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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06. 2020

[Ep2-6]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여섯번째 이야기

프로 스포츠는 아무튼 ‘프로’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팀의 성적을 간과할 수 없다. 선수들 개인의 사소한 플레이 하나하나가 다 수치화되어 선수의 타이틀이 되고, 선수의 기록이 되고, 선수의 몸값이 되고, 팀의 성적이 되고, 감독의 능력이 되고, 팀 성적은 또 관중 수로 직결되고, 이는 곧 팀의 수익이 된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그깟 공놀이’의 손짓 한번, 발짓 한번이 많은 것을 만들어낸다. 많은 프로구단이 연고지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을 내걸며 멋진 경기를 보여줄 것을 약속한다. 당연히 그들은 프로니까 멋진 경기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는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로므로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팀에게 ‘너희가 그러고도 프로냐?’라는 비난이 바로 쏟아진다.


인천 사람들은 당연히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에게 프로다운 멋진 경기, 화려한 성적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말 그대로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는데 컵이 없어서 못 먹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인천 앞바다랑 사이다는 대체 무슨 상관이길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천 앞바다라고 하면 ‘사이다!’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이 인천 앞바다와 사이다의 정체는, 놀라지 마시라. 무려 1960년대 코미디언 고(故) 서영춘씨가  ‘원자폭소 대잔치’라는 프로그램에서 히트시킨 코믹송의 가사이다.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길 잡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 없이는 못 마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JXJaKbGcF0&feature=youtu.be


인천 앞바다 사이다의 출처가 코미디라니 엄청난 유례이다. 뭐든 간에 말보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뼈가 있는 개그이다. 근데 이 코미디언은 대체 왜 하필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다고 표현했을까? 그분이 특별히 사이다를 사랑하는 인천사람이었던가.


그 옛날 추억의 탄산음료병들


지금에는 잘 매치가 되지 않지만, 그 시절엔 ‘인천 사이다’는 일종의 고유명사였다. 왜냐고? 사이다가 처음 조선땅을 밟아 정착을 한 곳이 바로 인천이기 때문이다. 사이다는 원래 유럽에서 마시는 사과 발효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이 유럽의 어느 펍에서 사이다를 주문한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도수가 낮다고는 하지만 사이다(cider)는 사과를 발효시켜서 만든 술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술인 사이다는 일본으로 전달되었고, 일본에서 사이다는 무알콜 탄산음료가 되었다. 무알콜이 되었다니 알콜러버로서 깊이 슬퍼할 일이다.


이 새로운 음료는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1905년 일본인이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인천 동구 신흥동에 ‘인천 탄산수 제조소’를 세우고 ‘별표 사이다’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몇 년 뒤 같은 동네에 또다른 제조소가 들어와 경쟁제품을 출시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고구마 백 개 먹은 거 같은 답답한 상황이 많았던 것인지, 사이다는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50여 개의 사이다 공장이 전국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50년대까지 인천은 대표적인 사이다 생산지로 명성을 날렸다. 한국인이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다의 부흥은 바로 인천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천의 ‘스타사이다’는 1950년 서울에서 ‘칠성사이다’가 출시된 후 꼬르륵 가라앉아 버렸다.


사이다가 인천에서 부흥했던 것처럼 삼미 슈퍼스타즈도 인천에서 부흥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프로는 성적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원년 시절 삼미는 다음의 기록으로 기억된다.


통합성적 15승 65패, 승률 0.188,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6위.


1할이라는 전무후무한 승률에서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저건 절대 좋은 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원년 시즌 프로야구팀은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MBC 청룡, 삼미 슈퍼스타즈,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6개였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삼미는 6개 팀 중 꼴찌란 소리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원년 시즌에 무려 1할대의 승률을 기록하여, 그 이후 39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4년 시즌과 1985년 시즌을 연달아 16연패, 18연패라는 또 다른 불멸의 기록을 세워버린다.


그 불멸의 기록 앞에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삼미의 라이벌은 삼미뿐”이라는 찬사를 퍼부어주었다. 과연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기록은 -어떤 축구팀이나 핸드볼팀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야구로 전향을 해오지 않는 이상은 절대 깨어질 수 없는 대기록이었다. (p.115)


이 연패는 프로야구에서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아마도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이지만, 놀랍게도 그 기록을 깨고 세계 기내스북에도 최다 연패로 등재된 국내 프로팀이 있다. 프로야구가 코리안시즌으로 한창 축제일 때, 개막하는 겨울 스포츠의 꽃! 프로농구가 되시겠다. 프로농구 98~99시즌의 대구 오리온스가 세계 최다 연패로 기네스북에 오른 그 주인공인데, 무려 32연패라는 대기록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으셨다. 대구 오리온스는 3승 42패, 승률 0.067이라는 1할도 안 되는 정말 말 그대로 절대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이는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통틀어서 가장 최악의 성적이라고 한다. 세계를 통틀어도 가장 최악의 성적이다.



그럼 2등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원년 승률.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만 보며 자라도 시원찮을 청소년기에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두 번째로 암울한 기록을 가진 이 팀을 순정을 바쳐 응원한 우리의 주인공이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마르질 않는다. 적당히 지는 것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심각하게 지는데 말이다. 끝까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 잠바를 입고 삼미를 응원하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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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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