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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책리뷰

<고작 인간의 눈으로 '시간'을 가늠하다니>


 2019년은 거의 다 갔다. 2020이라는 숫자를 향해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을 넘기고 있다. 2020까지 '년'이 바뀌려면 '날짜'라는 숫자들이 바뀌어야 하고, 날짜가 바뀌기 위해 '시간'이라는 숫자들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 막 또 12월 29일은 12월 30일로 넘겨졌다. 

 이 숫자들은 무얼 의미할까. 아니,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제 2의 스티븐 호킹'으로 평가받는다. 스티븐 호킹은 단지 '똑똑한 과학자'가 아니다. 범인이 이해하기 힘든 물리학, 양자역학, 우주과학에 대해 대중적인 이해 범위 속으로 넣은데 기여한 사람이다. '제 2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호칭을 생각해 볼 때, 단지 이 책이 '과학책'뿐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심오해졌다. 과학책만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 책은 철학에 가까운 과학책이다. 그래서 심오해졌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스티븐 호킹'의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와는 또 다른 느낌의 심장 뜀을 선사한다.


 이 책이 심장을 뛰게 한 건, '인간의 보잘 것 없음'에 대한 무서움을 새삼 인지시켜줬기 때문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대부분의 과학서적들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나가는 듯하다.

 때때로 '내가 늙으면', 혹은 '내가 죽으면'을 가정하고 상상에 빠지는데, 한없이 두렵다. 이 가정들은 결국 시간의 흐름 때문에 생기는 무지로 인한 두려움이다. 저자는 그 시간의 존재조차 희미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 대체 시간은 무엇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존을 만나러 프린스턴에 갔을 때, 나는 그와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

 이제 그는 이곳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과 추억, 부재의 고통. 그것이다."

 (p.127~128)


 이 부분에서 심장이 한번 쿵 내려앉았다. 유려한 공식들과 과학적 이론들로 시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의 부재에 대한 남은 자의 고통'을 바로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과학자라니. 물론 이 책에는 많은 이론들과 공식들이 등장하지만 저자는 한없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차가운 과학자이지만 따뜻한 텍스트를 간직한 사람이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인류는 시간에 대해 앞으로도 더 알아갈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정체가 어떻게 증명되더라도 누군가 남고 누군가 떠난다는 사실이 변할리는 없다. 그래서 결국 소중한 것, 결국 한정적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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