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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05. 2020

[Ep2-5]졸업식에는 역시 짜장면이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다섯번째 이야기

꼭 프로스포츠팀의 연고지가 아니더라도,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을 산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감정이 있다. 기억이 같고 경험이 같으니 당연한 거로 생각하시나. 하지만 사람들을 더 강하게 묶어주는 것은 아주 아주 사소한 감정이다.


짜장면만 해도 그렇다. 경상도에서 자랐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짜장면에 대해서 공유하는 억울함이 있다. 바로 계란 후라이의 부재. 어린 시절, 중국집에 갈 때면 항상 "저는 간짜장이요!"를 외쳤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혓바닥을 가지고 있었으니, 간짜장이 일반 짜장과 달리 전분물 없이 즉석에서 볶아서 만들기 때문에 더 감칠맛이 난다는 것까지는 느끼지 못했었다. 그저 테두리가 바삭하게 튀겨진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를 톡 터트려서 섞으면 유독 고소하다는 정도만 알았다. 그래서 사주는 사람의 지갑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항상 간짜장만 먹었더랬다.


그래서 수도권으로 이사했던 날에도 여느 때처럼 "나는 간짜장!"을 외쳤다. 근데 받아본 짜장면 그릇이 뭔가 허전했다. 계란 후라이가 없었다. 모든 가족이 "이것은 간짜장이 아니다"라고 흥분해서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배고픔에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간짜장을 시켰는데 계란 후라이가 없다, 이것은 간짜장이 아니라 일반 짜장면을 준 것이다”고 불만스럽게 말했더니, 사장님은 몇 번 겪어본 일인 듯 "계란 후라이가 없어도 그게 간짜장이에요."라고 태연하게 답하시더라. 그 평온함에 당황해서 전화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노란 태양이 없으면 하늘이 더 이상 하늘이 아니듯, 노란 계란후라이가 없으면 그것은 간짜장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는 중국집에 갈 때마다 메뉴판을 앞에 두고 무얼 시켜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근데 계란 후라이에 대한 그리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온갖 쓸데없는 것에 대해서 헛소리를 늘어놓던 어느 날, 짜장면이 주제에 오르자 몇몇 친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왜 서울의 간짜장에는 계란 후라이가 없는 것이냐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계란 후라이 없는 간짜장에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삼천포에 갔을 때 간짜장을 먹었다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놀라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보지 못한 계란 후라이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을 테니! 이것은 마치 오랜만에 완두콩을 곁들인 짜장면을 만나거나, 짜장면을 “자장면”이 아니라 다시 “짜장면”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와 같은 반가움이었을 거다.


경상도식 간짜장의 저 선명한 노른자를 보라..!


짜장면에 대한 특별한 지역감정을 가진 것은 경상도 사람들만이 아니다. 계란후라이가 올라간 간짜장이 경상도 사람끼리 나누는 그리움이라면, 인천 사람들은 진짜 짜장면의 원조라는 자부심을 공유한다. 짜장면이 처음 개발되어 판매된 곳이 바로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니까.


1982년도에 국민학교를 졸업한 여느 학생이라면 동네에 있는 여느 중국집을 갔겠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남달랐다. 우선 우수상과 6년 개근상을 받았다. 또한 인천의 어린이답게 짜장면의 원조 차이나타운의 가장 맛있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같은 상을 함께 받은 조성훈네 가족과 함께였다.


중국인 거리의 중국집들은 자장면의 면발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걸어오면서 짜기라도 했는지, 두 아버지가 생각한 이 거리의 '가장 맛있는 집'도 같은 곳이었다. (중략) 두 아버지가 서로 계산을 하니 마니 하는 동안, 나는 중국인 거리의 귀퉁이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국인 거리의 중국집 지붕 사이로 본 그날의 하늘은 자장면 위로 머리를 내민 완두콩처럼 개운한 빛을 띠고 있었다. (p.45~46)


듣기로는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하고, 이듬해 인천에 청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계지가 설정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중국요리를 파는 식당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가 중국집의 고소한 기름냄새를 피하지 못하듯, 인천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중국요리의 맛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주머니 사정에 비교하면 대륙에서 온 이국적인 요리는 좀 비싸지 않았을까. 그런 그들을 위해서 전통적인 중국 요리를 변형하여 지금의 짜장면을 만든 것이다. 원래 중국에는 중국식 된장인 미옌장을 면과 비벼 먹는 작장면이라는 요리가 있었는데, 여기에 달콤한 캐러멜을 첨가하고 물기를 적당히 촉촉하게 만들어 한국식 짜장면이 만들어졌다.


짜장면은 말 그대로 “개발”된 음식이다보니 진짜 원조가 존재한다. 골목마다 튀어나오는 “원조할매집”과는 그 수준이 다르다. 진짜 짜장면의 원조는 무려 1908년에 문을 연 공화춘이라는 곳이다. 공화춘은 오랜 시간 짜장면의 원조이자 인천 차이나타운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이유로 1983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이제는 진정한 원조의 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짜장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서게 된다.


지하철 1호선 인천역을 빠져나오면, 길 건너편에 거대한 붉은 문이 서 있다. 그곳으로 들어서면 바로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게 된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서 붉은 가로등, 붉은색 간판, 붉은색 건물이 이어진다. 곳곳에 군침 돌게 하는 맛집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 주인공이 조성훈네 가족과 함께 졸업식에 갔다던 ‘가장 맛있는 집’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인천 토박이의 말에 따르면 차이나타운의 모든 가게가 맛있으니 아무 데나 가도 된단다. 꼭 거하게 중화요리를 먹지 않더라도, 걸음걸음마다 월병이나 공갈빵, 화덕만두 같은 주전부리가 이어지니 조금 욕심을 부려 과식해도 좋다.


차이나타운을 따라서 걷기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분명 주변이 온통 붉은색과 금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어떤 계단을 경계로 갑자기 정갈한 목조 건물과 석조 건물들이 나타난다.


어리둥절할 필요는 없다. 일본 조계지 거리로 들어선 것일 뿐이다.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청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모여 살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조계지가 삼국지 벽화거리 끝에 있는 계단을 경계로 나란히 생긴 것이다. 얼마나 선명한 경계를 긋고 싶었던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단 양쪽의 석등 모양마저 다르다. 그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면 왼쪽으로는 정갈한 일본풍의 건물이, 오른쪽으로는 화려한 중국풍의 건물이 이어진다. 확연히 다른 두 지역을 왼쪽과 오른쪽에 끼고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내려가면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의 건물은 물론, 석등의 모양까지 다르다!


짜장면을 나란히 해치운 조성훈과 주인공은 아버지들로부터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에 합격하라는 얘기를 들었고, 그 며칠 후 나란히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잠바를 입고 캐치볼을 하며 애타게 기다린 결과, 드디어 3월 27일이 되었다.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라는 구호와 함께 첫 번째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었다. 책의 표현 그대로 “바야흐로, 프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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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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