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의 창가 자리
입원 생활은 길어졌고, 늘어지는 기간만큼 체중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체중이 가벼워지는만큼 보호자들, 그러니까 부모님들의 주름은 하나씩 빠르게 늘어났다. '나아질 것이다'는 희망의 기세는 입원기간이 늘어지면 늘어질 수록 그 의지가 루트를 씌운만큼 꺾인다.
6인실에 머무르면서 많은 환자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어떤 의사도 한 환자를 다인실에 오래 머무르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는 환자의 상태가 나아져서 하루 빨리 나가는 것이 병원의 역할이기 때문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새 환자를 받는 것이 병원의 경영적 측면에서 더 이윤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3주의 입원이 넘어갈 때쯤 부터는 나와 보호자는 물론, 의사도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상태가 됐다. 당시에는 내 병에 조치할 수 있는 주사제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 얼마 안되는 주사제를 투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도 복잡했기 때문이다.
가령 몇가지 검사들을 거쳐서 해당 주사제를 투여해도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아야만 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모순이었다. 왜냐하면 링거와 최소한의 영양주사만으로 몇주를 살고 있는 환자가, 피검사를 했을때 '건강한 수준'으로 나올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걷지 못할 정도로 위중했다.
이 주사제 투여만이 마지막 남은 수단인거 같다고 의사가 판단했을때, 당연히 환자와 보호자는 '어서 그거라도 해봅시다'밖에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칼로 찌르는 듯한 복통을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기 때문에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목을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몇가지 상태 검사를 했고, 그 동안 또다시 며칠이 흘렀다.
앞서 예고했듯 피검사 결과에서 뭔가 문제되는 항목이 나왔다. 나와 가족은 좌절했고 비참함을 느꼈다. 주사를 투여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면 의사와 의료진은 다시 '주사 투여를 결정하기 위한 검사'를 똑같이 반복해야 했다. 이렇게 고작 두세문장으로 요약된 입원 환자는, 며칠을 또다시 점점 더 아파지는 분초를 그저 흘려보내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흘려보낸 후 결국 투여하게 된 주사는 네시간에 걸쳐 맞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통증으로 인한 신음소리를 내는 것조차 참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신음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알수 없는 복도를 따라 침대가 이동했고, 입원실과는 조금 다른 어떤 주사실에 들어가서 나의 침대가 멈췄다. 의사와 몇명의 간호사가 혈압을 재는 등의 검사를 한 후 주사를 꽂았다. 그리고 나는 잠들었다. 편안하게가 아니라, 아주아주 많이 지친채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후 장면은 슬며시 눈이 떠지며 고요한 병실 가운데서 나를 바라보는 보호자나 의사를 마주하며 "여기가.. 어디죠?"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주사 투여 후 깨어날 때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나는 어떤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내가 누워있던 주사 장소는 그저 천으로 칸칸의 침상을 가려둔 곳이었다. 몇명이나 이 공간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는지는 인지할 수 없었지만, 커튼을 넘어 들려오는 오열 소리는 같은 공간에서 모두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바라본 어머니와 아버지의 표정은 천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당황해 보였고, 그러다가 내가 깨어난 것을 알아채셨었다. 천 너머에서는 오열소리에 이어서 빠른 발걸음 소리와 낮은 목소리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내 팔에는 아직 주사제가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고, 나의 뇌는 서서히 상황을 인식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옆 커튼 안의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겪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죽음의 순간이,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는 사실. 그것도 정말로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죽음 자체는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고 확실하게 인지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다. 자식을 살려야 하는 부모는, 전혀 모르는 제3자의 죽음이 말도 안될 정도로 가까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우셨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 쓰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이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커튼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었다고. 그래서 확실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던 죽음을 마주한 보호자들의 오열이 무겁지 않았다. 나는 단지 아프고 슬펐다. 내 생명이 내 몸을 떠나가는 그 기분이 무엇이었을지 떠올리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주사 투여 후 나의 상태는 기적적으로, 비록 아주 천천히지만 좋아졌다. 그 이후로도 몇주는 병원에서 더 보냈다. 움직이지도 못하던 신생아가 기어다니고,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나는 물을 마셔보기 시작했고, 죽을 먹어보기 시작했다. 결국 퇴원하게 되었을 때, 무슨 옷과 무슨 운동화를 신었는지도 생생하다. 평범한 일상복이었지만, 환자복만 세달 넘게 입던 사람에게는 특별한 아웃핏이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그리고 퇴원 후에도 나는 종종 하얀 천 한장으로만 서로의 침상을 나누어 두었던 주사실을 떠올린다. 그 사람은 그저 죽을 사람이었고, 나는 그저 살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같은 공간 내에서 죽음과 삶이 교차되었던 것일까. 나는 종교적으로 내세를 믿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먼저 떠나간 그 세계에서, 나는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지구적으로 삶과 죽음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 좁은 공간 안에서, 내가 아픔을 극복하는 전환의 순간에, 함께 존재했던 타인의 죽음이, 나에게는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당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 울어주기에 너무나도 타인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