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세번째 이야기
전차한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은 비단 동소문만이 아니었다. 인력거 역시 전차 때문에 그 역할이 줄어들고 있었다. 당시 경성의 전차는 이미 인력거를 뛰어넘는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첫 번째 전차 노선은 1898년에 개통하면서 용산에서부터 종로를 연결하였다.
그 이후부터 많은 노선이 추가되었다. 전차가 경성 시내를 질주하면서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대하게 되었을 것이다. 전차가 깔리기 전에 청량리에 사는 사람이 서대문을 가려면 적어도 두 세 시간을 잡고 가야 하는 꽤 먼 코스였다. 하지만 전차를 타고 가면 한 시간 내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일상적으로 방문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개념이 축소된 것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을 만나서 소통할 기회도 많아진다. 교통수단의 발전이 공간의 규모를 다르게 만들고, 사람들의 생활방식까지 바꾸는 것이다.
물론 가격이 그리 싸지 않았고, 전차를 타려는 수요에 비해서 전차의 운행횟수나 규모는 작았기 때문에 항상 편하게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도성 안팎을 오가는 장거리 이동을 빠르게 하는 데에는 전차만 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손님으로서는 당연히 어디든지 더 빨리 갈 수 있는 전차의 등장이 반가웠을 테다. 그래서 앞집 사는 마나님도 어차피 인력거를 탄다면 최종 목적지까지 한 번에 쭉 타고 갈 법도 하지만, 딱 전차 정류장까지만 김첨지의 인력거를 타고 간다.
이러한 손님의 변화를 지켜보는 인력거꾼의 마음은 불편했을 것이다. 많은 손님을 전차에 빼앗기면서 수입이 줄었을 테니. 김첨지를 포함한 인력거꾼들이 전차를 바라보는 마음은, 오늘날 무인자동차라는 기술을 바라보는 택시 기사의 무력감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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