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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김훈 "공터에서"

책리뷰

<공허한 삶을 글로 이야기하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고 1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라면을 끓이며' 출간 행사에서 작가는 "소설을 쓰고 있다, 곧 나올 것이다, 제가 제일 마음이 급할 것이다, 기다려달라."고 쑥쓰러운 말을 전했다. 2015년 10월이었다. 


 무미건조한 문장 나열을 통해 세상이 무미건조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드러내 보이는 작가다. 요즘 인기를 끄는 문학 작품들의 형태를 완전히 정반대로 거스르는 이런 성향은, 오히려 작가의 인기와 입지를 굳힌 장치가 되었다. 김훈 작가의 글은 이제 세상에서 김훈 작가 본인만 쓸 수 있는 경지가 됐다. 


 글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통해 독자들이 느낄 부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고 언급한다. 작가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늘 영웅스럽지 못하고, 안타깝다. 뭔가 모자라고, 그냥 평범하다. 그것이 작가가 하고 싶은 궁극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는 왕과 지배층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민초들의 이야기였다. '흑산' 또한 그랬다. '현의 노래' 역시 시대만 옮겨서 다른 상황이었지만, 같은 아픔을 격는 '아랫것들'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칼의 노래'만이 우리가 잘 아는 진정한 '영웅'을 다루지만, 그 또한 다른 이들이 다룬 이순신과는 상반된는 모습의 '인간' 이순신을 우리는 읽었다. 그리고 그 인간 이순신은 스테디셀러가 되어 지금도 읽히고 있고, 우리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쓰여진 이 글은 작가의 자조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 또한 이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들 마동수-마장세-마차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했지만, 평범하고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별 이야기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결국 역사들은 대부분 이 '별 이야기 아닌 이야기'들이 가장 아래에 깔린채로 흘러간다. 

 밥벌이는 작가에게 늘 빠트릴 수 없는 소재이다. 그것은 작가의 글에서 뿐 아니라, 특출나지 않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이기도 하다. 작가는 늘 그것을 쓰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것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은 곧 독자 자신들의 아픔과 궁핍함에 속한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소설이고, 소설로 읽혀지길 바라지만, 사실 소설만은 아닌 그런 소설이다. 

 공터에 남은 평범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계속 바뀌어간다. 다른 모습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현실에서 살아간다. 피할 수 없고 두려운 현실을 그저 맞이한다. 이것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쉬운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고,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김훈 작가에게서 글이 된다. 


 다시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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