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Jun 07. 2020

떡볶이

TEXTIST PROJECT

 아내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나는 떡볶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맛있거나 특별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떡, 어묵, 파, 고추장은 흔히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연애기간을 훌쩍 지나 결혼생활에 이르러서도 아직 아내가 왜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사람은 별개다. 아내가 좋아하니까 많이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 종종 같이 먹으려 노력한다. 사실 '노력'이라는 표현까지는 너무 생색이다. 수정한다. 종종 같이 먹곤 한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을 뿐, 싫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노력성이 필요한 일도 아닐 터다. 여튼 같이 먹으면서도 떡볶이는 평범한 음식 이상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건 즐겁다. 사실 놀리기 좋다. 나는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놀리는 걸 좋아한다. 아내는 결국 삐지곤 하는데, 나의 짖궂음이 놀림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 같다. 딱 적정선에서 그만 놀리고 멈춰야 평화롭다. 그런 즐거움 때문이었는지 아내보다 먼저 퇴근하고 집에 온 날, 떡볶이를 사러 나갔다.

 기억 속의 떡볶이는 '분식'이다. 종이컵에 500원, 300원씩 팔았던 그런 떡볶이 말이다. 분식점이라는 곳을 가지 않은게 얼마나 되었는지 세어보질 않았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집은 휘황찬란한 프랜차이즈 가게였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2~3인분을 판다고 해도 만 몇천원이라는 금액과 떡볶이라는 음식이 쉬이 매칭되지 않았다.
 메뉴도 참 다양했다. 순대가 들어간 메뉴부터 차돌박이가 들어간 메뉴까지. 뭘 주문해야될지 모를 정도의 다양함에 아내에게 연락해서 메뉴를 골랐다. 대학생 정도로 되어보이는 건장한 점원이 밝게 웃으며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자리에 앉았다.
 가게에는 고등학생? 혹은 중학생(이라면 3학년이 분명하다)으로 보이는 객 세 명이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떡볶이는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생각했었는데, 남학생 세 명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다면 이 정도의 양으로 파는게 맞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학생들은 허겁지겁 할 얘기를 다 하면서도 떡볶이를 먹었다.
 나는 이 나이의 학생들을 보면 이유없는 흐뭇함을 느낀다. 이유는 모른다. 동경일지도 모른다. 혈기왕성함에 대한 동경, 때가 덜 묻었음에 대한 동경,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학업에 속해 있다는 동경, 뭐가 됐든 알 수 없다. 다만 고작 떡볶이(라고 하기엔 만 몇천원이 되어버렸지만)한 판을 세 명이 같이 먹으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내는 모습에서 다시 그 흐뭇함을 느꼈다.
 학생들은 게임 이야기, 학교 이야기, 축구 이야기를 두서 없이 이어서 하는 듯했는데, 문장마다 가끔식 섞여있는 욕설이 아름다웠다. 그들은 그들끼리 욕설을 문장 속에 가감없이 넣고, 같은 냄비의 떡볶이를 먹음으로서 그들간의 친밀을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같이 포크를 넣고 있는 떡볶이 냄비만큼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섭취하는 이들일 테다.
 나는 청소년들이 내는 그 강렬한 긍정성과 혈기를 매번 이기기 힘들다. 마치 그 강렬한 발산에 소소한 보답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도 갖는다. 아마 몇 천원이었으면 "학생들, 맛있게 먹고 공부 열심히 해요."라는 꼰대스러운 문장과 함께 계산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떡볶이는 이만원에 가까워진 시대가 되었고, 다행히 나는 계산하지 않았고, 다행히 나는 꼰대로도 남지 않았다. 아쉽게도 참 다행이다.

 학생들의 대화는 얕지만 깊다. 내가 그 나이를 겪어봤기 때문에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분명 그랬다. 주변 친구들과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 했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고, 세상과 사회가 내 손아귀 안에서 쉽사리 움직여질 것이라는 희망과 야망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어른에 가까울 정도로 자란 신체에 어린 생각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전부 누적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에겐 누적될 일부다. 저 학생들은 떡볶이를 먹으면서 수만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한없이 아름다운 어리고 젊은 시절의 꿈과 야망, 바람과 즐거움을 시나브로 누적해 가고 있다. 그 농담들, 때론 진지한 불평들, 학교라는 틀에 대해 좁다고 느끼는 마음들,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 떡볶이가 줄어드는 만큼 공유되고 꽃피워진다.

 학생들의 대화를 흐뭇하게 더 들어보려는 때 즈음 주문했던 떡볶이가 나왔다. 값을 치르고 문을 나오니 쌀쌀하다. 아내가 따뜻한 떡볶이를 먹길 바라며 조금 빠르게 걸어서 집에 들어갔다. 마치 어디든 뛰어다녔던 학생 시절의 왕성한 에너지를 가진 것 마냥.

작가의 이전글 1917(20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