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동광학교가 그렇게 명문이랍디다

<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네번째 이야기

by issueproducer

김첨지가 두 번째로 태운 손님 역시 전차와 인력거를 모두 이용했다. 김첨지는 첫번째 손님이었던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아예 정류장 근처에서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덕분에 두 번째 손님은 전차를 타고 왔다가 마침 전차 정류장 근처에 있던 김첨지의 인력거를 잡아타게 된 것이다. 이 손님을 오십 전에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드리기로 한다. 목적지가 학교여서 그런지 김첨지는 양복을 차려입은 이 두 번째 손님을 교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9그런데 이 두번째 손님의 목적지를 동광학교라고 딱 집어서 말하는 게 조금 신기하다. 택시를 탈 때에도 학교 이름만 말하면 모를 수 있으니 “무슨 동 어느 학교”로 가자고 하지 않나. 동광학교라고 딱 집어서 목적지를 말하는 걸 보면 제법 유명한 학교인가보다.


이 교원 손님을 태운 곳이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전차정류장인 거 같은데, 그 일대에 유명한 학교가 원래 많았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좋은 학교를 꼽을 때 강남 8학군부터 얘기하지만, 일제강점기의 강남은 논밭만 있는 변두리였을 뿐이다. 보성고등보통학교나 혜화공립보통학교처럼 좋다고 유명한 학교는 혜화동 일대에 모여 있었다.



1920년대는 아니고, 1966년의 혜화동 로터리의 모습. 왼쪽 옆에 전차가 다니는 것도 보인다.


동광학교의 정확한 주소를 따지자면 당시에는 숭일동, 오늘에는 명륜동에 속하지만 동광학교도 혜화동 일대 학교의 명성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동광학교는 일제 강점기 초기에 불교 계열 교육기관으로 세워졌지만 곧 보성고등보통학교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그 학교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1922년 9월 1일에 발행된 개벽 제27호에 실린 여천생 선생님의 동광고등보통학교에 대한 글을 보면 얼마나 멋진 건물이었을지 느낄 수 있다.


『여긔 동광학교(東光學校)가 어대 잇습니까?』고, 농부(農夫)는 손을 들어 저긔 저 송림(松林) 속에 잇는 큰 기와집입니다고 친절(親切)하게 일러 줍니다. 나는 나무 그림자를 발부며 천천한 거름으로 송림(松林)속 큰 개와집을 차저 갓습니다. 굉장한 구식건물(舊式建物)인데 이전(以前)에 만인(萬人)이 숭배(崇拜)하든 북묘(北廟)이엇섯습니다. 나는 학교당국자(學校當局者)를 방문(訪問)하기도 전(前)에 위선(爲先) 땀을 좀 들이랴고 그집 뒤 언덕 송림(松林) 속 서늘한데 안저서 4면(面)을 살펴 보앗습니다. 참으로 공기(空氣)도 조커니와 운치도 매우 조흡니다. (중략) 더욱이 학교위치(學校位置)로는 적절(適切)하다는 감(感)이 잇습니다.


죄다 한자라 단어를 하나하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큰 기와집이 멋진 자연 풍경이 보이는 곳에 있으니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학교"이라고 격하게 칭찬한다는 정도는 느껴진다. 이 정도로 멋진 학교였으니 인력거를 타면서 이름만 척 말해도 김첨지가 어딘지 착 알아들었던 것이다. 비록 김첨지가 좋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겠지만, 경성은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제일 좋은 교육을 받는 사람을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재밌는 것은 시인 이상도 이 동광학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상은 1921년 4월에 열두 살의 나이로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경영하는 동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4년에 동광학교가 보성고보에 병합된다.


<운수 좋은 날>이 발표된 것이 1924년이니까 김첨지가 실존했다면, 동광학교에 데려다 준 두번째 손님은 이상의 선생님이고, 거기서 인력거를 탄 다음 손님은 이상의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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