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Jun 19. 2020

홍명보 "영원한 리베로"

책리뷰

<결국 영원히 남지 못한 아이콘>


 한국 축구의 아이콘을 꼽아보자. 당연히 2020년 현재는 손흥민이다. 얼마전까지는 박지성이었다. 세대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박지성 이전에 반론의 여지없는 축구 아이콘은 차범근이었다.

 사실 차범근과 박지성을 잇는 '아이콘'의 연결고리는 홍명보가 제일 가까웠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오랜 기간동안 국가대표 주장을 맡았다는 사실과 날카로운 외모에서 오는 카리스마가 그의 존재감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결국 지금으로 돌아와서 기억되는 아이콘은 '손차박'이다. 홍명보는 대열에 끼지 않는다.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기점으로 '홍명보'라는 이름은 더이상 긍정적인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축구관련 인터넷 기사의 댓글마다 그에 대한 비난은 여전히 끊일 줄을 모른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실패했다. 단언할 수 있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말했듯 '실패' 그 자체였다. 다른 어떤 위로의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표팀은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감독의 지도력은 이렇듯 중요하다. 그래서 월드컵의 실패에 대해 홍명보라는 인물이 그 책임을 절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전 업적들이 월드컵의 실패 때문에 전부 사라지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2014년 월드컵을 제외한다면 그는 분명 차범근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커리어들을 쌓아올린 사람이다. '4강 신화'의 주장역할을 빼 놓을 수 없고, 세계올스타에도 수 차례 선정될 정도로 선수로서 인정받은 사람이다. 또한 감독으로서 다들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감독이 바로 홍명보였다.


 '영원한 리베로'는 감독 이전, 그 빛나던 홍명보의 선수시절을 마무리하는 역할의 책이었다. 이 책은 2002년 월드컵 이전에 쓰여졌는데, 그 월드컵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아쉬운 타이밍이기도 하다. 월드컵의 성공 이후에 쓰여졌다면 '4강 신화'의 더 많은 후일담이 담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또 한편으로는 월드컵 이전에 쓰여졌기에 더 객관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지 홍명보 자신의 축구 이야기만 쓰인 책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본 홍명보에 대한 이야기, 혹은 홍명보가 본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쓰여있다. 홍명보의 아내, 황선홍 감독 등이 홍명보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풀어놓은 부분도 눈에 띈다. 또한 홍명보는 차두리나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부분 할애해서 적었다.

 '영원한 리베로'는 책 제목부터 아주 잘 선정했다. 어떤 다른 커리어를 모두 빼고 오로지 '축구선수'로서의 그것만을 생각했을 때, 홍명보 자신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이자 제목이었을 것이다. 책 내용에서 홍명보는 쓰리백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을 보였다. 포백 축구가 막 시작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던 찰나에 한국 대표팀에는 쓰리백이 잘 맞았다는 내용이 보인다. 여기에는 홍명보의 중앙센터백 역할이 지대할 수 밖에 없고, 본인도 그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부심이 자만은 아니었다. 홍명보가 주장 완장을 차고 쓰리백의 센터백 자리에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분명 경기력이 달랐다.


 아마 책 제목처럼 영원한 '리베로'로만 남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전설속에 회자되면서 엄지손가락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손차박' 대열에 끼어있을 아이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2014년 월드컵의 실패는 안타깝고, 또 혼나야 마땅하다. 자신의 철학과 논리로 좋은 결론을 내면 그것은 뚝심이다. 히딩크가 그랬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실패한다면 아집이 된다. 결론을 보았을 때, 홍명보의 고집은 '아집'에 가까웠고 그렇게 2014년 월드컵은 허무하게 흘러가버렸다.

 그래도 선수로서 그가 쌓아올린 업적들은 인정받는게 정당하다. 선수로서 인생의 절정기를 달렸던 시절, 대표팀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마지막 월드컵에 참여하기 전, 솔직한 마음을 담아 쓴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는 그의 절정기를 보아왔던 팬들에게 '그래도 선수로서는 대단했지'라는 회상을 남겨줄 수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지방방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