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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04. 2020

[Ep2-4]야구와 연고지, 그리고 운명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네번째 이야기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집, 학교, 동네와 같은 미시적인 공간부터 도시, 국가, 세계와 같이 거시적인 영역까지 지역은 한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 아주 어린 시절에는 가족의 품 안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냈고, 자라면서 생활의 범위는 우리 동네, 학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옆 동네, 그리고 다른 도시로까지 넓어진다. 성장과 함께 개인의 세계는 확대된다.


나이가 들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약간의 경제력을 갖춘 성인이라면 한국이 싫으니 한국을 떠나자는 다소 극단적인 선택마저 할 수 있다. 바뀐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지역으로부터 받는 필연적인 영향력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어린 때일수록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당장 이 책의 주인공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의 주인공은 인천에 사는 이제 막 중학교를 입학하는 10대 꼬마였고, 82년은 프로야구가 출범하여 전국이 프로야구에 열광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이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2월이 되면서 내가 살던 인천에서 본격적인 프로야구의 열기가 서서히 번져 나가고 있었다. 2월 5일에는 인천상공회의소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식이 거행되었고, 그 소식에 그간 야구에 있어 늘 방관자적 입장에
서 있던 인천 시민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p.32)


삼미 슈퍼스타즈의 경기 일정! 설렌다 설레.


지역에 프로스포츠팀이 생긴다는 일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각 연고지의 팬들이 그 팀에게 보내는 열정과 사랑은 아주 맹목적이다. 뭐 물론 프로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지역에 어떤 스포츠팀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살기도 하겠지만. 당신이 프로스포츠의 팬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막이 다가오면 우리 팀의 이번 시즌 전력을 예상해보고, 시즌 일정이 나오면 달력에 한 땀 한 땀 우리 팀의 경기를 표시하고,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젖혀두고 경기장으로 쫓아간다.


종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선수들은 주로 팀 연고지역에서 거주하고 생활한다. 요즘 공영방송 육아 예능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축구선수 가족이 지방 광역시에 거주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은 선수와 같은 아파트에 살기도 하고, 선수의 가족과 같은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마트나 백화점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이렇게 프로스포츠는 연고지와 밀착하여 지역주민에게 밀접한 연대감을 주었고, 지역주민은 프로스포츠로 하나가 된다.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가 말해주길 롯데의 열렬한 팬인 담임선생님이 롯데가 이길 때마다 크게 기뻐하며, 자율학습을 쉽게 빼주고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롯데가 이기는 것이 모든 반 아이들의 소원이었다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프로스포츠의 연고지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국이 고교 야구로 들끓던 시절, 야구의 변방이었던 인천에 프로야구팀이 창단된다는 소식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설렘을 안겨줬다. 우리의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이 되는 것은 아주 당연했다. 그리고 그 당연한 선택은 주인공의 인생을 매번 다른 방향으로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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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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