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인력거길 따라 걷는 한양 트레킹

<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두번째 이야기

by issueproducer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동소문 바로 안쪽에 살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도성 성곽의 안쪽이라 김첨지도 문안에 살고 있기는 한 것이다. 하지만 김첨지가 사는 곳은 동소문 바로 앞 변두리 지역이기 때문에 중심 지역을 특별히 문안이라고 부른 듯하다.


김첨지가 살고 있었던 바로 그 동소문의 이름이 혜화문이다. 혜화문은 이름만 ‘동쪽에 있는 작은 문’이었을뿐, 실제로 그 역할까지 작지는 않았다. 가까이 있는 북쪽의 숙정문이 문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정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사람들이 북문으로 통행하면 지맥이 상한다는 풍수지리에 따라 태종 때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서 통행을 막았다고 한다.

“아니, 그럴 거면 문을 왜 만들었담, 아니면 아예 문을 없애버리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문을 열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음양오행에 따르면 남대문(숭례문)은 화기를 끌어들이고, 숙정문은 북쪽에 있어서 음기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심하게 가문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면서 남대문을 닫고 숙정문을 열었던 거다.


사실 숙정문을 항상 열어놨다고 한들 자주 드나들기가 어려웠을 거다. 왜냐면 숙정문은 북한산 성북동 계곡 끝자락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개발이 덜 되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첩첩산중에 문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최근 삼청공원에서 출발하는 도성탐방로 트레킹 코스가 생겼다고 한다. 이참에 숙정문을 보러 한 번 가볼까 하고 위치를 찾다가 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보니, "계단 경사가 심했던 것만 기억난다.", "생각보다 힘든 코스입니다." 라길래 바로 마음을 접었다. 지금 가기에도 힘든 코스라면, 그런 곳에 제아무리 큰 문을 지어났더라도 사람들은 절대 다니지 않았을 테지.


혹시라도 운동 삼아 숙정문을 보러 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을 위해서 꿀팁을 하나 남긴다. 반드시 챙겨야 하는 준비물이 있다. 튼튼한 두 다리는 물론이요, 신분증도 필요하다. 아니 트레킹에 웬 신분증이냐 싶겠지만, 군사보호시설 내부에 있기 때문에 출입 시 신분증이 필수고 입장 제한 시간도 있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부근까지 습격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폐쇄되었다. 이후 경비를 위하여 약 40년간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가 최근에야 금지가 해제되어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첨지가 살고 있던 경성에서나, 지금의 서울에서나 숙정문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삼청공원에서 올려다본 숙정문 가는 길. 저 높은 성벽을 오르는 것부터가 숙정문으로 향하는 먼 길의 시작이다.


이런 이유에서 동소문은 오랜 시간 전부터 물류와 여객이 오가는 대문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소문의 지위는 일본강점기에도 이어졌다. 1911년에 노베르트 베버 신부가 찍은 사진을 보면 문 안팎으로 가득 들어찬 건물과 오고가는 행인들에게서 동소문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1900년대에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독일의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총 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1911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여 이곳저곳의 기록과 사진을 남겼다. 그 내용으로 191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까지 발행했다.


특히 동소문 안쪽을 찍은 사진 한가운데에는 검은색 인력거를 세워 놓고 뒤돌아선 인력거꾼과 흰색 장옷을 뒤집어쓰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여성이 보인다. 두 사람의 모습에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서 전찻길까지 태워다 달라고 한 앞집 마나님과 그걸 통해서 삼십 전을 벌었던 김첨지가 겹쳐진다.


왼쪽이 동소문 성 밖 모습, 문에 기대어 지은 건물이 점방(店房) 오늘 말로 하면 편의점이다!
오른쪽은 동소문 성안. 인력거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도 있다.


혹시 지금의 동소문 모습을 잘 알고 있다면, 흑백 사진 속의 동소문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오늘의 동소문은 사진 속 원래 동소문과 다른 위치에 복원했기 때문이다.


본래 동소문은 현재 위치보다는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초기 전차노선의 종점은 혜화동이었는데, 1938년에 일제가 돈암지구 도시개발사업을 펼치면서 새로운 종점인 돈암동까지 전차 노선을 연장했다. 이 공사 중에 동소문을 철거했고, 사진 속에 있는 언덕을 7미터 정도 깎아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 1992년에야 동소문을 복원하고자 했는데, 이미 깎아낸 언덕을 다시 쌓아올릴 수는 없었나 보다. 그래서 원래 위치가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위치에 복원했단다.


동소문에 관련된 한 가지 더 황당한 사실을 알려주자면 동소문로에 동소문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소문의 이름을 따서 동소문로라는 도로명이 생겼지만, 정작 동소문이 있는 쪽은 나중에 창경궁로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동소문로는 한성대입구역부터 미아사거리까지다. 혹시 동소문을 보러 갈 계획이라면 주소를 검색할 때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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