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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딥플로우 "FOUNDER"

음반리뷰

<진정한 클래식을 또 다시 갱신하다>


 "TV에서 볼 수 없었던 진짜 힙합"이라는 압도적인 타이틀로 한국대중음악상을 거머쥐었던 대머리의 거구 래퍼는 어느새 '변절자' 소리를 들으며 까마득한 후배 래퍼들에게 디스를 당한다. 대중매체의 극단에서 작두타듯 비트위를 춤추던 힙합 레이블의 수장은 어느새 '쇼미더머니' 심사위원으로 얼굴을 비춘다. "내가 변했단거 인정? 어 인정."이라고까지 일갈한 래퍼. 정확히 5년만에 날짜까지 동일하게 맞춰서 새 정규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이센스의 '이방인'이 명반임에도 'The Anecdote'가 시대를 뛰어넘을 수준의 수작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를 받은 것처럼, '양화' 이후 딥플로우의 정규앨범에 걸린 대중들의 기대는 살짝 꺾여 있었다. 게다가 이제 그는 더 이상 "TV에서 볼 수 없는 힙합" 최선봉에서 마이크를 휘두르던 그 때와 동일한 모습이 아니기에. 그렇게 나온 4집이다. 설립자, "FOUNDER".



 앨범의 뚜껑이 열리자 그에게 쏟아졌던 '변절자'라거나 '직전 앨범이 너무 명반이라서'라는 둥의 수식어가 쏙 들어간다. 방송에 대한 스탠스가 어떻게 바뀌었고는 'FOUNDER'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기십년간 엄청나게 많은 래퍼가 생기고, 비교될 수 없을만큼 수 많은 랩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진짜 힙합'이 무엇인지 결국의 답을 제시한 앨범이다. 래퍼가 아니라 클래식 아티스트로 불려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수작. 마치 바로 전 앨범 '양화'처럼.


 음악이야기를 할때, 항상 '음반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개탄했다. 대중음악의 인스턴트화 말이다. 음반은 이제 이 시장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음원이 필요할 뿐. 나는 십수년 전부터 '시대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음반(정규)은 가수와 아티스트를 나누는 마지막 기준점이다'는 의견을 표력해왔다. 그리고 시대는 정말 바뀌었다. 예측하지 못했던건 음반의 판매량이 과거의 백만 단위를 뛰어넘는 가수 -이를테면 BTS같은- 들이 오히려 더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 판매량은 부익부빈익빈으로 헤쳐모이게 됐다. 저물어버린 음반의 시대는 결국 '음원 사재기파동' 같은 오염된 환경을 야기하고 말았다. 


 음악에서 '장인'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완성작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를 뜻한다. 2020년 현재, 힙합계에 장인은 얼마나 남아있는가? 그들이 장인임을 무엇으로 증빙할 수 있을까? 딥플로우는 이미 2015년의 '양화'를 통해 그의 장인정신을 증명했고, 우직하게 5년 뒤가 된 지금 'FOUNDER'로 다시 한 번 묵직하게 힙합씬의 복부를 강타하는 것 같다. '나는 대중매체와의 연관성과 상관없이 그때도, 지금도 장인이다.'


 'The founder(2016)'는 패스트푸드 프렌차이즈인 '맥도날드'의 설립기를 다룬 영화다. 앨범의 제목 'FOUNDER'의 어원도 마찬가지. 딥플로우가 VMC의 FOUNDER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마치 파노라마(앨범 첫 트랙의 제목이기도 하다)처럼 말이다. VMC에서 출시되는 정규앨범이 작품성을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서사성이다. '양화'나 '작은 것들의 신'이 그렇다. 음원으로 열몇곡을 각각 공개하면 1년 내내 활동할 수 있을텐데, 굳이 정규앨범으로 트랙의 순서까지 심사숙고하여 배치한다. 오늘의 앨범인 'FOUNDER' 또한 정규앨범만이 가질 수 있는, 혹은 이 시대에 몇 나오지 않는 정규앨범의 존재 목적에 대해 잘 이해한 것 마냥 트랙들을 날카롭게 배치했다.




 앨범 문을 연 'Panorama'는 단조로운 비트에 훅 하나 없이 류상구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앨범 '양화'는 딥플로우와 VMC를 마침내 대중음악계에서 찬사를 보내게 만들었던 전환점이지만, 그는 가사를 통해 "내 파노라마 중 그저 한 컷이었던 양화"라고 단언한다. 

 맨들맨들하고 토속적인 최항석의 보컬을 피처링으로 세운 '500'이나 쪼들리며 음악 외길을 고집한 스토리의 'Low Budget'도 마찬가지로 딥플로우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보여준다. '품질보증'은 넉살, 던밀스, 우탄과 함께 그야말로 그들의 공연과 음악의 품질에 대해 자신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앨범의 다섯번째 트랙인 '대중문화예술기획업'위트있고 유쾌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합리적인 시스템에 대해 손가락질 하게 해준다. 그리고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딥플로우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읊어준다. 


 'Big Deal''Harvest''BEP'도 그간의 행보와 랩에 대한 자부심, 노력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Dead Stock'은 QM의 랩이 MSG처럼 맛깔나게 얹어진다. 'VAT'는 돈과 명예 그리고 위치를 벌게 되면서 그만큼 베풀거나 뱉어내야 될 책무가 늘어남을 묘사했다. 2019년에 먼저 발표되었던 곡 '36 Danger'는 서른 여섯살 래퍼의 위협적인 경고. 

 첫 트랙 제목처럼 파노라마로 이어진 딥플로우의 스토리는 인터루드 'Pretext Interlude'를 포함한 마지막 두 트랙을 통해 환호로 끝을 맺는다. 정인의 훅이 얹어져서 풍성함을 선사한 'Blueprint'로. 



 

 이렇게 CD가 멈추면 열세곡을 들은 느낌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류상구'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 형과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병을 기울이며 무용담을 들은 기분이 더 맞겠다. 그렇다고 각 곡들이 '음원'으로서 갖는 값어치가 부족하지도 않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각 곡들은 요즘 곡들처럼 길지 않은 재생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분 후반대부터 3분 중반대의 곡들. 담백하고 올드한 비트가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고, 한 명의 작곡가가 전 곡의 비트를 담당하여 통일성이 뚜렷하다. 개별의 음원이 아닌 앨범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2020년, 힙합은 더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어떤 장르를 하는 뮤지션들보다 래퍼들은 풍족한 삶을 누릴 기회가 많아졌다. 머니스웨그는 과연 어디서 오는가? 돈이 많다는 자랑 그 자체로 오는 속 빈 스웨그는 잠깐일지 모른다. 그 돈을 벌기 위해 비주류이던 시절부터 눈 돌리지 않고 걸어온 과정이 오히려 깊고 오래갈 스웨그가 아닐까. 딥플로우는 그 길고 험난한 과정을 모두 거쳐서 2020년까지 이르러 온 아티스트다. 투박하고 둔탁하며 단조로운 비트 속에서도 그의 가사가 폐부를 찌를 수 있는 이유. 그가 대중매체의 정 반대편에서부터 대중매체 깊숙한 곳까지 왔음에도 그의 앨범에는 침뱉을 수 없는 이유. 정규 4집 FOUNDER가 단호하게 인증하고 있다. 클래식 명반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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