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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안다는 것의 의미

TEXTIST PROJECT

 앉아있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혹은 좋지 않은 자세가 습관이 되어서인지, 허리에 통증이 왔다. 병원에 가보니 디스크 초기 증상이라고 한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쭉 관리하길 권장했다.
 죽을만큼 아파서 생활이 안 될 정도는 아니지만, 귀찮고 불편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초기에는 양말 신는 자세가 제일 힘들었다. 디스크 환자들은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현대인이 앓게 되는 고질병 중 하나인 것 같다. 겪어보니 불편하고 귀찮고 아프다는 것을 천 문장의 글이나 천 마디의 말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연예인 김종국이 무릎팍 도사라는 방송에 출연한 것을 봤다. 당시에 꽤 부정적인 감정이 컸다. 몸은 터미네이터인데 군 복무는 공익이라니 라는 생각에 연예인 특권이라고도 생각했다. 게다가 당시 방송분에서 김종국은 "어떻게해서라도 갔어야 했나 싶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었는데, 이 말은 당시 어린 나에게 "가려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로 들렸다. 피해의식까진 아니더라도 건강해보이는 이가 군대도 안갔다는 사실이 부당하고 배 아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소소하게나마 통증을 겪어보니 일면식도 없는 김종국씨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김종국씨의 상태가 어느정도인지는 의학적으로 잘 알진 못하지만, 추간판 탈출증이 있으면 군대에서 제대로 생활하긴 힘들 것 같다. 군 신체검사 제도는 추간판 탈출증도 정도를 나눠 군 복무의 등급을 구분하고 있다. 공익근무로까지 빠졌을 정도면 김종국씨의 추간판 탈출증 정도는 상당히 심각했을 것이다. 김종국 본인도 척추를 받치기 위해 근육을 엄청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기사로만 접했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 김종국씨는 상당히 억울해 했었다. 이제서야 나는 이해하게 되어서 매우 죄송스럽다.

 돌아보면 사람들은 스스로 해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일을 '남 일'이기 때문에 정말 쉽게 말한다. 쉽게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라는 과정은 없고 '느낌'만 남는다. 보이는 부분을 전부로 믿는다. 김종국씨의 엄청난 근육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가 공익근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디스크의 탈출 상태가 그의 군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정도 몸이면 충분하지!"라는 느낌이 전부다. 그리고 결국 화자가 경험해야만 '아, 그 판단으로 포장되었던 느낌은 틀렸던 것이구나'라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게 된다.

 자꾸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군 시절 소대장때, 한 소대장 선배는 늘 나에게 "교육장교들이 왜 저렇게 늦게까지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는게 절대 일을 잘하는게 아니라고 얘기했다. 어리석은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참모직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러려니 생각했다. 혹은 '그러게.'정도로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1년 정도 후 선배는 전역했고 나는 교육장교로 불려 올라갔다. '그러게'라는 생각조차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됐다. 교육장교 일을 해보지 않은 소대장이 단지 짬밥을 많이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판단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단정짓는건 참 잔인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사회에 녹아들다보니 이해라는 가치는 많이 사라진다. 핑계를 대보면 이해할 시간이 사라졌다고 해야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누군가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해까지 할 시간과 노력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눈에 보이는 순간 '저 사람은 어떨 거야.'라고 판단하고 끝낸다. 이 판단이 다시 진정으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팩트'가 되어 마음 한켠에 박혀버린다.
 인지하기 쉬운 오류들을 허리가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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