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열세번째 이야기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마음 먹기 전, 계나는 이른 은퇴 후 제주도로 내려가서 사는 것을 상상하곤 했었다. 직접 몸을 움직이며 여유롭고 소박하게 사는 삶이 계나의 꿈이었다. 물론 이제는 제주도도 땅값, 집값과 물가 모두 많이 올라서 나른하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빡빡하다는 점은 잠시 모른 척하도록 하자.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제주도에 허름한 아파트를 사는 거야. 거기서 산다면 되게 규칙적으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일정한 시간에 잘 거야. 그리고 집에서 요리를 할 거야. 반찬은 간소하게 두세 가지만 먹을 건데 내가 직접 만들거야. (중략) 그리고 수영을 배워서 물속에서 막 자유롭게 슉슉 다니고 싶어. 수영장에서 턴 찍고 인어 공주처럼 잠수도 오래 하고.” (p.14)
계나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성향과 가치관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20대의 계나와 30대의 계나가 원하는 삶은 큰 맥락에서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성향이란 게 참, 잘 안 바뀌나 보다. 20대의 계나는 자신의 성향과 행복의 기준이 한국의 보편성과 맞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호주에서의 생활을 통해 점차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을 꼼꼼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계나는 재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중략)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중략)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p.184)
그렇다면 계나가 호주에서 찾은 행복투자법을 가지고 서울에서 잘 살 수는 없었던 걸까? 흔히들 말하듯이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깨달았다면 그 실천은 서울이든, 호주든, 제주든, 크게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계나의 주체적인 행복투자법은 처음엔 한국에서도 이자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나의 투자법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면, 처음의 그 생각과 태도를 끝까지 지켜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계나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 차이를 가장 현실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수익이 나더라도 손실이 더 크다면 결국은 마이너스고, 그런 시장이라면 지속적인 투자는 어렵다.
계나가 한국에서 지명이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며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만 상상해봐도 벌써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명이 부모님은 물론이고 계나의 부모님, 친구들, 그 외의 다양한 지인들이 “지금 동거가 웬 말이냐", “나이가 몇인데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을 세우고 있느냐", “더 늦기 전에 애를 낳아야지, 제정신이냐", “그래도 맞벌이해야 더 빨리 큰집 사고 자산을 불릴 수 있다", 기타 등등 어떤 종류의 애정 어린 잔소리를 가장한 무례한 폭력을 가할지 귀에 들릴 정도다. 잔소리와 훈수를 귓등으로 흘려들을지라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결국 계나는 한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절대다수가 “자산성 행복"을 이야기하며 “현금흐름성 행복"을 별 볼 일 없고 더 낮은 가치로 취급하는 분위기라면, “자산성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마음껏 행복하기 어렵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각자에게 맞는 행복투자법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잘 인지한다고 해도, 전체 사회에 각기 다른 행복투자법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문화와 제도가 없다면 각 개인이 행복해지는 쉽지 않다. 나의 단단한 취향, 가치관, 결심만큼이나 나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도 중요한 것이다.
계나는 어찌 됐든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호주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멋모르고 처음 한국을 떠날 때와 달리, 자신이 왜 떠날 수밖에 없는지를 정확히 직시하고 나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출국심사대를 걸어나갔다.
한국과 두 번째 이별을 하게 된 계나가 너무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 왜, 헤어진 커플이 다시 만나서 잘될 확률이 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운이 좋고 또 좋아서 3%의 확률 안에 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니라고 해도 너무 슬퍼하거나 불행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나에게만 특별히 찾아온 비극이 아니라 97%의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삶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헤어짐은 아프지만,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쑥쑥 높여주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계나는 자신에게 더 적합한 사람과 환경을 성실하게 찾아낼 것이고, 점점 행복에 가까워질 거라고 믿는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더 행복하렴, 계나야. Have a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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