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의 창가 자리
퇴원 날을 기억해보면, 수개월동안 항상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던 입원 생활 중 손꼽을 정도로 더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다. 모든 절차가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듯 후다닥 지나갔고 해야할 일이 많았다. 몇백에 달하는 병원비를 결제하는 일, 새벽부터 진료와 경과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몇주에 걸친 입원기간에 비례하는 짐을 싸는 일까지.
주치의 대신 수련의 정도 되는, 처음보는 여의사가 주사를 빼주러 왔다. 이건 사실 조금 특이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병원에 두 달을 머물렀기 때문에 청소해주시는 여사님들이나 총무팀의 아저씨들까지도 거의 대부분 얼굴을 알기 때문이다.
의사는 간단한 진료와 상태 확인을 마치 후 마지막으로 팔에 꽂힌 중심정맥관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링거를 꽂고 있다'에 해당되는 주사는 오래 꽂아놓을 수가 없다. 입원을 며칠이라도 해보면 알 수 있다. 주사 바늘의 특성 때문에 바늘은 매일 갈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쪽 팔에 이것을 반복하면 더이상 주사를 꽂을 곳이 없어진다. 상처가 아문다고 하더라도 주사를 바꾸는 속도가 상처가 아무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쪽 팔의 안쪽이 희미한 구멍으로 너덜너덜해지면 반대쪽 팔에 구멍을 뚫어 대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손등이다. 마찬가지로 양쪽 손등에 구멍을 내기 시작하고, 그 구멍들로 손등에도 더이상 바늘이 들어갈 수 없게 되면 주사를 꽂는 간호사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발등을 보게 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병문안을 갔는데, 발등에 주사를 꽂고 있다면 그 환자는 높은 확률로 오랜 기간동안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애당초 환자가 싹이 노란, 그러니까 내 말은, '이 환자가 병원생활을 오래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 상태라면, 여기저기 주사로 구멍을 내느니 중심정맥관 시술을 하는게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편하다.
중심정맥관은 주사액이 들어가는 그 두꺼운 관을 바늘을 통하지 않고, 바로 심장에 가까운 위치까지 몸 안으로 삽입하는 시술이다. 당연히 그 두께만큼의 큰 구멍을 뚫어야 하고 마취가 필요한 '시술'이지만, 한번 해두면 퇴원때까지 관을 바꿀 필요가 없다.
약물을 넣을 때도 바늘이 필요하지 않고, 팔에 연결된 중심정맥관 출구에 약통을 연결만 해주면 된다.
그래서 나의 경우도 양쪽 팔 안 쪽에 희미한 구멍들로 가득차서 간호사들의 시선이 어느덧 오른쪽 손등을 향할 때 쯤, 주치의는 중심정맥관 시술을 결정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기에 나는 안경 쓸 힘도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통증에 시달리다 못해 지치고 피폐해져 있을 때였다.
그렇게 시술실에서 나는 팔 안쪽에 지름 0.5센티미터 정도 되는 구멍을 뚫게 된다.
아프지 않을 거라는 시술의의 말과 달리, 마취가 되었음에도 나는 팔이 차에 깔린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은 아시안컵 한국 토너먼트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시술의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는지 "이거 간단한 수술이니까 끝나고 축구 봐야죠"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구멍을 뚫기 전에도 이미 아무 힘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시술동안 '중심정맥관'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내 몸에 관이 들어왔다는 사실만 인지한채 남은 병원 생활을 견딘다.
그렇게 퇴원날에서야 처음 보는 여의사가 이 관을 빼주게 된 것. 시술날 엄청 아팠던 기억 말고는 제대로 시술 장면을 볼 정도의 정신력이 없었던터라, 병원 생활 중 그 어느때보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관을 빼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니, 관이 이렇게 길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이 계속해서 팔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어질 정도로 관이 길었고, 정말로 관은 마치 팔을 통과해서 심장에 들어있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길었다. 가장 깊게 들어가있던 관의 끝 부분이 마침내 팔을 거쳐서 나오는 그 순간, 관은 '뽁'하며 묻어있는 피를 살짝 튀겨냈다.
관이 나오는 그 긴 시간동안 놀라움과 함께 처음 본 의사에 대한 어색함으로 물었다.
"안 징그러우세요?"
의사는 한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징그럽죠."
중심정맥관은 그렇게, 마치 내 긴 병원생활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듯 몸 밖으로 나왔다. 나는 '기념으로 가져가도 되냐'는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내가 기념할 정도로 병원 생활의 기억에 무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그 판단은 맞았던 것 같다. 지금도 병원 생활을 떠올리면 진저리쳐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길고 긴 중심정맥관이 내 몸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피를 튀기고 빠져 나옴으로서 마치 기원전-기원후처럼 칼같이 병원생활과 그 후를 나누면 좋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중심정맥관이 들어갔던 자리는 팔 안쪽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내 병이 완치가 없고 계속 관리해줘야 함을 표시해주고 싶어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조금만 내가 찬찬히 생각해 보더라도 병의 흔적은 이렇듯 여전히 곳곳에 산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