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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07. 2020

1917(2019)

영화리뷰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명명백백히 증명한 포성>


◇ "왜 영화관까지 가서 영화를 봐야하나?"에 대한 근거있는 대답

 유튜브, 넷플릭스, IPTV 등등. 이미 우리는 영화를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영화를 송출하는 하드웨어들 또한 십 년 전, 이십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향평준화된 사양을 갖추고 있다. 이제 우리는 터치 한 번, 리모콘 누르기 한 번, 클릭 한 번으로 왠만한 영화는 가능한 가장 편한 자세로 즐길 수 있다.

 영화관에 가려면 참 귀찮다. 예매 기본의 시대에 무작정 영화관 가는 교통편을 찾는건 경솔한 일이다. 가는 시간, 광고보는 시간, 오는 시간까지 모두 기회비용으로 감수해야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상술한 매체를 이용해서 영화를 보면 지루하다 싶을 때 끊었다가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지만, 영화관은 상영 도중 나오기도 힘들다. 그대로 매몰비용이 된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선 영화 선택부터 예매와 방문, 대기시간까지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화관을 필요로 한다. 영화관에서 보여주는 영화의 감동은 집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보는 것과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 다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다름을 오늘 소개할 1917을 내밀며 강하게 자신할 수 있다. 



 일단 전쟁영화다. 크고 넓은 화면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사방에서 울리는 포성과 총성을 영화관이야말로 가장 격렬하게 담아낼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OST는 이야기의 모든 걸 웅장하고 감동적이며 때론 슬프게 버무려 준다. 영화관은 1917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요소들을 오감 곳곳에 폭우처럼 들이부어주는 공간이 된다. 119분 동안 말이다.


◇ 전쟁의 색깔


 전쟁이라는 주제와 씬의 색감은 정반대로 대비되며 진행된다. 흔히 대중들에게 인식된 '전쟁'은 어둡고, 잔인하고, 뿌옇지만 1917에서는 의외로 밝은 풍경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흘러간다. 밤을 흘려보내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극히 적다. 특히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장면은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도 맑고 밝은 풍경 속에서 진행된다.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격하는 군인들과는 별개인듯, 정면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스코필드의 모습은 1917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이 때의 잔디밭은 더없이 푸르다. 


◇ 롱테이크로 느껴질만큼 지속되는 서사

 이야기 진행만 봤을 때는 속칭 '요즘 영화'들과 차이가 있다. 액자식으로 구성된다거나 회상씬이 나온다거나, 혹은 여러 위치에서 이야기가 각각 진행되며 병합된다거나 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미션 하나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롱테이크가 아님에도 영화 전체가 롱테이크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하나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게 만든 롱테이크적 착시는 영화 내내 늦출 수 없는 긴장감과 영화 말미의 해소감정을 최대한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 '군인'의 임무, '사람'의 약속 (스포일러 있는 문단, 스포일러는 연한 폰트로 작성)

 두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블레이크의 형이 속해있는 대대에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하는 임무를 받았다. 단지 둘만 가야 한다. 모두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임무에 대해 블레이크는 절대 굽힐 생각이 없다. 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코필드는 회의적이다. 불가능한 임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코필드는 돌아가지 않는다. 형을 지켜야 하는 블레이크의 마음을 이해함과 함께, 어쨌든 그도 함께 받은 명령이고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목숨보다 임무가 우선인 군인들이고, 그들이 속한 세상은 무려 제 1차 세계대전 중이다.



 블레이크는 안타깝게 죽지만, 스코필드의 달리기는 계속된다. 그에게는 여전히 임무가 남아있다. 전우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다. 중간에 만나게 된 장교의 위로만큼 전쟁 중에 적절한 말이 없다. "계속 생각해봐야 소용없다."

 시체들이 둥둥 떠있는 물에서 겨우 올라온 스코필드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폭발하는 그의 감정은, 힘듦과 상실감, 허무와 회의는 화면 밖으로 충분히 전해진다. 마침내 그는 방탄모와 총조차 없이, 돌격하는 모든 군인들과 전혀 상관없는 듯, '그와 블레이크'의 임무를 위해 예고편에 나왔던 그 잔디밭을 전력질주한다. 그리고 아주 약간 늦긴 했지만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한다. 

 여기까지 스코필드 병장의 군인으로서 명령 수행은 끝이 났다. 하지만 군인도 '인간'이다. 스코필드의 울음에서 이미 관객들은 절실하게 느꼈다. 인간끼리의 약속,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탈진해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몸을 다시 바쁘게 움직이며 블레이크의 형을 찾는다.

 


 블레이크 중위와 스코필드 병장의 만남. 그제서야 블레이크, 스코필드의 이름이 나온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성'이다. 군인으로서의 그들에게는 '이름'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블레이크와의 약속은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한 일이었다. 그 상징이 바로 '이름'이다. 그렇게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인간으로서의 약속을 지키고 나서야 비로소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톰과 윌리엄으로 치환됐다. 


 영화는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군인의 목숨 건 임무]를, [인간끼리의 약속]으로 색감을 옮겨갔다. 영화 첫 시작에서 두 그루의 나무에 기대 잠들어있던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장면이, 영화 마지막에는 스코필드 혼자 한 그루의 나무에 기대어 끝나는 장면으로 중첩되어 보인다. 아찔한 마음 한 구석의 아픔을 남기며 크레딧이 올라간다.


◇ 분석보다 동화

전쟁영화는 항상 해소감정과 함께 아픔을 남긴다. 그냥, 영화 자체에 모든 걸 이입하고 동화된 채 느껴도 될 119분이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아픔과 뭉클함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면, 영화관까지 방문하며 들인 모든 정성과 시간과 기대는 결코 아깝지 않게 남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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