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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21. 2020

서울특별시 중앙대학교

장소프로젝트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선 '가장 바쁘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가? 만약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오늘의 장소가 그 배경이 될 것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부터 나는 매우 바빠졌다. 이 바쁨은 자의와 타의가 섞여있다. ROTC라는 조직에 속하게 되면서 머리가 짧아지고 제복생활을 시작했다. 학과 수업 이외에 할애하게 된 군사적 의무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바빠지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대학' 본연의 업무인 '학업'에 매우 큰 흥미를 느껴가고 있었다. 국제관계학이라는 전공을 통해 습득한 지식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뇌 속에서 팽글팽글 돌았다. 이 느낌이 일상을 채우던 시기였다. ROTC 후보생으로서 바빠질 시기에 학업에 대한 재미가 중첩됐던 시작점이 3학년이다. 

 나는 전공을 좀 더 화려하게 장식할 다른 지식적 갈증을 강하게 느꼈다. ROTC 생활을 시작하면 다들 수업에 할애하는 시간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곤 한다. 선택을 해야 했다. 전공에만 만족하고 후보생으로서의 생활에 집중할 것인지, 학문적 욕심을 부려볼 것인지. 그리고 나는 후자를 택했다.

 부전공까지 득하기로 마음먹고 선택한 전공은 법학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법학은 내 학점을 상당히 깎아먹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로스쿨 체제로 변한 학규상에서 법학과의 마지막 학번은 09학번이었다. 졸업해야 하는 학생들은 정체되고 있었고, 법학과의 전공 교수들은 나 같은 부전공 학생들보다 법학 전공 학부생들에게 우선적인 성적을 줘야 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변명이고, 법학을 전공으로 배운 이들과 부전공으로 얕게 배운 내 배움의 깊이가 다를 수 밖에. 

 하지만 이런 결과와는 다르게 법학 부전공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화던 시기, 내 학교생활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수업도, 과제도 발표도 모두 게임만큼이나 재밌었다. 그 배경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다.


 기숙사가 있었던 안성캠퍼스에서 ROTC 및 전공, 교양과목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부전공 수업이 있는 날이면 셔틀버스로 서울캠퍼스까지 왔다갔다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한 시간 가량 걸리는 통학 거리에서 모자란 잠을 틈틈히 자거나, 전공자들에 비해 모자랄 법학 지식들을 머릿 속에 담아놓기 위해 책을 잡았다. 

 안성캠퍼스에서는 수업들 사이에 붕 뜨는 시간이 생기면 학과 사무실로 가서 쉬며 잡담을 나눴었다. 의탁할 곳이 없었던 서울캠퍼스에서는 주로 도서관에 있거나 식당에 있었다. 서울로 움직인 날은 수업 시간표를 매우 빼곡하게 채워놨었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따로 할애되어 있지 않았다. 법학 관련 교양 서적들을 도서관에서 빌린 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읽곤 했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부지가 넓지는 않다. 작기로 소문난 서강대학교 정도의 땅 크기다.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어림잡았을 때, 건국대학교 호수에 캠퍼스 전체가 들어갈만한 넓이다. 하지만 좁은 부지에 높낮이가 매우 극단적이다. 법학대학 건물은 산 높이의 계단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도서관 건물은 그 중턱쯤에 위치한다. 당시 내 등에는 두껍기로 소문난 법학 서적들이 메여있으니 등산과 다름없다. 


 서울캠퍼스에 도착해서 일정을 시작할 때면 외로움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사복차림이었고, 선배들도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거리가 먼 곳의 수업을 들을 때, 빠른 걸음으로 숨차게 움직이는 것까지도 혼자 해야 했다. 살면서 바쁜 날들은 참 많았지만, 이 시기의 바쁨은 하고 싶은 공부를 직접 선택하고 찾아서 하고 있다는 행복함이 함께 느껴진, 그런 바쁨이었다.

 내가 캠퍼스를 바삐 뛰어다니던 시절은 두산그룹이 갓 학교 재단을 인수하고 여기저기 건물 공사가 진행되던 때였다. 어느새 십수년이 훌쩍 지난 지금, 강연이나 행사 초청을 받아 캠퍼스를 방문하면 공사의 흔적들은 많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많이 바뀌어 있다. 


 9호선 흑석역에 내리면 학교 캠퍼스가 보이기까지 느린 걸음으로 5~10분정도 시간이 걸린다. 인도는 좁고 시끄럽다. 상가들이 왼쪽 오른쪽으로 깔끔하지 못하게 이어져 있다. 은행 앞은 트럭에서 핫도그 같은 분식들도 판다. 이쯤 걸어오면 주변의 낮은 상가 건물들과는 이질적인 중앙대학교 병원 건물이 우뚝 서있다. 삼거리 같으면서도 사거리같고, 로터리 같기도 한 도로는 무법천지다. 신호 하나 없다. 차들이 지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병원 오른쪽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확실히 대학가라는게 느껴진다.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문구점들도 있다. 인도는 여전히 좁은데 사람도 많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활기차다. 약간의 오르막인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보인다. 머리 색깔도 형형색색이고, 교환학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꽤 많이 지나간다. 학교 정문은 이제 완연히 바뀌었다. 매우 큰 건물이 들어섰고, 프렌차이즈 상가들이 건물 1층에 자리잡고 있다. 옛날 건물 그대로 남아있는 본관 앞에 이젠 널찍하고 푸르른 잔디밭이 자리잡게 됐는데, '중앙대학교'라는 석조 글씨가 잔디밭 가운데에 정갈하게 서있다. 누가봐도 중앙대학교다. 

 내가 캠퍼스를 누빌 때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문같지 않은 좁은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약학대학 쪽부터 길게 공사판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여기가 이젠 잔디밭과 신축 건물이 올라온 것이다. 건축기술로 새 건물을 올리고 잔디밭을 만드는건 가능했지만, 오르막 내리막을 자유롭게 조절하진 못했나보다. 도서관으로 가려면 내가 다녔던 그 시절처럼 높낮이가 가파른 중앙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좁은 부지에 새 건물들을 어렵사리 올리다보니 계단 양 옆으로 옛날 벽돌과 새 건물의 철골 구조가 구색없이 혼재되어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도서관이 보인다. 

 내가 다닐 땐 도서관까지는 완공된 상태였다. 나는 도서관 신축공사가 끝난 직후부터 그 도서관을 사용했으니, 새 건물의 혜택을 상당히 본 셈이다. 안성캠퍼스에 없던 책들을 여기서 왕창 빌리며 독서욕을 달랬던 시절이 생생히 기억난다. 도서관 옆쪽으로는 다시 생소한 구조가 이어진다. 무려 야외 에스컬레이터가 생긴 오르막을 따라가면 신축건물이다. 이 건물이 정문에서 봤던 그 건물과 이어지는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이 건물 어느 강의실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방문해선 길을 잃었었다. 삼성동에 있는 코엑스 건물의 실내마냥 광활해서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어느 엘레베이터를 타야 하는지, 강의실에 매겨진 번호들의 규칙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에는 이 건물의 뒤쪽으로 운동장이 보였었다. 4학년때 여기에 가수 보아가 왔었다. 더 어리던 시절, 보아를 보고 "공부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었었는데, 마침 내가 다니는 대학교 축제에 보아가 와서 엄청나게 황홀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운동장이 작아보인다. 건물들을 지으면서 운동장을 줄인건지,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건지 제대로 알아보진 않았다. 

 이 큰 신축 건물 맞은편에는 가장 많은 강의를 들었던 법학관 건물이 있다. 내가 다닐때는 여기와 도서관 건물이 가장 최신식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실내로 들어가면 꽤 낡아보인다. 어느덧 십수년차에 접어든 건물이니깐 아주 어린 건물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 건물 규모에 비해 여전히 단 세 대의 엘레베이터만 있어서, 학생들은 꽤 오랜시간동안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젊음의 패기로 계단을 이용한다. 나도 멀뚱멀뚱 엘레베이터 앞에 오랜시간 서있기가 뭐해서 1층에서 8~9층 정도의 강의실을 계단으로 다니곤 했다. 

 법학관 옆으로는 대학원 건물이 있고 후문이 있다. 정문이 '요즘 대학가' 느낌을 풍기는 것과 다르게 후문은 '옛날 대학가' 느낌이 물씬 난다. 정문 대학가에 비해 높낮이가 상당하고, 그 고저에 엎치락 뒷치락 상가들이 있어야 해서 그런듯 싶다. 게다가 여기는 주변의 건물들이 모두 갈색의 옛날 주거 건물들인데 아마 하숙이나 원룸, 자취 등의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정문에서 후문으로 쭉 올라오면 마치 파노라마처럼 2009년, 2010년 서인석의 바빴던 대학시절이 지나간다. 그리고 생생하다. 다음 수업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바삐 움직이던 기억은, 그땐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가 정말 젊고 열정적이었구나'를 필름으로 재생시켜주는 것 같다. 하고 있는 공부에 자부심과 흥미를 가지며 욕심까지 부렸던 대학교 시절, 그 4년 중에서도 가장 바쁘기까지 했던 그 시절을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담고 있다. 십수년동안 꽤 바뀐 모습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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