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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17. 2020

지방방송

TEXTIST PROJECT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잡담을 나누는 친구들에게 주로 통용되던 선생님들의 대사, "지방방송 끄자!".
 '지방방송을 끄자'는 의미는 집중할 곳에 집중하자는 의미였으리라.
 공적인 학업이 끝난지 수 년이 지났지만 '집중할 곳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해가 지날수록 커진다. 그리고 듣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지방방송들 때문에 마음이 혼란하고 신경에 날이 서는 일도 점점 늘어간다.
 달력을 넘기는 일과 인간의 성숙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지, 이미 '지방방송을 끄자'는 이야기를 듣던 두 배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지방방송을 끄기가 힘들다. 지방방송이 들려도 보고 싶은 곳을 집중해서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키우고 싶은데. 점점 지방방송은 크게 들리고, 집중하고자 하는 방향은 희미해진다.
 모든 방송을 듣고, 모든 대응을 하면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적의 인간일 것. 그야말로 모든 관계들을 섭렵하면서도 스스로의 할 일을 너무나 잘하는 그런 부류의 완전체. 나는 그게 안 된다.

 신경쓰지 않고 싶은 일들이 분명 존재한다. 집중하고 싶은 일의 총량보다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일의 총량이 훨씬 크다. 나는 그런 소식들이 내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은 아주 작은 속삭임이어도 크고 가까이 들려버린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이치다. 지방방송에 흔들려서 눈 앞을 놓치고, 뒤나 옆을 보다가 결국 방향을 잃고 흐느적대고 휘청이다가 쓰러지게 될지도. 그래서 지방방송은 피할 수 있고 끊을 수 있으면 최고지만, '이치'는 마음대로 끊어지는 속성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들리는 지방방송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중앙방송'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에게, 너무도.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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