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새터, 멘데, 판데! 거기가 어딘데?

<김약국의 딸들> 통영 문학기행, 두번째 이야기

by issueproducer

통영의 옛 지명을 익히기 위해서는 간척의 역사를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통영의 옛 지명을 익혀서 어디다가 쓰냐고. 음, 통영에서 택시를 탈 일이 있을 때 “이순신공원 쪽으로 가주세요”가 아니라 “멘데로 가주세요”라고 현지인인 척할 수 있다! 그러면 기사님께서 “어허 이 녀석 통영을 좀 아는구먼” 하실 거다.


아무튼, 멘데라는 이름도 조선 시대에 메운 간척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정량동에 속하지만, 통영 토박이들은 “땅을 메운 데”라는 뜻을 따서 멘데라고 부른다. 간척사업 때문에 이름이 붙은 또 다른 지역은 서호시장이 있는 서호동이다. 현지인들은 그 지역은 새터라고 부른다. 산을 무너뜨려 바다를 메워서 물려낸 장소라는 의미로 결국 간척지를 뜻한다.


새터의 유래와 풍경은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1894년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이 지역을 새터라고 불렀을 정도니 통영의 간척 사업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


새터(산을 무너뜨려 바다를 메워서 물려낸 장소) 아침장은 언제나 활기가 왕성한 곳이다. 무더기로 쏟아놓은 갓 잡은 생선이 파닥거리는 것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규환(叫煥)속에 옥색 안개 서린 아침, 휴식을 거친 신선한 얼굴들이 흘러간다.


책을 읽으며 지도에 남긴 메모. 엉망인 글씨 속에서도 바다를 따라 판데, 새터, 멘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책 속의 활기찬 새터 아침장은 지금의 서호시장이 되었다. 중앙시장에는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서 온종일 붐비지만, 서호시장은 새벽 일찍 시작하여 오후가 늦기 전에 파장한다. 그러니 책에서 묘사한 강렬한 아침 활기를 느끼고 싶다면 시간 맞춰 가야 한다. “무슨 시장 구경에 아침부터 난리야”라고 투덜거리다가도 이 동네에서 유명한 시래깃국 한 그릇에 산초 한 숟가락 듬뿍 넣어 뜨끈하게 밥 말아 먹고 나오면 “아, 이 맛에 서두르는구나!” 할 거다. 입맛에 안 맞으면 어찌하느냐고? 지역 특색이 듬뿍 담긴 반찬뷔페를 포함한 시락국 한 그릇이 5천 원 짜리 한 장이면 되니 돈이 아까울 리 없다.


여기서 배불리 밥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나오는 동네가 판데다. 이쯤 되면 옛날 통영 사람들의 작명 센스가 느껴진다. 판데는 운하를 판 곳이어서 판데! 판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미륵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통영대교다. 많은 사람이 통영대교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밤에 방문할 것을 추천하더라.



해질 무렵의 통영대교, 몇 시간이 지나면 로맨틱한 야경이 펼쳐진다더라.


통영대교 아래는 강이나 바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부러 파낸 운하다. 예전에는 미륵도와 육지의 해안이 서로 이어져 있었지만, 이 사이로 배가 지나다닐 수 있게 파내서 수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이순신 장군을 피해 도망치려고 여기를 파내어 물길을 틔어 도망치다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야사도 있다는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전쟁 중에 배에서 내려 수로 공사를 할 여유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걸 보면 그다지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약국의 딸들>은 이런 지역의 야사까지도 꼼꼼히 담고 있다.


판데는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에 쫓긴 왜병들이 그 판데목에 몰려서 엉겁결에 그곳을 파헤치고 한산섬으로 도주하였으나, 결국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는 곳이다. 그래서 판데라고 부른다. 판데에서 마주 보이는 미륵도는 본시 통영과 연결된 육로였는데 그러한 경위로 섬이 되었다. (중략) 통영 육지도 막바지인 한실이라는 마을에서 보는 판데는 좁다란 수로다. 현재는 여수로 가는 윤선의 항로가 되어 있고 해저 터널이 가설되어 있다. 왜정시에는 해저 터널을 다이꼬보리라 불렀다. 역사상으로 풍신수길이 조선까지 출진한 일이 없었는데 일본인들까지 해저 터널을 다이꼬보리라 불렀으니 우습다.


다이꼬보리라고 소개된 해저터널은 아직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배부른 관광객이 슬렁슬렁 걸어 미륵도로 넘어가기에 알맞다. 다이꼬보리(たいこうぼり, 太閤掘)라는 이름은 토요토미히데요시를 주로 가리키는 타이코(太閤)에게 바치는 굴이라는 뜻이다.


굳이 다리를 놓지 않고 터널을 판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400여 년 전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0여 척의 함대는 조선 수군을 쫓아 이 바다로 들어왔다. 후퇴하던 조선 수군이 갑자기 학 날개 모양으로 진형을 바꾸기 시작한다. 왜군이 놀라 통영과 미륵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도망했으나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거센 물살과 좁은 바다에 갇힌 왜군은 떼죽음을 당했다. 훗날 일본강점기에 미륵도와 육지를 연결해야 하는데 일본인 입장에서는 차마 다리를 놓아 조상이 죽은 곳 위를 밟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 만들어졌든지 간에 해저터널이라는 낭만적인 이름 때문에 자주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아치 사이로 걸어가는 아쿠아리움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 낭만은 넣어두는 게 좋겠다. 정확히는 바닷속이 아니라, 바다의 바닥 아래 땅속으로 지나가는 터널이라서 어둡고 침침하다. 오죽하면 <김약국의 딸들>에서 습기와 물이 괴어 있고,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황천길로 묘사되어 있을까.


성님, 나릿선 타고 건너갈랍네까?
그만 굴로 가지이. 연불이나 뫼시고 가자.
두 중늙은이는 나들이옷을 입고 시름시름 걸어간다. 그들은 용화산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다. 숙고사 침와 숙수 단속곳이 마찰하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온다. 그들은 급격하게 경사진 해저 터널로 들어갔다. 내리막길을 한참 동안 내려가니 터널은 왼편으로 굽어진다. 외부의 광선은 차단되고 침침한 어둠이 코앞에 닿는다.
불이 꺼졌는가배?
윤씨의 목소리가 콘크리트 벽에 윙하고 울린다. 메아리가 되고, 그 메아리는 다시 메아리가 되어 긴 동굴 속에 벽을 치며 번져나간다.
불 안 꺼졌습네다. 저기 전기불이 있네요.
천장에 전등불이 둔중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중늙은이는 서로 손을 잡고
더듬거리듯 앞으로 나간다. 터널 바닥에 물이 괴어 질벅질벅하였다. 모터로 물을 뽑아내지만 언제나 이곳에는 습기와 물이 괴어 있는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윤씨의 목소리는 또다시 윙하고 울려나갔다.
동숭아.
야?
우리가 죽으믄 이런 어두운 굴을 지나가겄제.
그러게요.


지금도 터널이라 조금 어둡긴 하지만, 이제는 전기도 잘 들어오고 모터도 잘 돌아가니까 황천길 같지는 않다. 게다가 터널 중간에 1932년에 건설된 아시아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라는 설명과 함께 건설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묘하게 자부심도 솟아오른다. 실제로는 몇 걸음 안 되는 짧은 거리이기도 하고.


해저터널의 입구. 책의 묘사처럼 황천길 같지도 않지만 이름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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