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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31. 2020

이센스 "The Anecdote"

음반리뷰

<그냥 힙합답게, 솔직해지자>


 슈프림팀의 스토리는 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늘 그랬듯이 나는 이 앨범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을 중점적으로 쓰려고 한다.


 앨범을 샀을 때, 자켓의 느낌은 '멍'이었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흰색 자켓에 'KMH'라는 이센스의 이니셜(강민호) 말고는 어떤 사진이나 그림도 없다. 안을 열어봐도 그렇다. 하다못해 요즘 나오는 모든 앨범들이 포장이 화려하게 나오는 데에 반해 쥬얼케이스조차 아예 투명이다. '응?'이라는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



 앨범을 주기적으로 사서 듣는 사람들은 아마 느낄 것이다. 요즘 나오는 앨범들은 이 유리 케이스, 즉 '쥬얼케이스'로 나오는 경우조차 드물다. 이 이유는 음반이 '듣는'가치에서 '소장'가치로 바뀌었기 때문인데, 따라서 이 앨범의 포장상태는 이런 트렌드를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인 셈이다.

 그런데 음악을 들어보면 이런 앨범의 포장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밖에 없다. 피처링으로 가득하고 온갖 다양한 일렉, 혹은 어쿠스틱 멜로디라인이 혼재된 요즘 앨범들과는 판이하다. 이 앨범은 피처링조차 딱 한곡이다. 멜로디라인도 아주 단조롭다. 이센스의 랩이 이 앨범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느낌.




 '주사위' 같은 곡을 원했다. 이렇게 솔직한 가사가 최근 힙합씬에 있었나 싶다. 그저 이센스의 이야기다. 세상에 가득한 불만들을 어떤 희망이나 자기 성공의 사례로 승화시킨 그런 곡이 아니다. 그저 이센스가 느낀 그대로의 세상 이야기.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 보다 후렴구의 가사만 적어도 이 곡을 잘 설명할 것 같다. '야, 돈 많고 잘 나가면 장땡이야, 니가 뭘 하던 굶으면 의미없어.'

 네 번째 트랙인 'Next Level'은 좀 더 단단하다. 학교를 관두고 거쳐온 래퍼로서의 삶. 가사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인생에 '한 방'은 없다. 이센스는 그저 '한계단씩 차례대로' 올라온 자신의 래퍼라이프에 대해 어떤 불만이 없다. 그저 '아 그땐 X같았지, 지금은 X나 쩔잖아? X발'정도의 느낌.

 인터루드 같이 짧은 곡이 여섯번째 트랙에 위치한다. '10.18.14'단단한 이센스의 랩으로만 꽉 차있다. 멜로디는 그저 먼 배경일 뿐. 개코에 대한 디스곡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본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런 개별적의 곡의 해석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곡을 듣는 모두가 느낄 인상깊은 부분은 가장 마지막의 '멜론 1위 했던데? 어, 굿좝!'이지 않을까.

 타이틀곡으로 표시되어 있는 앨범과 동명의 곡 'The Anecdote'가 일곱번째 트랙이다. 불만과 비판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읖조렸던 이센스의 랩과 동떨어진 곡제목처럼 이센스의 '일화'. 가사를 듣다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스토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게 된 이센스의 이야기이다. 낚시를 데려가면 이제 지루한 티를 내지 않겠다는 부분, 현관의 신발이 5켤레에서 4켤레가 되었다는 부분, 목욕탕에서 때를 미뤄주었다는 아버지의 모습과 냄새, 그리고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 본다면' 어떠실지를 궁금해하는 부분. 절절하게 슬프다. 이센스의 랩으로도 이런 슬픔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건, 철저하게 솔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센스 본인도 이 곡을 녹음하면서는 조금 눈물이 났다고 얘기했다.

 'Tick Tock'은 유일하게 피처링이 들어간 곡이다. 근데 이 곡에 피처링한 '김심야'에 대한 정체에 대해 당시에는 분분했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이젠 그 누구도 XXX의 김심야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를 이센스가 기용한 이유가 너무도 명백했음을 이 곡이 보여준다. 




 가요계가 흥망을 거듭하는 가운데 힙합은 나름대로의 길을 찾았다. 바로 '스웨그'이다. 결국 힙합은 그 히스토리에 깔려있는 '뒷골목'정신과 혹은 '삐딱선' 마인드를 벗어나서 주류 장르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 결정체가 '쇼미더머니', 혹은 '언프리티랩스타'이다. 이제 힙합은 더이상 비주류 음악이 아니다.

 그런데 힙합은 록처럼 특유의 무게감과 '정신'이 있었다. 이젠 잘 보이지 않는다. 주류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가사로 승부보는 곡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이번 이센스의 앨범이 환호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가뭄속의 단비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의도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모든 곡의 멜로디 라인은 화려함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단조롭다. 그래서 담백하다.

 이 담백함에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가사들을 얹었다. 방송따윈 고려하지 않은 이센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은 그런 가사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보았던 '우러러봐야 하는 래퍼들'이 아니라 '우리처럼 세상이 '짱나고', 욕할 거리 많은' 그런 래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존x' 솔직한 모습 자체. 오랫동안 힙합 음악을 듣던 사람은 당연히 기다렸던 그런 가사들, 그런 노래들이다. 이 앨범에 없는 색의 곡은 '화려한 곡'뿐인데 사실 그런 면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음을 이센스가 보여준 것이다.


 이 앨범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모르겠다. 호불호가 갈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앨범의 정신대로라면 '듣기 싫은 새X들은 욕할 생각말고 듣지마'가 되겠다. 그것이 이센스식의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 이 글의 원문이 쓰여질 때는 짐작만 했던 앨범의 어마어마한 완성도는 '한국대중음악상' 수상과 '한국 100대 명반' 등에 선정되며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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