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첫번째 이야기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기회가 넘쳐나는 경성의 전 지역을 매일같이 돌아다니며 살았지만 결국 김약국의 딸들만큼이나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김첨지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던 김첨지는 오랜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을 보낸다. 앞집에 사는 마나님을 전찻길에 모셔다 드린 것을 시작으로, 교원을 태우고 동광학교에 갔다가 때마침 고향 집을 가려는 학생을 만나 남대문 정거장까지 태워주는 행운을 잡는다. 거기서 다시 큰 짐을 든 손님을 태우고 인사동으로 향한다. 그렇게 온종일 빗속을 달려서 번 돈으로 동네 선술집에서 거하게 술까지 마신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줄 설렁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가 비극을 마주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김첨지의 하루이다.
전찻길이나 남대문 정거장과 같은 1920년대 경성의 지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금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김첨지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쫓다 보면 과거의 경성이 오늘날 서울의 모습과 겹쳐 보일 것이다.
김첨지는 온종일 인력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동네 술친구 치삼이를 마주쳤다. 치삼은 김첨지를 보자마자 김첨지가 "문 안"에 다녀온 것 같다며 부러워한다. 그러더니 대뜸 돈을 많이 벌었으니 술을 사달라고 조른다. 아니, 인력거 몰고 다니는데 하나 도움 준 것도 없으면서 왜 자기한테 술을 사달라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와중에 문안에 다녀왔으니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시의 경성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도성(都城)의 성곽 안이냐 밖이냐는 구분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도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흔히 알려진 사대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거기에는 사소문도 있다. 사대문은 서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개 방향으로 있었고, 이 사대문 사이에 사소문이 위치한다. 예를 들어서 북쪽에 있는 숙정문과 동쪽에 있는 동대문(흥인문) 사이에는 동북 방향에 혜화문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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