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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19. 2020

끝내주는 글거리를 얻은 날, 나는 어떻게 글을 쓰려했다

TEXTIST PROJECT

 일단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은 이렇다. 일상에서 어느 순간 글 쓸 주제와 영감이 떠오른다. 모든 순간에 초고를 쓸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른 내용만 아주 간단히 메모를 해둔다.
 그렇게 메모된 글은 그 날 저녁, 귀가 후 집에서 초고가 쓰여지거나 혹은 그 주의 주말 여유시간에 써지기 시작한다. 반짝하고 영감이 떠오르면서 머리 속에 진행되는 문장들만큼 완벽하게 이어가지진 않더라도, 적어도 메모를 보면 어떤 분위기의 글을 쓰고 싶어서 남겼었는지 기억은 난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이다. 아무래도 반복되는 하루하루다보니 떠오를 수 있는 소재는 매우 제한적이다. 항상 같은 일상 속에서 별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휴대폰의 메모장에 텍스트가 몇개 더 저장되는 셈이다.

 며칠 전, 무려 하루에 두세개의 주제가 영감으로 떠올랐다. 그야말로 '대박'.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 '헐, 이렇게 써본다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글이 그것도 두세개나 떠올랐다는 건, "시작이 반이다"는 말처럼 반은 쓴 것이나 다름없다. 마침 쉬는 날이었고, 글로 옮길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다.
 원고를 쓰다보면 황금같은 소재로도 글이 밋밋하고 초라하게 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운이 좋은 날은 흔하디 흔하고 시시한 소재로도 글이 재밌게 써질 때도 있다. 후자의 상황을 거쳐 완성된 글은 수 년이 지난 후에 스스로 읽어도 '이 때처럼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까지 한다.
 그렇게 재료만으로 만족스러웠던 두세개의 글로 타이핑을 시작했다. 항상 키보드 앞에 앉으면 모든 글이 일필휘지로 쓰여질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물론 막상 손가락이 자판을 누르기 시작하면 괜한 기대였음을 쉽게 깨닫는다. 인간은 항상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듯, 이 날의 나는 다시금 기대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해 쓰려했던 첫번째 소재. 텍스트에 텍스트를 붙여 문장을 만들어 가는데 이상하다. 늪에서 움직이려는 배처럼, 노가 자꾸 땅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보통 이런 글은 둘 중 하나의 상황에 직면한다. 억지로 억지로 어떻게든 글을 완성하거나,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로 손을 떼거나. 당연히 억지로 완성한다해도 글은 기이해진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다가 '아, 이거 못 쓰겠다'로 귀결되기도. 이렇게 첫번째 글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괜찮다. 소재가 두어개가 더 떠오른 날이지 않은가?
 

최근의 선거와 젊은 직장인들의 삶을 연관지어 쓰려던 두번째 소재. 이 놈이야말로 하루를 장식할 글로 마침표를 찍으리. 몇 년 뒤에도 만족하며 읽을 수 있는 그런 글로!
 각오와 반비례한 진행 속도는 결국 두 번째로 늪에 빠진 배를 느끼게 해주었다. 분명 머리 속에서 이어지던 글은 마치 유수의 언론사들도 줄을 서서 사가고 싶어할거라 여겨졌었는데, 화면에 남아있는 텍스트들은 문장으로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걸까. 이미 좋은 소재를 다수 구한 것에서 "만세!"를 외친 아마추어 작가의 못난 환호가 두개의 미완성 파일만을 남겨놓게 한 것일지. 혹은 '이 정도로 괜찮은 소재가 한꺼번에 몰려왔으니 무조건 맛있는 글로 완성시켜야 해!'라는 무의식적인 압박이 방해가 된 것일지.

 이렇게 장황하게 글 쓰는 과정과 실패 소회를 오히려 다른 하나의 글로 적었지만, 막상 타인의 눈으로 실제를 봤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그저 한 남자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자리를 뜬 모습 정도로만 보였겠지. 머리 속에서 어떤 전투들이 격렬하게 벌어져도 표출되는 행동은 참 소박하다. 글쓰는 행위가 그렇다.
 소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현실로 실현되려면, 완성된 글들이 주는 감동, 파급력, 영향력이 소박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많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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