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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07. 2024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4)

루카의 단편집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3)'에서 이어짐)


 과학기술부장관과 연구소장은 소울이의 일곱 번째 코마 소식이 정부에 보고되자마자 즉시 경질됐다. 장관의 향후 행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연구소장은 당분간 ‛고문역’이라는 직책으로 연구소에 남아있게 됐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연구소장으로부터 권한을 박탈했지만 책임은 남겨 놓는 인사조치였다.


 연구원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복제인간을 만들어봤다는 자체만으로 그들의 명예와 커리어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학자로서의 자존심 영역으로 들어섰다. 만들어낸 생명체로 꼭 성과를 내겠다는 순수한 학문적 욕심의 단계. 한시연 박사와 타머스 박사까지 다시 연구소로 호출됐다.

 그러나 이미 최고들만 모인 곳에서 최선을 다한 상태가 지금인만큼 마땅한 방안이 도출되진 않았다. 연구소의 모든 인력들은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듯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법한 석학들에게 한명한명 연락해보기 시작했다. 인공장기를 만드는 민간기업의 연구팀장 온형균 박사는 그렇게 섭외됐다.


 온 박사는 한시연 박사나 타머스 박사와는 다르게, 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날부터 서류들만을 오랫동안 파고들었다. 그는 소울이의 활동량이나 식습관, 심장박동 등의 모든 데이터를 필요하다고 생각한만큼 독파한 뒤에야 중앙 유리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는 소울이를 관찰했다. 온 박사는 정작 소울이의 실물은 그리 오래 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필요한 데이터들을 확인했고 원소속인 기업의 연구팀과도 몇 번의 연락을 주고 받았다. 필요한 보고자료를 준비한 온 박사는 곧 수석연구원들을 소집했다. 그는 다소 화가 난 표정이었다.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말투로 그는 연구원들을 질책하듯 입을 열었다.


*


 “이건 근본은 아주 간단한 문제에요. 소울이의 심장은 엔진과 같은 겁니다. 아니, 모든 인간에게 심장은 엔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심장이 뛰고 피가 거기서 공급되니까요. 피는 몸 전체를 돌아요. 발가락 끝부터 뇌까지. 그렇게 심장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크기까지 커지고 신체에 적응해서 최적의 박동수를 찾고 유지합니다. 신체는 모든 기관이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죠. 

 이게 심장만 그런 게 아니에요. 손, 발, 폐, 위, 간, 생식기관이나 눈코입까지도 그렇죠. 당연히 뇌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요, 그냥 사회적으로 적응하는 게 다가 아니에요. 지식만 쌓거나 신체만 성장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요. 몸의 기관 전체가 철저하게 알맞는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이 밸런스는 정말정말- 너무너무- 세밀하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신체는 바로 신호를 주죠. 우리는 그걸 병이라고 부릅니다.”

 온형균 박사는 유리방을 힐끗 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뭐, 복제인간을 만든다, 좋아요. 저는 도덕의 영역에 있진 않으니깐 인간의 존엄성 이야기는 굳이 하고 싶지 않아요. 딱히 이런 문제에 어떤 감정을 갖고 있지도 않고요. 저는 기업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ROI에 맞춰서 철저히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여러분들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합니다. 설령 소울이의 인간적인 행복이나 사회적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게 효율적이라면 저는 반대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도덕적인 문제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단지 소울이의 뇌만 엄청나게 성장시킨 겁니다. 여러분에게는 소울이의 뇌만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이 만든 소울이의 오리지널은 인간입니다, 인간. 인간의 뇌가 100에서 200으로 커지면 어디에 쓸 수 있을지만을 여러분은 생각했어요. 더 많은 계산을 할 수 있겠죠. 더 많은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소울이의 뇌가 100에서 200까지 커지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를 말하는 겁니다. 이건 너무 간단한 문제에요.”


 연구원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자리에 소집된 수석연구원들을 비롯해, 연구소에 모여 있는 백여명의 연구원들 모두 직급과 상관없이 국내에서는 학술적으로 정점을 찍은 인재들이었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내노라 하는 석학들이다. 누군가에게 지식으로 지적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구겨진 연구원들의 표정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 온형균 박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의 신체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는 뇌가 씁니다. 뇌의 활동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 당연히 두 배 더 많은 피가 필요합니다. 심장은 두 배 더 빨리 뛰거나 두 배 더 커져야 합니다. 인간은 두 배 빠른 속도로 뛰는 심장을 절대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심장을 애당초 크게 만드셨어야 해요. 두 배나요."

 온 박사의 손가락은 유리방에 있는 심박 측정 기계를 가리켰다. 상반신이 알몸 상태인 채로 누워있는 소울이에게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수많은 전선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심박 측정 기계 이외에도 다양한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화면들이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여전히 소울이는 자는 듯 미동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게 끝일까요? 아닙니다. 심장이 두 배 커져도 뇌까지 피가 두 배로 간다는 확신은 없죠. 혈관이 두 배로 넓어져야겠죠. 폐도 커져야겠네요. 산소가 두 배는 더 들테니까요. 자, 그러면 소울이의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배의 심장과 두 배의 혈관, 그리고 두 배의 폐가 필요하다는 결과값이 나오네요. 이해하셨나요? 

 죄송하지만 좀 더 말씀드릴게요. 두 배 큰 심장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두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겠죠? 입은 굳이 두 배로 크게 만들지 않더라도 식사 시간이 늘어나면 되니깐 괜찮다고 칩시다. 하지만 소화능력은 두 배 늘어야겠죠. 위, 장기 모두 두 배 이상 커지거나 케파가 늘어야 합니다. 간도 마찬가지겠군요. 소화에는 배설도 포함되기 때문에 방광도 두 배는 늘어야 합니다. 

 지루하신가요? 죄송하지만 좀 더 말할게요. 이렇게 모두 두 배씩 늘어난 내장기관을 유지하려면 신체 자체가 커져야 합니다. 근육은 물론이고 골격 자체가 훨씬 커져야겠죠. 게다가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혈관기관들은 이 커진 모든 신체기관의 말초신경까지 구석구석 잘 뻗쳐야 하고요. 여러분이 소울이의 뇌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자한 비용의 몇십 배 이상은 더 들어야 소울이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저렇게 비대해진 소울이를 좀 더 오랫동안 활용하려면 건강상태도 유지해야 하겠죠? 그러면 이 모든 내장기관을 감싸고 있는 근육과 뼈와 살들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야 합니다. 적정량의 운동은 필수죠. 폐나 심장도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먹는 음식도 좋은 걸 써야 하고요. 

 제가 하는 얘기는 너무 쉽고 당연하고 간단한 겁니다.”


 온형균 박사는 잠깐 숨을 골랐다.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온 박사가 질타한 문제점과 자신의 담당분야가 어떻게 매칭되는지를 고민했다. 과연 그럼 온형균 박사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뭐란 말인가.

 “지금 소울이의 뇌는 유지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뇌 스스로가 자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컴퓨터로 치면 무리한 오버클럭을 오랫동안 유지한 것이죠. 부품 성능은 최상을 유지할 수 없고 전력량은 모자란 상태에서 CPU만 혹사당하고 있는 겁니다. 뇌는 스스로를 꺼버림으로서 자신의 마지막 생존을 위한 발악을 하고 있어요. 

 결국은... 순서의 문제입니다. 신체 구석구석이 자신의 역량에 맞게 건강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뇌도 최적의 효율로 활동할 수 있는 겁니다.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신체 기관들이 부속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게 아니에요. 뇌도 신체 중 하나일 뿐인 겁니다. 소울이는 완전히 밸런스가 깨져 있습니다. 저대로는 죽죠. 죽음이라는 단어가 저 생명체에게 합당하다면 말입니다.”


 온 박사는 화면을 띄웠다. 화면은 다빈치의 인체해부도 자세로 표현된 소울이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소울이의 각 신체기관마다 어느 정도의 성능과 비용이 필요한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저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걸로 오해하실까봐 미리 단언합니다. 이 개조? 업그레이드? 어떤 용어를 써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론적으로 책정만 한 겁니다. 저와 저희 회사는 이 비용을 다 받는다고 해도 절대 이 화면에 띄운 업그레이드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제 역할은 이렇게 책정해 드리는 부분까지 입니다. 각 신체분야를 개선하고 개조하는 건 이 화면에 있는 데이터를 토대로 진행하셔야 할 겁니다."

 온형균 박사는 길었던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수석 연구원들과 연구소 직원들은 온형균 박사가 지적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총 예산을 다시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소울이에게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한 건 확실해 보였다. 지적되었던 것처럼 소울이의 모든 신체기관이 2배 이상의 성능은 나올 수 있어야 했다. 소울이에게 들어간 비용 육천만 달러 중 9할 이상은 뇌에 쓰였다. 다른 신체기관은 사실상 다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구원들이 온형균 박사의 자료를 토대로 몇 가지의 교차검증을 마친 후 책정한 예산 총액은 오억 달러 규모였다. 인공위성 몇 개를 발사할 비용이 도출되자 연구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연구소 정중앙 유리방에서 모두에게 자신을 노출시킨 채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기괴한 생명체는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연구원들이 괴생명체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사바늘에 꽂혀 있는 영양액을 보충해 주는 것뿐이었다.


*


 신임 과학기술부장관은 부임하자마자 현실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그러니깐 마치 실험실에서 지식의 성취에만 몰두하느라 세상 물정 따위는 망각한 게 확실해 보이는 보고자료를 마주해야 했다. 

 “오억 달러요?”

 “그렇습니다, 장관님.”

 장관은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정신들이 나가셨구만. 아무리 여러분들이 과학자들이고 의사들이라지만... 이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아닙니까? 당신들 정부 1년 예산이 얼만지는 관심도 없죠? 이 정도면 양심의 문제입니다, 양심!”

 장관의 질책을 예상했다는 듯 오성한 박사가 앞으로 나섰다. 

 “죄송합니다, 장관님.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플랜B는 이렇습니다.”

 오 박사가 눈길을 주자 컴퓨터 앞의 연구원은 다른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일단 소울이의 탄생 직후, 그러니까 뇌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을 때 소울이의 성능이 충분히 좋았다는 점은 장관님도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억 달러를 부을 게 아닌 이상,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오성한 박사가 잠깐 숨을 고르는 동안 보고에 참여한 모두는 멍하니 연구소 중앙의 유리방을 응시했다. 신임 장관도 소울이의 실물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오 박사가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이미 몇천 억이 들어간 소울이를 폐기하거나 방치할 순 없어요. 여기서 최선의 방안은 바로 ‛일시중지’ 버튼입니다. 소울이의 신체를 모두 분해해서 뇌만 남기는 겁니다. 어차피 우리에게 필요한 소울이의 뇌일 뿐입니다. 지금은 딱히 방안이 없으니 신체 보완 기술의 단가가 낮아지고 적당한 비용도 마련되면 그때 다시 가동시키는 겁니다. 뇌만 보류 상태로 보관하는 거죠.”

 “일단은 미룬다? 정부 관계자들은 소울이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길 바랄 텐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대신 기존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국정 홍보의 포인트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소울이의 뇌만 남기고 신체를 해체하면, 그 해체된 신체들을 필요한 국민들에게 무료로 기증하고 이식하는 겁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사람, 간암 말기 환자, 소화기에 문제가 있는 환자 등등... 형편이 어려워서 장기를 이식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겠죠. 부위별로 해체하고 기증하면 못해도 최소 몇십 명에게는 혜택이 돌아갈 겁니다.”


('소울이는 깨어날 수 있을까(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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