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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5. 2020

김영하와 악역들

TEXTIST PROJECT

 재밌는 이야기를 글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온 꿈이다. 글의 실력과 무관하게, 지금도 열심히 문장 하나하나를 쌓아가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여러 주연들과 조연들에게 감화된다. 하루종일 쓰여진, 그리고 쓰여질 글들만을 생각하는 날은 순간적으로 주인공을 실존 인물로 착각하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그 친구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한건지 궁리한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들을 이어나가다가 문득, '아, 내가 만들어 내는 가상인물들이었지..'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리곤 한다.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두 편이다. 하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고, 하나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이어나가다보면 내가 글을 쓰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질 중 아주 중요한 자질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자주 깨닫는다.


 김영하는 이젠 방송에서도 너무 유명해진 작가다. 나는 김영하 작가의 글을 그가 유명하지지고 나서야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글을 공부하면서, 내가 왜 소설을 쓰기에 최적화되지 못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왜 작가가 작가인지, 왜 소설가가 소설로 성공하는지를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찌릿하게 느낀다.
 작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입체적이다. 내 옆에, 우리 회사에, 다니는 성당에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다. 그렇게 가까운 줄 알았던 사람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고, 죽이고, 기억을 잃고, 배신한다. 주인공들의 갈등은 이야기가 끝을 맺었을 때, 작가가 글 전체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읽는 사람 가슴 깊숙한 곳에 꽂아버린다. 딜리버리가 탁월한 래퍼 같다.

 나는 자꾸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주인공들을 두둔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이유를 부여한다. 악역은 악해야 하는데, 악역조차 어느 순간부터 감싸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냉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내 주인공들도 서로 싸우고, 죽이고, 배신해야 진행되는 이야기들인데, 이유를 설명하고 감싸다가 진행이 멈춰버린다.

 김영하를 자꾸 다시 읽어야 되는 이유다. 냉정해지지 않으면 내 글은 그냥 '좋아서 쓴 글'로 끝날 것 같다. '사랑받는 글', '주제를 전달하는 글'이 되려면 내 주인공들 중 누군가는 못되게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죽여야 하고, 누군가는 사기꾼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들이 완성되었을 때, 읽는 이들이 내 악역들을 한없이 미워해도, 나 스스로 속으로는 그 악역들조차 감싸고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용기를 갖고 나쁜 놈을 나쁘게 만들 수 있도록, 오늘도 나쁜 놈을 나쁘게 묘사해본다.

 이러다가 또 어느 순간부터 문장들은 악역들에게 명분과 이유를 달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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