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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5. 2020

영동중학교

TEXTIST PROJECT

 일터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교차로에서 우회전으로 올라가면 내가 일할 건물들이 보인다. 건물의 앞에는 중학교가 하나 있다. 나는 출근할 때의 이 길이 항상 설렌다.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나의 출근시간이 맞물리면 이 길은 많이 붐빈다. 횡단보도를 늦게 뛰어 건너는 아이들도 많다. 자연스레 일터를 향하는 마지막 길에서 출근은 지연된다. 하지만 이 지연이 주는 에너지는 짧은 내 단어 수준으로 쉽게 표현하기 힘들다.
 학생들은 표현이 넘친다. 밝고, 화내고, 짜증내고, 웃고, 떠드는 모든 표현들이 얼굴에 숨김없이 묻어난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모두 다르다. 아직 때묻지 않은 산뜻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아이들은 잘 웃는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가는 두 남학생들은 서로 자기들의 종아리를 발로차며 깔깔댄다. 멀리서 뛰어오던 다른 아이가 뒷통수를 때리고 도망가며 낄낄댄다. 맞고 쫓아가는 아이도 욕을 내지르며 뛰는데, 그 때 조차도 웃는다. 여학생들의 깔깔거림은 더 극적이다. 교문 앞에서 회초리를 들고 아재개그를 날리는 선생님의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세 학생은 손을 잡고 교문을 지나가는데 서로를 만지고, 때리고, 팔짱을 꼈다, 풀었다 하면서 한없이 웃는다. 아이들은 아름답고 힘이 넘친다.


 대학교라는 거의 일관된 목표를 향해가는 아이들은 교복과 학교로 묶어놔도 자유롭다. 통제할 수 있는 습성이 아니다. 나는 해외를 많이 가보지 못했지만 어느 나라의 같은 또래를 만나도 공통된 에너지일 것이라 짐작한다. 아이들은 단지 생물학적으로 젊기 때문에 밝고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어리고 깨끗해서, 속으로 돌고 있는 젊음을 표정과 행동으로 한없이 표출하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혼자서 믿고 있다.

 중학교 시절의 나도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마찬가지였다고 슬며시 대답이 나온다. 에너지가 넘치고 잘 웃고 자유분방했다.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어둡고 칙칙한 건물과 교복들 사이에서 생활했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자유로운 상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하루들이 모두 보람차고 효과적으로 미래를 만들었는지는 호언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서른이 넘어 열 네다섯살을 떠올려보면 그 시기의 모든 하루들은 효율성과 무관하게 소중했다.
 남중이었던 대송중학교의 하루들은 덜 사회화된 남자 아이들만의 냄새와 습성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졌다. 한 주에 한번 이상은 꼭 큰 싸움이 났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유리가 깨졌다. 한 반에 한 명 이상은 꼭 깁스를 하고 있었다. 급작스럽게 육체적으로 성장한 사춘기 소년들은 육체의 성장만큼 정신이 따라주지 못했다. 방향을 찾지 못하고 넘치는 육체의 에너지들은 이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표출됐다. 그렇게 소년들은 더 자랐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법을 하루하루 익혀갔다.

 어린 시절 어린이미사나 청소년미사를 보면 한 분단 정도의 규모를 그 세대가 가득 채웠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바글바글한 아이들이 성전의 한 섹터를 차지하고 신부님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신에게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소년미사에서도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아이들이 그만큼의 규모로 자리를 채웠다. 청소년들은 아이들보다 덜 아이들인 척하며 미사를 봤지만 그들도 아이들이었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의 그 성당에서 미사를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줄었는지 종교가 약해졌는지 이론적으로 계산해보진 않았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모두 합해서야 예전 섹터만큼의 규모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듬성듬성 앉아서 머릿 수가 줄어 있었다. 아이들은 십 수 년 전보다 희소성이 높아진게 틀림없다.

 오늘 출근하면서도 교문이 닫히기 직전에 숨이 넘어가도록 뛰어오는 아이들을 본다. 1분, 아니 몇 초 늦는게 대수냐고 웃으며 되뇌이면서도, 막상 중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그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일상의 전부였던 날들로 채워져 있다. 아이들은 뛰어오면서, 숨이 넘어가면서도 "선생님~"을 외치며 떠든다. 교문을 통과한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꿀밤을 피하면서도 깔깔댄다. 아이들은 그냥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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