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글의 기억

by 서인석

레고블록은 어린 시절 나의 큰 위안이자 행복이었다.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도, 손은 먼저 블록을 쌓고 있었다. 의미 없는 조각들이, 내 손을 거쳐 하나의 형체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레고가 들어있는 통을, 바닥에 쏟아놓으면 그때부터 항상 모든 것이 시작됐다. 설명서 없이 만드는 그 행위를 '창작'이라는 멋들어진 말로 부를 수 있다는 건 더 나이가 들고 나서 알았다.

머리가 크고 나서 '창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레고 상자를 바닥에 쏟아놓은 적이 몇 번 있다. 왜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설명서가 없으면 블록을 쌓질 못하고 있더라. 깔짝 뭔가 만들어보다가 다시 레고를 상자에 넣어버리거나 설명서를 꺼내 들거나 하더라. 머리가 굳은 것인지 손이 굳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굳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똑똑한 아이였다.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걸 좋아했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면 그것에 완벽히 몰입하고 흥분했다. 내가 공부를 아주 잘했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를 '똑똑한 아이'였다고 말한 이유는 어떤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그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타인에게 전달할 때, 그 역량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똑똑한 아이"라는 칭찬을 자주 불러왔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교만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나는 글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수많은 상장들 중 절반이상이 글쓰기 대회나 독후감 대회 상이었다. 고학년이 되고 사춘기가 되어서도 글은 내 큰 재미였다. 학교 밖에서도 제법 큰 상을 몇 번 받았다. 이것들 또한 '똑똑한 아이'의 범주라고 착각했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 나는 이제 이것이 '똑똑함'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단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좋아함의 크기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컸을 뿐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이라는 말이 어른들로부터 '똑똑함'으로 치환되었던 이유 또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이제는 십분 이해한다.


누군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강제하거나 했던 적은 없다. 물론 교육과정 속에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글짓기나 독후감은 항상 있어왔지만,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도 나는 뭔가를 항상 많이 썼다. 내 연필 속에서 자음과 모음,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단들이 만나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그 과정이 뿌듯했다. 그것은 어른들로부터의 인정과는 상관없는 행복이었다. 학교에서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거나 원고지 몇 장짜리 글짓기를 하라고 할 때, 그야말로 나는 '오예, 개꿀~'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그것은 나의 재미였으니까.


그래서 이것들은 모두 어린 내가 스스로를 뛰어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지냈던 '똑똑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소설들을 탐닉했고, 친구들이 만화책을 숨겨서 읽을 때 나는 문학전집을 숨겨서 읽었다. 읽던 소설을 멈춰둘 때, 나는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교과서를 새로 받거나, 입시 문제집을 살 때도 항상 문학파트의 소설 부분은 새 학기가 시작된 그 주에 이미 마지막 페이지까지 찾아 읽었다. 그것은 나에게 게임 같은 거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흉내 내며 어디든 따라서 쓰곤 했다.



설명서 없이 레고가 쌓아지지 않던 무렵부터, 종이나 화면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어려워졌다.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슬며시 깨닫게 된 그 시기즈음부터. 멈칫.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쌓아올리기 힘들어진. 좋아하는 마음만 남아버린. 일종의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깨우친 네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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