까. 굳이 가봐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안 가봐도 돼?’라고 물었던게 나다. 내 말을 물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내는 어느새 편하면서 깔끔한 옷을 입고 있었고, 내 몸을 탁탁 털어주었다. 나는 또 허둥지둥이다.


 아내와 움직이면 내 페이스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아내는 항상 빠르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아내의 말 대로 움직이면 시간의 오차가 적고, 남에게 폐를 끼칠 일이 없다. 아까 낮의 면접만해도 그렇다. 아마 아내가 집에 함께 있었으면 결코 늦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시간을 못지키거나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보통 아내와 함께 움직이지 않을 때니까.

 물론 항상 머리속으로 높은 수준의 철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내게 ‘빠르다’, ‘효율적이다’ 합리적이다’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 페이스대로 내 일상을 다룰 때,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즉, 지금 나는 다소 불편하다. 1층에 내려왔을 때서야 나는 아내가 챙겨준 얇은 겉옷을 어느 순간 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내는 내 손을 잡고 착착착 걸어갔다. 차로 가지 않는 것을 보니 가까운 모양이다. 가깝다는 얘기를 했던가? ‘어디야?’라는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만약 아내가 ‘응, 어디어디 근처 어느 건물이야’라고 해도 나는 이 동네를 잘 모른다. 



 우리는 밝은 달을 조명삼아 골목길을 지났다. 아내와 손 잡고 걸은 때가 언제였나. 누군가와 함께 움직이는게 편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기분이다. 목적성이 뚜렷한 밤 외출이었지만 연애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기분이 말랑해지려 했다. 

 그러나 잠시였다. 놀이터가 보이자 나는 순간적으로 헉 소리를 내며 멈췄다. 


 “왜?”

 “으아!”

 돌아온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분명 나오기 전, 책상은 깨끗하게 분해되어 벽에 세워져 있었고, 아내는 여러 번 내 등 뒤를 왔다갔다하며 잡동사니와 쓰레기를 치웠었다. 

 “여보! 왜 그래?!”

 아내가 따라서 달려왔다. 

 “아아!”

 아내가 뒤에서 팔을 잡았다. 

 “왜 그래?”

 나는 아내를 마주보고 물었다. 

 “여보, 그... 책상 위에 빈 상자 없었어?” 

 “많았지. 다 뜯어서 아까 분리수거장에 내렸지. 무슨 상자를 그렇게 모아두냐? 어떤 상자는 거미줄까지 쳐졌더라. 바로바로 좀 치우지.”

 “으아!”

 나는 다시 달렸다. 아내가 따라서 달려왔다. 분리수거장이 보인다. 뜯어서 정리된 종이 상자들이 사람 키 높이가 될 정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으아아아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여보, 왜 그래!” 분리수거장 종이류 정리함 앞에 주저 앉았다. 당황한 아내가 어깨를 잡고 두드리며 왜 그러냐고 계속 묻지만 목으로 올라오는 허무함과 무력함 때문에 울음 말고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목구멍에 거미줄이 쳐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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