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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책리뷰

<무게가 달라야 하는 그들의 글, 그들의 말>



 대통령이 쓰는 단어들은 매우 조심스럽다. 사석에서 쓰여도 공적인 의미를 띈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이 갖는 의미는 강력하다. 단지 대통령의 워딩이 현상이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 사상, 신념 등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대통령이 쓰는 말과 글은 특별하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법적인 문제를 뒤로하더라도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어들은 너무도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확실하지 않은 워딩,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은 대통령의 사상과 신념을 의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지적 능력과 병적인 증상까지도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아예 '근혜어', '근혜체', '박근혜 화법' 등의 말들이 생길 정도였다. 대통령의 단어와 문장은 늘 확실하지 않았고, 확실할 때는 편을 가를 때 뿐이었다. 적과 나를 구분하는 대통령 특유의 단어들은 '통합'과 '소통'을 말하기엔 모순되어 보였다. 오히려 '전제'라는 단어와 더 맞닿아 있었다.


 저자는 말과 글을 같은 맥락에서 보았다. 사실 그렇다. 대통령이 공식성상에서 쓰는 연설은 글에 기초한다. 한번 쓰여진 글로 말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대통령이 써야하는 단어나 문장이 조심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인사라도 '안녕'과 '안녕하세요'와 '반갑습니다'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달변가로 널리 알려진 두 대통령을 수행했다. '말을 잘한다'는 결국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해 낸다'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대통령은 확고한 신념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신념과 사상은 '국민의'라는 정부 이름과 '참여'라는 정부 이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사회는 극심한 권위주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번 탄핵사태를 통해 이 권위주의에서 한걸음 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대통령을 '높은 사람', '모셔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청소부를 보면서 '대중 친화적'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그랬다면 반대 진영의 언론을 통해 '체통 없는' 대통령으로 낙인찍혔을 것이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말이 돌고 돌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점은 결국 두 대통령은 글을 잘 썼고, 그만큼 자기의 것으로 잘 소화해서 말했다는 것.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이해한다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많은 대중들에게 이해되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은 보편적인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 특정 시대에 갇혀 있으면 안 되면서도, 숲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이 본 숲을 국민들이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동안 대통령이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연설을 하고, 혹은 국민의 절반을 종북주의자나 반국가주의자로 매도하는 워딩을 너무도 많이 듣고 봤다. 그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상이자 신념이었을 것이지만, 결국 그런 사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을 뽑은 것은 국민들이었다. 이 탄핵을 통해 국민들은 눈 앞을 가리는 한꺼풀의 막을 벗겨낸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다른 사상과 신념을 가졌던 두 대통령이 어떤 과정으로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을 단어로 옮겨냈는지, 이 책은 절절히 설명해 준다. 물론 저자의 두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은 책 중간중간 드러난다. 그것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사랑받은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그 그리움의 표현이 불편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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