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꿀빵을 먹으며 여행은 시작된다

<김약국의 딸들> 통영 문학기행, 첫번째 이야기

by issueproducer

“이것도 한 번 먹어봐요, 크림치즈가 들어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제일 좋아해!”

“우리 집 꿀빵이 작년 통영꿀빵 품평회 1등했어요. 먹어봐요”

“팥 앙금 대신 유자가 들어있어서 아주 상큼하고 맛있으니까 먹어보세요!”


들어는 봤나. 삼보 일꿀빵. 통영 바다 앞 문화마당을 걸어가려면 세 걸음에 한 번씩 꿀빵을 먹어야 한다. 자기네 가게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슥 다가와 꿀빵 한 조각을 손에 먼저 쥐여주는 적극적인 점원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 집에서는 오리지널 팥, 저 집에서는 크림치즈, 거기에 고구마, 유자, 호박, 초콜릿, 치즈 등 끝없이 달라지는 속 재료를 보면서 시식 욕구도 끝없이 샘 솟기 때문이다.


한 손에 묵직한 꿀빵 한 봉지를 흔들며 길 건너편을 내다보면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바다가 마냥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것은 꿀빵 덕분에 마음이 달달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통영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빛났다. <김약국의 딸들>의 첫 몇 문장만 보아도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급변하는 시대에도 이 평화로움은 변함없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책 속에서의 통영이 마냥 평화롭게 그려진다고 해서 아주 소외된 지역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름만 보아도 중요한 군사도시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영이라는 이름 자체가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이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총 지휘하기 위한 해군 기지이자 해군 참모총장이 있었던 곳이다. 이렇게 말하면 당시의 통영이 얼마나 중요한 지역이었는지 와 닿지 않는가.


처음의 삼도수군통제영은 이순신 장군에 의해서 1593년에 한산도에 설치되었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두룡포(지금의 통영)으로 옮겨오게 된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통제영의 규율과 관리가 유명무실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통영은 1604년부터 시작해서 1895년 고종이 통제영을 폐지하기까지 거의 300년 가까이 군사도시의 명성을 이어왔다. 통제영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지방의 곡물 등을 모아서 중앙정부에 공물로 보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찍이 인근 지역의 특산품이 배를 타고 통영으로 모여들었고 이를 거래하는 쌀시장도 발전했다. 통영은 군사도시인 동시에 지방경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갖는 오해가 있다면, 서울에만 사대문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양도성의 사대문일 뿐, 한국의 오래된 도시를 찾아가면 어디에서나 도시를 둘러싸는 성과 성의 안팎을 연결하는 사대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전주에서는 전주성, 진주에 있는 진주성, 남원에 가면 남원읍성이 있다. 많은 관광객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제주도에서도 제주성지와 함께 사대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오랜 시간 중요한 역할을 했던 통영에도 당연히 통영성과 사대문이 있었다. 그때의 도시는 사대문 내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1872년에 제작된 <통영지도>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맨눈으로 찾기가 쉽지 않지만, 1872년에 제작된 통영지도를 보면 통영성과 사대문의 경계를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다. 북쪽의 세병관을 중심으로 관아의 건물들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남문을 빠져나오면 항구와 함께 싸전(미전, 쌀시장)을 찾을 수 있다. 그때의 싸전은 아직도 같은 위치에 남아 있다. 바로 지금의 ‘중앙시장’이다.


그 남서쪽에는 병선색리청과 병선장청 앞으로 많은 군사용 선박이 정박해있다. 자세히 보면 뱃머리 모양이 유독 다른 배 한 척을 찾을 수 있는데, 앙증맞게 그려졌다고 무시하지 말자. 거북선이니까! 병선이 모여있던 곳은 거듭된 간척사업 때문에 오늘의 지도에서는 그 모양이 달리 보인다. 조선 시대였던 1872년에 이미 군병이 훈련하기 위한 공간과 농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통영성 남문 밖 해안을 메웠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 강점기에도 이 지역의 매립이 이어졌다고 한다.


계속된 매립 때문에 만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싸전이 있던 자리에는 중앙시장이 생겼고, 거북선 앞에서 군인이 훈련하던 자리는 오늘날 문화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거북선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는 광장이 되었다. 조선 시대의 지도를 북쪽의 세병관과 남동쪽의 남망산을 중심으로 비교해보면 그 옛날의 통영이 오늘의 지도와 겹쳐진다. 이렇게 시간은 흘렀을지라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았다.


바다 앞 광장인 문화마당에서는 거북선 승선 체험을 해볼 수 있으니, 꿀빵을 우물거리며 한번 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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