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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07. 2020

전염병1 : 나약함

TEXTIST PROJECT

 위대한 인간은 불과 수백년동안 증기기관에서 반도체까지를 만들었다. 말똥을 치워가며 극소수의 귀빈층만 타던 마차는 백수십년만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아스팔트와 자동차들이 대체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기마병이 존재했었는데 수십년 후의 2차 세계대전에서는 원자폭탄이 등장했다. 인간의 발전속도는 짐작하기 힘들다.
 인간은 마주하는 대부분의 한계들을 극복하며 발전했다.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의 위엄을 과시한다. 1년동안 상어에 의해 죽는 인간의 숫자는 10명 안팎이지만, 인간에 의해 죽는 상어는 1억마리 가량에 달한다. 이미 인간은 극복의 수준을 넘어서서 생태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종이 됐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의미에서든.
 그러나 피라미드 최상층에 위치한 인간은 여전히 감기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감기는 대증요법만이 해결책으로 존재할 뿐, 감기 자체의 원인은 여전히 잡아낼 수 없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무서운 병인 셈이다. 감기의 두려움은 증상과 통증보다 전염성에 있다.
 인류는 전염병에 승리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그저 생존 방안을 찾고 극복해 낼 뿐이다. '총, 균, 쇠'라는 책은 인류를 움직인 세 요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중 '총'과 '쇠'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활용한 것들이다. 하지만 '균'은 인간과 무관하게 발현되어 수 많은 인류를 죽인 역사가 있다. 인간의 개체 수를 그린 그래프는 중세시대의 흑사병 시점에서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래도 의학의 힘은 무시할 정도가 아니어서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는 균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균들의 전염성까지 제어하진 못한다. 통제하려 노력할 뿐, 결국 병들의 전염력은 인간의 생존 의지만큼 강력해 보인다.
 2020년을 시작하며 나라를 뒤덮은 '코로나19'는 어느새 수개월동안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잠잠해지길 바랐지만 특유의 전염력으로 지구 곳곳에 자취를 남기는 중이다. 코로나19는 사람을 당장 죽일 정도의 잔인함을 가지고 있진 않으나, 인류가 가졌던 생존력을 본받듯 어떻게든 스스로가 생존할 숙주를 찾아 그들의 개체수를 퍼트리고, 또 퍼트리고 있다.
 인간은 큰 재해를 마주하면 그제서야 얼마나 인간이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은 건물들, 드넓게 포장한 도로들은 지진 한번에 휴지가 우스워 보일 정도로 쉽게 구겨진다. 인간 기준에서 무겁고 웅장하다고 여겼던 물건들은 태풍 한번에 낙엽처럼 날아간다.
 전염병은 여전히 인간의 무기력함을 증명한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에 발붙이고 있는 수 많은 개체 중 하나임을 나지막이 읊어준다. 발전과 성장을 향해 겉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 인류에게, 자연 앞에 겸손하라는 메세지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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