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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22. 2024

거미의 집(3)

루카의 단편집

('거미의 집(2)'에서 이어짐)


 영등포는 특이한 동네다. 온갖 특이한 인생을 접할 수 있는 1호선의 주요 역. 타임스퀘어는 으리으리하게 자리잡고 평일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방문객이 붐빈다. 한국, 그리고 서울이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휘황찬란한 위치에서 한 블록만 넘어오면 다른 속성의 화려함이 이어진다. 수많은 사창가가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영등포는 건재하다. 거의 400미터에 이르는 직선 거리는 인간 가장 내밀한 욕망을 현금과 교환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다. 


 골목을 따라 걸으면 기분이 말랑해진다. 간단한 일이다. 사랑이라는 불편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배제하고도 욕망을 분출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곳.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최저시급이 1만원 안되는 시대에 몇십배는 되는 수당을 벌 수 있는 곳이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지만 드문드문 유혹의 손길이 보인다. 이 곳에서는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구경거리가 있고 ‘아저씨’가 아닌 ‘오빠’호칭을 들을 수 있다. 

 “오빠, 놀다가!”

 나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배려가 있는 사람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기로 결정했다. 


 사창가의 구조는 특이하다. 전면은 붉다. 유리 안에서 짙은 화장의 여자들이 손짓한다. 저 방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의 결정과는 별개로, 이 거리를 걷기만 해도 인간의 내밀한 욕망이 자극된다. 뒤의 문으로 들어가면 분출의 장소가 나타난다. 허름하지만 깨끗한 침대. 감정의 소비와 교란 없이 필요한 행위만을 나눌 수 있는, 지극히 경제적인 구조. 전면의 유리는 마케팅을, 뒤의 방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합리적 경제활동의 집약체다. 

 나는 침대 앞 작은 테이블에 상자를 조심스레 내려두며 셔츠 단추를 풀었다. 여자는 담배를 빨아들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오빠, 이건 뭐야? 택배?”

 나는 대답 대신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집은 아니죠?”

 “아니지. 여기는 직장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 안의 거미는 집과 침대가 같은 곳에 있는 녀석인데 이 분은 사는 장소가 따로 있구나. 그러니까 나는 거미줄에 걸린 건 결코 아니다. 그저 서로에게 필요한 가치를 교환할 뿐. 여자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붉은 유리에서의 그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짧고 반짝이는 치마를 입고 나를 불렀는데, 이제 그 치마 속이 슬쩍 보인다. 



 지갑에 있는 현금 중 8할을 15분만에 썼다. 허무하다. 국가의 시스템은 엉망이다. 성매매를 단속하면서 왜 사창가는 이렇게 대놓고 존재하는지, 원. 이러니 경찰이건 구청이건 한통속이라는 음모론이 도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골목을 나오며 옷을 추스렸다. 기울어지지 않게 든 상자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개미는 이제 두 마리가 모두 갈기갈기 찢겨 있고 거미는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다. 아침의 그 놀이터에 들러서 먹잇감을 더 넣어줘야 되겠다. 

 문득 거미의 성욕에 대해 걱정이 들었다. 거미를 풀어주면 이녀석도 야생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성별의 거미를 만나 본연의 욕구를 풀고 대를 이어갈 수 있을 테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거미 상자에 먹이를 넣어주는 게 아니라 거미를 풀어주는 일일텐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 거미를 좀 더 지켜주고 싶다. 머리속으로 고차원의 연구를 진행하며 동네로 돌아온 후 아침의 놀이터로 향했다. 상자 틈새로 이번에는 너덧마리의 개미를 넣은 후 집으로 올라왔다. 


('거미의 집(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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