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Oct 07. 2024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3)

루카의 단편집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2)'에서 이어짐)


 한국계 미국인 타머스 박사는 캐리어조차 없이 입국했다. 생물의 기초대사량, 인체의 에너지 효율 부분에 대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젊은 의사 타머스는, 복제인간 프로젝트가 한국 내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초창기부터 정보를 공유받았던 몇 안되는 인재였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복제인간을 직접 다룬다는 사실만으로도 타머스 박사에게는 매혹적인 연구였다. 만약 당시에 NASA에서 진행 중이었던 ‛우주에서의 인간 신체 에너지 활용 극대화’ 연구에 참여하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연구소로 합류했을 터였다.


 타머스 박사는 숙소도 들르지 않고 자율주행 택시를 불러 연구소로 향했다. 예정 일정보다 이틀이나 일찍 연구소로 들어온 타머스 박사를 당직연구원들은 놀라면서도 환대했다. 그는 한시연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중앙 유리방에서 눈을 꿈뻑거리며 컴퓨터만 보고 있는 괴기한 생명체를 오랫동안 관찰했다.

 타머스 박사의 관찰은 한시연 박사때보다 조금 덜 걸렸다. 타머스 박사는 소울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제대로 건드려 보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조치 계획 보고도 빠르게 이뤄졌다. 


 “뇌가 쓰는 에너지량을 생각하면 한시연 박사가 취한 조치는 적절했을 겁니다. 사실 그 분야는 한 박사가 최고니깐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순 없어요. 저는 이제부터 소울이의 뇌로 들어가는 현재의 인풋을 완전히 수치화해서 계산하고, 필요한 인풋이 얼만지를 마찬가지로 수치화 한 후 거기에 맞게 심장과 폐 기능을 건드릴 겁니다.”

 “장기를 새로 복제하는 거라면 비용 문제도 있을 텐데요?”

 “진짜 장기를 활용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봤을 땐 장기 복제까지는 필요해 보이지 않아요. 몇 가지 기계장치로 충분합니다. 시중에는 심장의 펌프질을 필요한 횟수만큼 늘려주는 기계도 널렸고, 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체 외부에서 리모트컨트롤도 가능하죠.”

 오성한 박사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면 어떤... 리노베이션이나 전면적인 수술은 아니겠군요?”

 “네. 그저 개복하고 기계 몇 개 설치하고, 테스트하고 끝입니다. 부스터 달아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신 부스터를 어느 정도로 달아 주느냐를 기민하게 판단해야 하겠죠. 그래서 제가 온 거고요.”

 수석연구원 중 한 명이 타머스의 보고를 빠르게 마무리 지으려는 듯 말했다. 

 “우리가 이것저것 묻고는 있지만 사실 타머스 박사의 안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든 해주세요. 조치되는 때까지는 전권을 위임하겠습니다.”


 소울이는 별다른 이견 없이 수술에 동의했다. 연구소 직원들도 굳이 소울이 자신의 수술 찬반의견까지 감안하고 수술 계획을 짰던 건 아니다. 동의 여부를 묻는 건 그저 요식행위 중 하나였다. 수술은 복잡하지 않았다.  박사는 몇 명의 수술의만을 데리고 개복수술을 진행했다. 한 박사의 뇌수술 때처럼 수술의들은 거침없는 손길로 소울이의 장기들을 체크했다. 그리고 심장과 폐에 작은 전자 장비를 장착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의사가 모니터로 전자 장치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정상동작을 확인한 후 타머스 박사와 수술의들은 빠르게 다시 소울이의 몸을 닫았다. 수술은 전자장비의 정상 동작을 체크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여섯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소울이의 회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수술자국이 아물기도 전에 오성한 박사로부터 거대한 화이트보드를 받았다. 화이트보드에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여러 난제들의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사실 이 리스트는 모두 소울이가 직접 선정했던 내용들이다. 소울이는 탄생 직후 자신이 손대고 싶은 난제 분야를 직접 발굴했고 열성적이었던 ‛그때의’ 소울이의 성격을 반영하듯 방대했다. 컴퓨터로 소울이가 기록했던 내용들을, 연구원들이 큰 화이트보드에 옮겨 적은 것이다.


 간단한 수술 후 소울이는 그 전에 비해 조금 활동성이 높아진 듯 보였다. 하지만 무표정한 상태는 여전했고 휠체어에 앉은 채 몇 시간씩 화이트보드만 응시하며 갸우뚱거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소울아, 왜 그래?”

 소울이에게 간식을 가져다주던 오성한 박사가 물었다. 소울이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쵸... 이거 분명 제가 다 고른건데...”

 “그런데?”

 “왜 골랐을까요.”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소울이는 입을 닫았다. 오 박사는 한참을 소울이의 옆에 팔짱을 끼고 같이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어보았다. 몇 분쯤 침묵이 흐른 후 소울이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하나 가리켰다. 

 “문화 콘텐츠의 변화와 국가별 전이. 저게 왜?”

 소울이는 잠깐 무거운 머리를 휘청거렸다. 오 박사는 소울이의 머리 무게가 익숙한 듯 잽싸게 팔로 소울이의 머리 한쪽을 잡아주었다. 소울이가 말했다. 

 “정말 이상해요. 분명 제가 고른 게 확실히 기억나는데. 안되겠어요. 혹시 영화나 책 같은 걸 구해주실 수 있나요?”

 오 박사가 얼굴에 화색을 띄며 무릎을 꿇고 소울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럼! 어떤 영화가 보고 싶니?”

 소울이는 1900년대부터 2090년대까지의 대표 영화를 10년 단위로 끊어서 요청했다. 또 문학전집류의 책을 함께 부탁했다. 소울이는 여섯 번째 리부팅 이후 연구원들에게 뭐가 필요하다거나 기분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걸 가장 가까이서 인지하고 있는 오성한 박사의 시선에서는 이런 소울이의 요청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오 박사는 소울이의 요청 내용이 담긴 메모를 들고 수석연구원실에 뛰어 들어왔다. 유리 너머로 평소와 달랐던 소울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석연구원들은 메모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에요?”

 오 박사는 메모를 보여줬다. 빼곡한 메모를 보자 연구원들은 반가워하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게?”

 “글쎄... 사실 이번 리부팅 전까지의 소울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지.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으니. 음악, 영상, 텍스트, 닥치는 대로 마시듯이 접했던 거 기억하지, 다들? 지금 소울이가 달라졌다고들 생각하고 있겠지만 소울이는 여전히 소울이야. 어쩌면 지난 타머스 박사의 수술 뒤로 천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첫 과정일 수도 있어.”

 오 박사는 상기된 얼굴로 연구원들에게 이어서 말했다.

 “지금부터 당직은 수석급들로만 배치하자고,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소울이가 뭐 필요하다고 할지 몰라. 가급적 연구소에 오래 머물렀던 박사들 위주로 중앙 유리방 가까운 자리로 이동합시다. 연구소장께는 바로 이 내용 전달 드리고 장관께도 참조로 함께 알려드려요. 최박은 이거 콘텐츠 다 준비해서... 아니다, 나랑 같이 서점 좀 가자. 가급적 물리적인 형체가 있는 콘텐츠로 줘보자고. 최대한 소울이가 자극을 느낄 수 있게.”


*


 오성한 박사의 주도하에 소울이의 유리방에는 조금씩 다양한 색깔이 생겼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의 깔끔한 방이었지만 소울이가 영화와 책을 요청한 뒤로는 몇 개의 오브제와 피규어가 들여졌다. 박사들은 방에 있는 중앙 테이블에 오브제와 피규어들을 놓고 소울이가 이것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도 중요한 관찰 내용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또 가구업체를 통해 제작한 멋들어진 책꽂이를 방에 설치했고 책들을 비치했다. 소울이의 방에 새로운 물건들을 놓는 절차는 절대로 한 번에 많은 변화를 주진 않았다. 혹여 소울이의 감각에 해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천천히 하나씩 제품을 늘렸다.

 소울이는 유리방 중앙 테이블에 놓아준 오브제와 피규어들에 큰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만져보거나 갸우뚱하더니 귀찮다는 듯 한쪽 구석으로 반듯이 정렬해 두기만 했다. 연구원들은 소울이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성한 박사는 방에 다른 색깔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과 아예 없는 건 다르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타머스 박사의 수술 후 소울이의 가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연구원들의 긴장은 점점 높아졌다. 소울이의 생활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이게 안정적인 상태인지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울이는 매일 두 권에서 세 권 정도의 책을 읽었고 한 편 정도의 영화를 봤다. 그러나 탄생 초창기처럼 연구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소울이는 오로지 오성한 박사와만 소통했다. 먹어야 되는 만큼만 먹었고 맛을 가리지 않았다. 굳이 스크램블 에그를 먹겠다고 하지 않았다. 


 한시연 박사가 소울이의 뇌 기능 일부를 셧다운 시키고 리부팅한지 15주 후, 타머스 박사가 소울이의 장기 기능을 업그레이드 한지 7주 째, 소울이는 절망에 빠진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 2010년대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찔끔거리더니 이내 머리를 양 손으로 잡았다. 머리의 무게 때문에 소울이가 머리를 잡는 일은 종종 있었으나, 통증이 있는듯 보였기 때문에 연구소 전체는 긴장했다. 

 주인공의 감정이 절망스러워지고 폭발하는 장면에 이르자, 소울이는 실눈을 뜬 채 화면을 응시하며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유리방을 보고 있던 연구원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신속히 방 앞에 대기했다. 소울이의 눈알이 팽팽 돌기 시작하자 오성한 박사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양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치려 했다. 소울이의 다리는 휠체어 위에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소울이가 고통을 표현하는 목소리 톤은 매우 어색했지만, 그의 행동을 통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통스럽게 머리를 절레절레 젓던 소울이의 눈이 공중으로 뒤집어지더니 머리가 휠체어 뒤로 꺾였다. 유리문 밖에서 대기하던 연구원들이 뛰어 들어왔다.


 소울이는 일곱 번째 코마에 빠져 들었다.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4)'에서 계속)

이전 07화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