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다섯번째 이야기
다음 학생 손님과는 흥정이 제법 길어진다. 요즘에야 흥정이라는 걸 할 일이 거의 없다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흥정의 기술이 있다면 내가 절박하다는 것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맘에 들어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며 뒤돌아서는 척을 해야 가격이 내려간다.
그런데 김첨지는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에 이미 이 학생이 얼마나 절박한지 파악해버린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이 겨울 방학을 맞아서 오늘 고향에 가야 하는데, 비는 내리고 짐은 많아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마침 지나가는 인력거를 보고 마음이 급해서 뛰어온 것이다.
굳이 상황에 대한 짐작이 없더라도, 마음이 급해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한 상태로 우산도 없이 급하게 쫓아 나왔으니 이 학생이 흥정을 잘하기는 이미 글렀다. 이 손님은 다짜고짜 남대문정거장을 가자고 하는데, 그 순간 김첨지의 눈앞에는 자신이 아프니 오늘만큼은 빨리 돌아오라고 애원하던 아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래서일까 대뜸 '일 원 오십 전'을 달라고 말하고도 내심 스스로 그 금액에 놀란다.
도대체 일 원 오십 전이 얼마나 비싼 거지. 아니, 그 전에 남대문 정거장이 어디길래 학생이 저리 다급히 가자고 하는 걸까. 이름이 낯설어서 그렇지 남대문정거장은 모두가 알고 있는 곳이다.
바로 서울역! 서울역의 기원은 1900년에서 시작된다. 인천과 연결되는 경인철도의 남대문역사로 처음 건설했었다. 당시 작은 목조건물이었던 남대문정거장은 1925년에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건축물로 새 역사를 지으면서 그 이름도 경성역으로 바꾸었다.
KTX까지 달리는 오늘날의 서울역은 당연히 새로 지은 신역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1920년대에 쓰던 구 역사도 건재하게 자신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서울역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거대한 신역사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갈색 건물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수좋은 날>이 발간된 1924년에는 구 역사도 없었던 때다. 현재의 서울역보다 아주 조금 더 북쪽인 염천교 부근에 33m2 규모의 작은 목조건물만 있었을 뿐이다. 동광학교가 있었던 명륜동에서 출발해서 염천교까지 거리를 재보면 직선거리로 따져도 4km고, 지금 운전을 해서 가더라도 5km가 넘는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오.”
…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이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런 진날에 좀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이렇게 손님과 가격 흥정을 하던 김첨지가 남대문정거장까지 시오리(약 5.9km)가 넘는다고 한 것이 아주 허풍은 아닌 모양이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는 마치 나는 듯이 달려간다. 집 근처를 지나갈 때에는 잠시나마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집으로부터 멀어지자 근심으로부터 멀어지듯이 신이 나게 달렸다.
그렇게 일 원 오십 전을 손에 쥐자 부자가 된듯 기뻐서 아들뻘인 학생이라도 손님을 깍듯하게 배웅한다. 이내 먼 길을 다시 달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왔지만, 마침 손님이 끊이지 않는 날이니 이참에 다른 손님을 또 태우고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