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May 31. 2020

김윤아 "315360"

음반리뷰

<로커가 어머니의 눈을 갖게 되었을 때>


 요즘에는 그룹가수들이 참 많다. 아이돌그룹의 이름은 외우기조차 힘들어진다. 유닛이라고 불리는 아이돌그룹, 아래의 그룹까지 나온다. 솔로로서의 앨범도 엄청나게 많이 쏟아진다. 색깔의 다양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걸 누가 모르냐만은 너무 과하다 싶다. 이젠 이 그룹의 이 멤버와 저 그룹의 저 멤버가 같은 사람이어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자우림이라는 걸출한 밴드의 멤버로서 김윤아의 정체성은 그래서 더더욱 빛이 난다. 한편 솔로 김윤아도 다른 아이돌 그룹의 솔로활동과는 판이하다. 자우림과 같으면서도 다른 김윤아다. 김윤아는 자우림의 보컬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솔로로서의 김윤아는 자우림의 색깔과 크게 다를거 같지 않지만 분명 다르다. 다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보인다.

 좀 더 대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일단 다른 밴드그룹의 보컬 솔로들은 그러하다. 윤도현이 그랬고 민경훈이 그랬다. 정용화가 또 그랬다. 그런데 김윤아의 앨범이 자우림보다 대중적이다? 글쎄, 여기엔 분명 의문을 제기할만하다.





 김윤아의 솔로 1집은 대중적이라는 착각을 준다. 타이틀곡이었던 '봄날은 간다'가 잔잔하고 대중적인 '신승훈'스러운 발라드 풍의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앨범 면면을 보면 대중성과 가깝다고 보긴 또 힘들다. 발라드풍의 색조를 앨범 전반에 띄고 있지만 탱고와 같은 비주류 장르들이 격트랙으로 끼어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김윤아의 솔로 2집은 아예 대중성을 완전히 버린 앨범이다. 김윤아와 자우림의 모든 앨범을 통틀어서(여기엔 자우림의 미니앨범인 '제목없는 앨범'도 포함한다.) 가장 어둡고 절망적이고 극단적으로 까만 색깔의 앨범이기 때문이다. 트랙들의 제목들도 그러하다.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증오는 나의 힘' 등. 제목만 봐도 어둡고 처절하다.

 즉, 김윤아로서의 앨범은 대중성이나 자우림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자우림과 다른 김윤아'를 보여주면서 밴드에서 각 밴드 음색의 밸런스를 맞추느라 조절했던 보컬로서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량이라는 것은 단지 고음을 내지르고 옥타브를 넘나드는 역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 곡에서 드러낼 수 있는 감성적인 부분을 최대한 절제하거나 폭발시키는 역량을 말한다.


 1집과 2집에 이어 3집에서 어떤 색을 보여줄 것인가는 앨범 발매 전 관전 포인트였다. 김윤아 3집 이전의 자우림 앨범이었던 7집에서 'Canival Amore'같은 밝고 명량한(비록 가사는 그렇지 않았지만)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17171771'과 같은 곡에서 드러났던 김윤아만이 가질 수 있는 명량하고 밝은 목소리를 적극 활용했다.

 김윤아의 3집은 그동안 '보컬리스트'나 '밴드'로 보여졌었던 모습을 넘어서려 노력한 앨범이다. 3집의 느낌은 그야말로 '어머니 김윤아'. '로커 김윤아',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아닌.




 열 두 트랙으로 이루어진 곡 들 중 'Going Home'은 이 앨범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김윤아의 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쓰여진 곡이라고 한다. 담담하고 절절하다. House가 아닌 Home에 대한 이야기. 이어지는 다섯번째 트랙 '도쿄블루스'는 더블 타이틀로 내세워진 곡이다. 'Going Home'이 김윤아 1집 같은 잔잔하고 감동을 주는 느낌이라면 '도쿄블루스'는 김윤아 2집에 가까운 분위기다. 어두움의 극단. 두 곡을 이어서 배치하면서 대조되는 색채를 더 명확히 보여준다. 의도한 것일지도.

 일곱번째 트랙 '에뜨왈르'를 통해 청자들은 김윤아가 이제는 그저 수 많은 어머니들 중 한 명이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따뜻한 이불같은 곡. 여덟번째 트랙인 'Cat Song'은 'Carnival Amore'나 '17171771'에서 보여준 밝은 음색을 소화했다. 하지만 가사는 버려지는 반려동물들의 이야기. 밝은 목소리로 처참한 가사를 읊조려서 더욱 가슴이 저민다. 

 열 한번째 트랙 '검은 강'은 김윤아 2집에 실려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어두운 곡이다. 앨범 전체의 마무리를 어두움으로 마무리 하려 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 곡 다음에도 트랙은 이어진다. 





 트랙은 절정의 느낌을 주는 열 한번째 트랙 '검은 강'에서 끝나지 않고, 열 두번째 트랙에서 이어진다. '이상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마지막 트랙. 그런데 이상하다. 마지막 트랙같지 않고 익숙하다. 그렇다. 곡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첫번째 트랙인 '이상한 나라의 릴리스'와 멜로디가 매우 비슷하다. 앨범은 순환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열 두번째 트랙인 '이상한 이야기'에서 첫번째 트랙 '이상한 나라의 릴리스'로 돌아온다. 돌고 돈다. 계절처럼, 인생처럼.

 앨범 제목 '315360'은 발매 당시 김윤아의 나이인 36살을 의미한다고 한다. 앨범은 곧 김윤아가 살아온 삶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자우림은 엄연히 록그룹이다.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가사들을 그들만의 색채로 오랫동안 보여줘왔다. 그런 점에서 이 3집은 조금 대조적이다. 위로와 담담함의 목소리로 반복되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앨범이다. 세상을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노래하는 로커의 목소리가 아니다. 어머니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그것이 이 3집에서 보는 세상이다. 그 세상이 비록 '릴리스'가 살고 있는 '이상한' 세상일지라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19년의 손흥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