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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17. 2020

선거와 전쟁, 예고와 사기

TEXTIST PROJECT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글을 쓸 때, 정치 주제의 글은 매번 쓰고나서 '쓰지 말걸..' 후회한다. 정치학 기반의 전공이다보니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지만 시의성도 강하고, 의도치 않게 특정 색깔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지는 듯 하다. 사실 나는 어떤 '색'을 가질 정도로 의연하거나 지조있거나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정치글은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그냥 속으로 생각할 걸 그랬나..'라는 자조를 만든다.
 그럼에도 정치 글은 쓰게 된다. 내 눈은 항상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 세상이 옳고 그르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그 구조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느낄 수 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다만 쓸 뿐이다. 사회, 세상, 뉴스의 이야기가 결국 정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억울하진 않다. 결국 현실정치는 사회와 절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또 써본다.

 총선이 끝났다. 코로나 사태만큼 선거 후일담은 출렁인다. 파장이 크다. 누구나 예상했을 수도, 누구도 예상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엄청난 결과다. 너무 길어서 한 눈에 읽지 못할만큼 비효율로 점철된 투표용지가 민망할 정도로 양당제 수준의 결과.
 모든 선거는 선거 전에 모든 당들에 의해 '국민의 뜻'을 운운하며 상대를 찔러댈 수 있다. 혹은 '국민의 뜻'을 운운하며 방패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는 명확히 나눠진다. 선거 이후에는 '국민의 뜻'이라는 워딩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구차해진다. 이긴 자도, 진 자도 그것을 잘 안다.
 어쨌든 언론과 여론이 마치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나눠진 상황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하지만 한명의 미약한 개개인인 나는 다른 개개인들을 바라봤다. 선거 후보로 출마했던 개개인들 말이다.
 여당이 이겼지만 후보로 출마한 모든 여당 후보들이 이긴 것은 아니다. 야당이 패배했지만 후보로 출마한 모든 야당 후보들이 진 것도 아니다. 내가 그 대단하신 분들을 걱정할 건 없지만, 어쨌든 진 후보들은 이긴 후보들에 비해 일자리도, 밥벌이도, 명예나 직위도 더 많이 걱정하게 됐다. 자기가 어떤 당에 속해 있던지 말이다.

 그래서 선거는 전쟁과 매우 비슷하다. 두 나라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 어떤 나라는 이기고 어떤 나라는 패배한다. 하지만 이기는 나라의 모든 군인이 살아남고, 지는 나라의 모든 군인이 몰살당하는건 아니다. 이긴 국가에서도 희생자가 발생하고, 패배한 나라에서도 공헌자가 생긴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패거리 대 패거리의 관점에서 보게되지만, 망원경의 줌을 당겨보면 결국 승패와 관계없이 누군가는 울어야 하고, 누군가는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국가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한들, 참전한 내 가족이 주검으로 돌아오면 그게 어떻게 기쁠 수 있을까.
 선거도 마찬가지다. 내가 몸 담았던 당이 승리한들, 내가 당선되지 못하면 그 승리는 무색해진다. 당의 승리를 기뻐해야 하겠지만, 스스로의 거취는 다시 고민해야 한다. 가족들을 보면 확실해진다. 당은 승리했지만 당선에는 실패한 개개인의 가족들은 쉬이 기뻐할 수 있을까?

 선거는 전쟁과 스포츠의 중간쯤 어딘가라고 한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경쟁과 미래의 발전을 위해 많은 정치 비평가들이 스포츠에 가까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선거에 패배했다고 세상이 끝나진 않는다. 선거에 출마하는 야망을 가진 정치인들이 그 야망만 내려 놓는다면, 정치가 아니고서라도 앞으로 살아갈 일이 특별히 막막할 이유는 없다. 충분히 능력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좌절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게 된다. 나는 선거권자로서 그 준비가 이왕이면 스스로를 위한 준비이기보다,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발전 형태를 위한 준비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선거는 전쟁처럼 흙밭, 똥밭, 물 속, 하늘 위를 가리지 않고 굴러야 한다. 그것이 출마자 일신의 안녕을 위해서인지, 실현코자 하는 사회적 발전을 위해서인지 유권자는 절대 미리 알 수 없다. 선거는 선거운동이라는 예고가 있지만 집권은 예고가 없다. 공약은 선거운동이라는 예고에 쓰이는 주요 컨텐츠일 뿐, 어떤 형태로 저 후보자가 집권할지 절대 미리 보여줄 수 없다. 공약과 집권이 일치해야만, 공약은 곧 예고가 된다. 공약과 집권이 상충되면 공약은 잘 꾸며진 사기가 된다.
 당연히 나는 사기꾼보다 예고편이 보고 싶다. 잘 짜여진 사기를 보고 도장을 찍는 일보다 성실하게 만들어진 예고편을 보고 도장을 찍는 일이 권리를 가진 자에게 더 뿌듯함을 준다.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유권자가 할 일이다. 하지만 그 권리가 진정 소중했었음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건, 당선자들이 4년동안 보여줄 행동이다. 그들이 느낄 막중한 무게감이 한 줌도 덜어져서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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