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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5. 2020

2019년의 손흥민

TEXTIST PROJECT

 대학시절, 박지성은 타지의 학교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였다. 박지성이 골을 넣는 날이면 치킨 값이 아깝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선수가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지 감사하던 날도 많았다.
 엊그제 같던 시간들이 훌쩍 지났다.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던 날도 생생하다. 2002년의 영웅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새 자리들을 찾았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입으로 환상적인 드리블을 선보이는 안정환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알던 판타지스타가 MC석에 앉아서 판타스틱한 진행을 하고 있으니 어울리는 듯, 이질감이 공존한다.
 녹색 잔디는 이제 그 세대의 후배들이 모두 채웠다. 스완지시티의 중원을 책임지던 기성용도 이젠 기량이 예전같지 못하다. 뉴캐슬에서 기성용은 고전하고 있다. 지동원은 M자 탈모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김보경은 K리그로 돌아와 국내를 빛내고 있다. 2002년 직계 후배들도 이렇게 경험을 채웠고, 나이를 먹어간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손흥민의 시대다. 손흥민은 독일에서 커리어를 키웠다. 성인팀 데뷔 이후 손흥민이 '부진했다'라고 평가할만한 해는 한 해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부진한' 해는 물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올해의 손흥민은 믿기지 않는다. 저 사람이 정말 한국인일까라는 물음표가 경기 내내 머릿속을 지배할 정도로 그의 체력과 기술은 월드클래스다.
 그러다가 손흥민이 말도 안 되는 골을 넣어버리면 어렵지 않게 관중석의 태극기가 보인다. 거의 비명처럼 이어지는 중계 멘트,
"이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맨체스터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에서 손흥민의 골 이후, 맨시티 선수들의 격앙과 좌절이 섞인 표정을 스윽 카메라가 훑고 지나갔다. 나는 데브라이너를 비롯한 백색 피부의 선수들 얼굴에 비춰진 그 분노와 흥분을 잊지 못한다. 동양인보다 월등한 체격과 우월한 기술 축구를 구사한다고 자부하던 서양인들이다. 손흥민은 그들의 수비라인을 무너뜨리고, 기술로 그들을 이겨내며 그들이 지키던 골대에 무자비를 선물한다. 무릎꿇고 애꿎은 물통을 던지는 골키퍼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손흥민과 동료들의 세리모니가 잡힌다.

 '국뽕'이라는 말은 그 유래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무분별하게 국적을 이유로 찬양을 보내는 행동을 일컫는다. 그런데 손흥민의 경기 다음 날이면 온갖 포털에 네티즌들은 스스로의 '국뽕'을 커밍아웃한다. 우리가 손흥민과 같은 점은 오로지 국적 하나 뿐인데, 이토록 우리에게 자랑스러움과 뿌듯함, 그리고 열광을 준다. 신기한 일이다.


 내 영웅 중 한 명인 박지성 이후로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에서 (거의) 뛰게 될 선수가 다시 나왔다. 사실 이것보다 더 오래지나고, 더 늦게 나타날 줄 알았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박지성의 영광된 자리를 손흥민은 조금씩 밀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더 많은 젊은 선수들이 전 세대의 영웅들을 흐릿하게 만들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남이지만, 왜 이렇게 가슴뛰게 하는지 모른다.
 오로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색의 피부를 가졌고, 같은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가 이 정도로 자랑스러워 할 근거가 되는지는 모른다. 긴 생각 전에, 이미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 수십배 수백배 흥분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늘 웃는 표정의 젊은 영웅을 응원한다. 다치지 않길 기원한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잠을 쫓고 기다릴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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