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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22. 2024

거미의 집(2)

루카의 단편집 

('거미의 집(1)'에서 이어짐)


 눈을 떴을 때 화들짝 놀랐다. 시계가 한 시를 가리키고 있다. 면접은 두 시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한 시간 안에 도착하는 건 무리다. 제대로 씻거나 갖춰 입을 시간은 없다. 늦는 건 기정사실이고 덜 늦도록 움직여야 한다. 

 옷장에 입을만한 옷이 없나 찾아보다가 자켓만 걸치기로 했다. 넥타이를 맬 시간도 아끼는게 차라리 낫다. 어쩌면 더 열린 마음을 가진 인재로 보지 않을까. 아니, 사실 이 회사는 합격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머리는 대강 빗었다. 어제 면도를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문득 거미가 떠올랐다. 일찍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혹여라도 아내가 나보다 일찍 집에 온다면, 그래서 서재를 정리하다가 이 상자를 본다면 버릴지도 모른다. 신던 신발을 내팽개치고 방으로 돌아와 상자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테이프로 붙여놓은 상자 틈새로 거미가 뭘 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이런! 벌써 거미는 상자 안에 거미줄을 작게 쳐 놓았다. 저 작은 몸에서 저만큼의 거미줄이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 걸까. 환경에 금세 적응하여 집까지 갖춰 놓은 모습을 보니 왜 내가 뿌듯할까. 잠깐, 이 녀석에게 거미줄은 집이기도 하지만 일터 아닌가. 이 녀석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식량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상자를 막아놔서는 먹이가 생길리가 없지 않나.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있는 작은 놀이터로 향했다. 정류장과 반대방향이지만 어쩔 수 없다. 면접이야 이미 늦은 거지만 지금이라도 먹이를 넣어주지 않으면 거미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거미의 입장에서는) 거대한 집과 일터를 순식간에 잃었는데, 추락사를 막아주겠답시고 상자에 가두고선 아사시키는 인간이 될 순 없는 일 아닌가. 

 실눈을 뜨고 공원 바닥을 뒤지자 개미가 꼬물거리는 한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상자의 양쪽을 살짝 눌러서 틈새가 벌어지게 한 후, 두 마리의 개미를 상자 안으로 넣었다. 거미가 내 손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개미도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혼란스러운지 두 마리가 교차하며 후다닥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두 마리 모두 거미줄에 몸이 붙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됐다. 틈새로 거미가 서서히 거미줄에 엉킨 개미에게 다가가는 걸 본 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무역’이라는 간판이 보였을 때 시계는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꽤 빨리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문과 가까이 있는 직원이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면접을 보러 왔노라고 답했다. 직원은 위아래로 훑더니 가장 안쪽 회의실을 가리켰다. 회의실 앞에는 대여섯개의 의자가 횡으로 정렬되어 있었고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듯한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앞쪽에는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류를 들고 있었다. 

 입구부터 회의실쪽까지 가로지르며 회사의 규모를 가늠했다. 스무명 남짓한 규모로 보였다. 회의실의 불투명 유리 안으로는 세 명 정도의 뒷통수가 희미하게 보였고, 그 맞은 편에는 두 명이 앉아있는 듯했다. 세명씩 면접을 보는 모양이다. 회의실 앞에서 면접을 안내하는 직원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혹시 김지훈 지원자신가요?”

 “네, 맞습니다. 혹시 끝났나요?”

 “많이 늦으셔서 조 순서를 좀 바꿨습니다. 뒷조로 배치했으니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 네.”

 직원은 가장 끝 의자에 앉는 나를 응시더니 물었다. 

 “지원자님, 그 상자는 뭐죠?”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내 방, 그러니까 창고를 방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의 통창에서 떨어질 뻔한 거미, 그 놈을 구했는데 일단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상자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줬고, 풀어줄 틈이 없어서 일단은 개미 두 마리를 먹이로 넣어주긴 했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들고 온 것이다,를 짧게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머뭇거리자 직원은 별로 관심 없다는 듯 

 “가지고 들어가실건 아니죠? 거기 의자에 두시고요.”라며 질문을 마무리지었다. 


 옆에 앉아있는 지원자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나보다 많이 어린 듯했다. 바로 옆 사람에게 작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옆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나는 너그럽게 용기를 돋아준다.  

 “긴장하지 마세요. 잘 하실 겁니다.”

 “네?”

 “혹시 지금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랑 여기 저희들까지가 지원자들인가요?”

 옆 사람이 답했다. 

 “아뇨, 세명씩 면접 보는데 가장 첫 세 명은 끝나고 돌아갔습니다.”

 안내하는 직원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조용히 대기하실게요.”

 옆 사람이 원망하는 눈으로 나를 흘긴 후 다시 정면을 응시한다. 내가 말을 걸어서 같이 지적받았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하다. 


 앞 조의 면접이 끝나고 세 명이 나왔다. 우리는 이어서 들어갔다. 면접관들은 미소를 띄며 지원자를 맞이했다. 

 “저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훌륭하신 분들과 얘기 나눌수 있어서 영광으로 생각하고요, 이쪽 오른쪽 분부터 자기소개 먼저 간단하게 해주시겠어요?”

 아, 맞다. 자기소개. 아내가 무역학과 출신의 지원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알려주며 자기소개라도 준비해보라고 했는데, 깜빡했다. 아내는 

 “여보, 집에서 노느니 용돈이라도 벌면서 노는게 좋지 않아?”

 라며 자신의 부서와 협업하고 있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정보를 주었다. 

 “놀긴 내가 뭘 놀아.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중요한 연구를 하는데.”

 라고 했고, 아내는 알겠다는 투로 

 “그러니까, 어차피 연구하는거 용돈이라도 벌어가면서 하면 어떻냐는 거지.”

 라고 답했었다. 


 한 명 한 명 당찬 소개를 했다. 저렇게 뻔한 소개를 할 거면 자신감이라도 있는게 낫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말했다. 

 “그, 비록, 저는 뭐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유물론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어쨌든 물질, 그러니까 실체가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을 자본으로 환산하는, 그런 역할로서의 기업은... 아, 물론 무역. 그렇죠, 무역이라는 행위가, 물질은 아니죠. 그렇지만 무역이 다루는 주된 상품은 물질인데, 또 어떻게 보면... 서비스를 무역...”

 오른쪽의 면접관이 말을 끊었다. 

 “어... 김지훈씨?” 

 “네?”

 “자기소개...하시는 거죠?”

 그렇다. 나는 가진 지식과 지혜의 양에 비해 처음 대면한 타인에게 이를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이 조금, 아주 조금 부족하다. 어쩌면 긴장한 걸 수도 있다. 표현 방식이 어눌하면 콘텐츠의 질에 주목하지 못하게 되고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면접관은 짧게 소개만 해달라고 말했다. 잠깐 멈칫한 나는 

 “예, 제가 화술이 좋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음... 다양한 연구를 즐겨하고 있는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회의실은 면접관들의 질문과 면접자들의 대답으로 불꽃이 튀었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범위가 없었다. 기본적인 경제적 상식부터 업무에서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질문까지 넘나들었다. 그럼에도 내 옆의 두 사람은 당황하기는커녕 또박또박 자신들이 아는 대답을 던졌다. 

 “김지훈씨는 말씀이 별로 없으시네요? OO대학교 무역학과 출신이신데, 저희같이 작은 회사에 지원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이도 좀 있으신 편인걸 보면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예. 일단 저희 아내가 K인터내셔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공고가 떴다고 아내가 알려줘서 그래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질문을 던졌던 면접관이 손사레를 치며 다시 물었다.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올해 오십인데, 저도 나이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여쭌 것은 졸업하고 몇 년동안 어떤 경력을 쌓으셨는지를 묻는 겁니다.”

 “저는 신입 채용에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경력자를 뽑겠다는 말이 아니라요, 쉬시는 동안 뭘 하셨는지...”

 “저는 쉬지 않았습니다.”

 면접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했다. 

 “예에. 그.러.니.까. 졸업하고 뭘 하고 살아오셨을까요?”

 그렇지. 나는 맥락이 없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의도를 가진 질문은 의도를 확실하게 드러내길 원한다. 의도가 혼란스럽거나 의심스러운 질문에는 여러 번 물어서 맥락을 확실하게 한 후 대답해야 묻는 자와 말하는 자 모두에게 이해관계가 성립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법도 같은 이치다. 

 면접관에게 내가 연구해온 것들을 말했다. 무역학과 출신이지만 현대사회의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 본연의 가치가 오랫동안 침해해 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일찍 깨달아 온 점, 이에 수많은 책과 학문들을 탐독하며 인문학적 사고방식을 연마해 온 사실들, 어떤 책들과 어떤 철학자들을 연구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보통 철학자들을 얘기하는 자들은 과거부터 현재의 순서로 자신이 가진 지식을 자랑한다. 그러나 나는 이 곳이 면접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늘어놓기보다 하이데거부터 칸트나 헤겔, 니체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베이컨이나 홉스, 흄 등의 경험주의 철학자들을 연구하며 느낀 방식을 설명하려다 문득 다시 한번 이곳이 면접장임을 인지하고 설명을 빠르게 줄였다. 면접장은 말을 많이하는게 능사가 아니다. 요약하는 능력, 줄이는 능력도 검증받는 전쟁터다. 


 두 면접관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아마 요즘 시대에 찾기 힘든 인재를 찾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이 내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질문을 이어가야할지 길을 잃은게 아닐까. 혹은 아예 내가 가진 학문적 깊이 자체를 판단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얕은 사람들이라(고작 이 정도 규모의 회사라면 그런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어도 할 말은 없다.) 듣는 둥 마는 둥 했을지 모른다. 만약 면접관들의 인문학적 깊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이 회사에 합격해도 걱정이다. 대화 수준이나 지식의 깊이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합격하지 않아도 그만인 회사지만. 

 상당시간동안 조용하다가 오른쪽의 면접관은 플러스펜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그는 

 “지원자님이 가진 해박한 지식이, 우리의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취업을 위한 면접 경험이 거의 없다. 학과 동기들은 대부분 7~8년 전 취업을 끝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면접에 대해 몇가지 아는 건 있다. 가령 지금 면접관의 저 질문은 오로지 나를 위한 질문이자 이 회사에 합격할 수 있는 결정적인 질문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누구보다도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다.

 “철학과 인문학은 인간 사회의 근간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한다는 사실이고 조직을 이루어서 매번 발전을 이룩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인간들이 이룩해오면서 했던 생각을 탐구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입니다. 저는 이런 인간 탐구 정신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거시적으로는 회사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한 면접관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밌군요. 김지훈씨, 저희 회사가 무역회사인건 알고 있죠?”

 “물론입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대답 잘 들었습니다.”

 면접관들과 다른 면접자들은 다시 몇가지의 질문을 더 주고 받았다. 불꽃은 금세 다시 타올랐지만 그 불꽃이 나에게까지 더 튀지는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나와서 의자 위의 상자부터 집어들었다. 다행히 틈새로 보이는 거미는 컨디션이 괜찮아 보인다. 괜찮다못해 거미줄에 붙었던 두 마리의 개미 중 한 마리는 이미 몸이 뜯겨있다. 거미는 집과 직장을 잃었지만 재빠르게 수습했고 주거환경과 생계를 챙길 수 있었다. 상자를 마련하고 개미를 넣어준 내 도움을 빼놓을 순 없지만 사실 내가 통창만 열지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응당 했어야 하는 일이다. 


 함께 면접을 봤던 지원자들은 후련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안내해 줬던 직원에게도 예의바르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취업은 열정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취업이 열정만으로 가능하다면 대한민국 청년들의 취업난은 생기지도 않았을 거니까. 열정 이외의 것들이 있어야 한다. 타인과 차별화되는 무언가. 

 나와 같이 앉았던 지원자들은 그런 면에서 차별점은 부족해 보였다. 시사와 상식에 밝았지만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스크롤 몇번으로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다. 회사의 생리와 재무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처럼 말했지만 어디 그게 실무와 같을까.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을 1년동안 적어도 몇십명은 볼텐데, 그런 모자람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인문학적 소양이나 철학, 역사, 문학, 예술에 해박한 사람은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선 희소하고 귀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못했다. 뭐, 괜찮다. 가진 카드를 다 드러내는 것이 사회생활에 꼭 좋다고만을 할 수 없다. 나중에 취업 여부가 결정난 후 회사 생활을 하게 될 때 서서히 꺼내놔도 괜찮다. 


('거미의 집(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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