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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19. 2019

길 위에서 만난 공기와 햇볕 그리고 사람들

터키의 그랜드 캐년, 레벤트 협곡을 누비다

아침 일찍 레벤트 협곡을 가기 위해 아디야만에서 말라티아로 출발했다. 터키 남동부 지역에 속하는 말라티아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내륙 평야 지대이다. 문명의 발상지였던 유프라테스강의 지류가 흐르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중요도시였으며, 12세에는 셀주크 제국으로 편입되어 상공업이 번성했다. 지금은 과실, 야채, 담배, 목화의 집산지이다. 말린 과일, 특히 살구가 유명한데, 터키에는 말라티아라는 말린 과육을 파는 상점도 있다. 백화점이나 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상점의 이름이 왜 말라티아인지 처음에는 몰랐었다. 이제 말라티아를 다녀오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말라티아는 어떤 과일이든 잘 마를 수 있는 땅이었다. 풍부한 햇볕과 맑은 공기가 말라티아 살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곳 사람들은 과일을 말리고 농작물을 가꾼다. 말라티아의 햇살 속에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서 인지 그들은 낯선 타인을 맞이할 줄 아는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넴루트를 보고 아디야만 시내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다음날 일찍부터 달렸다. 좁고 꼬불꼬불한 산 길을 가다 잘 닦아 놓은 뻥 뚫린 길이 나오면 잠시 안도할 수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펼쳐지는 색다른 풍경에 우리는 감탄했다. 이름 모를 호수가 반짝였고 하늘빛과 물빛을 나누는 길 위를 우리는 가로질렀다. 쨍한 햇볕이 우리에게 쏟아졌고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좋았다.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는 햇볕과 공기에 감탄하려고 이곳에 왔구나 싶었다. 말라티아는 햇볕과 공기 같이 흔하디 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특별하게 느끼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렇게 길을 달리다가 나는 남편에게 외쳤다.

"옥수수다!"

평소 옥수수 귀신인 남편은 자동반사적으로 속도를 줄이더니 차를 멈췄다.   

"옥수수라고?" 여기 옥수수가 있어?

"어, 나 지금 방금 봤는데, 갓 길에서 아저씨가 옥수수 팔고 있었어."

아침잠이 부족했던지 아들은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들었고 나는 하늘빛과 물 빛에 감탄하며 차창 밖 풍경에 심취해 있었다. 그렇게 넋 놓고 구경하다가도 짧은 순간, 옥수수 매대를 발견한 것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포식자가 낮잠에 취해 있다가도 먹잇감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포착하듯, 분명 내가 본 것은 옥수수였다.

이 첩첩산중에 터키 아저씨가 옥수수를 판다고? 옥수수 킬러인 신랑은 신이 났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먼발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뭔가를 뜯어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옥수수 맞지?" 옥수수가 맞았다.

짜잔~, 이것이 바로 터키식 옥수수 노점이다. 삶은 옥수수와 구운 옥수수. 아니, 삶은 옥수수와 탄 옥수수 이렇게 두 가지다. 희한하게 터키 사람들은 옥수수를 과하게 태워서 팔았다. 살짝 굽는 게 아니라 겉표면을 시커멓게 태워 먹는다(?) 그 이유를 알기 전까지 나는 이 태운 옥수수를 먹어야 할까 의문이었다. 하나의 2리라 우리 돈으로 400원 정도 하는 옥수수는 봉지도 없이 옥수수 껍질에 싸서 준다.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말라티아에서 옥수수를 사 먹는 우리를 터키 사람들은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런 시선을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길을 서두르느라 점심을 건너뛴 우리는 삶은 옥수수와 탄 옥수수를 각각 2개씩 샀다. 그리곤 그 자리에 서서 순삭. 당연히 낮잠을 자던 아들도 눈치를 채고 벌떡 일어나서 함께 순삭 했다. 터키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와는 다르게 소금을 쳐서 먹는데, 달짝지근하고 구수한 옥수수와 짭조름한 소금이 어우러져 천연의 단짠단짠 한 맛을 냈다. 삶은 옥수수는 역시 꿀맛. 탄 옥수수는 이상하게 탄 맛이 구수했다. 처음에는 별로 였는데 먹다가 보니, 꽤 먹을만해서 결국 다 먹어치웠다. 이제 배도 좀 채웠으니 다시 출발해 볼까?


레벤트 협곡은 터키의 그랜드 캐년이라는데, 가는 동안 주위에서 그렇게 스펙터클한 광경이 포착되는 곳은 없었다. 곧 어마어마한 장관이 펼쳐져야 하는데 그런 곳이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만 지나가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말라티아의 풍경을 그대로 눈에 담았다. 그리스의 지중해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올리브 나무들, 각 종 밭작물이 너른 평야를 차지한 모습은 그저 평화로웠다. 터키 어디를 가보아도 차보다 우선인 양 떼가 차도로 끼어드는 것쯤은 웃으며 넘겼다. 여기는 최고로 맛난 양갈비의 나라 터키니까.


그러다 길에 인적이 슬슬 뜸해지기 시작했다. 구글맵은 목적지까지 겨우 8분 남짓이라고 알려줬다.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 앞에 커다란 병풍이 서 있는 것 같은 엄청나게 큰 바위산이 보였다.

"저거다", "저기인가 봐" 멀리 형체만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내가 외쳤다.

"저건가?" 남편은 운전하다 잠시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거의 다 왔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거는 저 바위산 밖에 없잖아. 저거야, 저게 레벤트인가 봐."

우리는 온전히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레벤트 협곡으로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었다.


레벤트는 6500만 년 전에 지각변동으로 인해 바닷속에서 융기한 28km에 이르는 깊고 긴 협곡이다. 오랫동안 풍화와 침식을 겪으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85MxKyIy0&feature=share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가본 건 아니지만 레벤트는 정말 대단했다. 우리는 우와! 를 연발하며 흥분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산의 모습을 다 잡아보려고 카메라 줌을 최대한으로 했더니 사람이 마치 점처럼 나왔다. 찍은 사진을 보니 이 어마어마한 레벤트 협곡에서 나는 마치 한 마리의 개미처럼 보인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우리는 불과 100년을 살기도 버거운 이 세상을 이 바위들은 65000만 년을 살았다. 깎기고 깨지며 불뚝 솓았다가 다시 꺼지고 모진 비바람을 다 맞으며 숨 없이 바위는 계속 살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그 생이 짧아서 귀하고, 살아있지 않는 것은 그 생이 무한에 가까우니 귀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것은 자연 안에서 그 존재 가치를 가진다. 우리가 수 만년을 견뎌 온 저 바위들을 그저 돌덩어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것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덧없이 사라진다. 죽음을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것은 생을 다하면 땅에 묻히고 썩어, 흙먼지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숨 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저 바위는 6500만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다.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고 말하는 바위도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살며 부서지고 깨진다. 모래가 되고 바람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사람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 자체로 그냥 옳다. 이 사실만 잊지 않아도 삶을 괴롭히는 백팔번뇌가 꽤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스스로 잊지 말자고 되뇌어 보았다.


레벤트 협곡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한 뷰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우리 세 식구는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며 조잘조잘 각자의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그랜드 캐년과 레벤트를 모두 다녀온 지인의 소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지인은 레벤트가 결코 그랜드 캐년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는 둥, 아들은 말라티아에 웅장한 장관을 보니 카파도키아는 아기자기한 수준이라는 둥, 우리는 눈 앞에 놓인 레벤트 협곡에 대한 경외감에 가득 차 있었다. 다른 관광지에 갈 것도 없이 저녁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레벤트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로 했다. 28km의 긴 협곡을 테라스에서만 보고 가는 건 레벤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우리 다시 엘라트라를 타고 레벤트 구석구석을 몸소 누벼보기로 했다.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라 생각하고 산등성이에 올랐다. 이미 급경사와 비포장길에 익숙해진 우리는 겁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일등 공신은 다름 아닌 엘란트라다. 승용차가 산길을 이렇게 잘 가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외국에 나오면 한국 것은 다 가치가 올라간다. 롤러코스터처럼 자동차를 타고 레벤트 협곡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아무리 이 길이 익숙해졌다 해도 산꼭대기에서 급커브를 돌 때,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끝까지 올라왔으니 이제는 내려갈 차례였다. 협곡 주변 산등성이를 구비구비 누볐으니 산 아래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한참 동안이나 길을 내려와 더 이상은 차로 갈 수 없는 길을 만났다. 소나 말이나 갈 수 있을 것 같은 흙길이 놓여 있었다. 저런 길을 차로 들어갔다간 바퀴가 진흙탕에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서 직접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인근 민가에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집 근처로 걸어갔더니 마을 사람들이 몇몇 모여 있었다. 나는 짧은 터키로 Bir araba buraya gidebilir mi?(여기 차로 갈 수 있나요?) 물었다. 마을 사람들 중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여인이 Araba gidemez(차가 갈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웃으며 고맙다 말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한 여인이 나에게 손짓하며 차이(çay)를 마시고 가라고 불렀다. 나는 차이를 마시고 싶다기보다 레벤트에 사는 사람들과 한 마디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 그리로 갔다.


그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 앉아 차이와 간식을 즐기고 있었다. 엉뚱하게 나타난 낯선 이방인에게도 선뜻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는 그들에게서 나는 한국의 정감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차이 한잔과 교즐레메를 뜯어 주었다. 불현듯 먹을 것을 받아 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차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아들이 생각났다. 손에 먹을 것을 받아 들었으니 그냥 갈 수도 없고, 가족들은 길이 어떤지 보러 나간 나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 걱정스러웠다. 나는 사람들에게 차에서 남편과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급하게 그 집을 나왔다. 한 손에는 차이 잔을 한 손에는 교즐레메를 들고 남편과 아들이 있는 차로 갔다. 아들은 나를 보더니 내 손에 있던 교즐레메를 덥석 집어, 먹기 시작했다. 옥수수로 점심을 때워서 인지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나는 차이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남편에게 더 이상 길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여기서 다시 차를 돌려 우리가 온 반대편 방향으로 가보자고 했다. 나는 차이 잔을 돌려주고 오겠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차에서 사탕 한 줌을 챙겼다.


얼른 차이 잔을 비우고 나에게 차이를 준 여인의 손바닥 위에 차에서 가져온 사탕 한 줌을 건네었다. 별 것 아닌 사탕 한 주먹에 그들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밝아졌다. 나는 다 마신 차이 잔을 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거기서 나오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내 손에 누군가 탄 옥수수를 쥐어 줬다. 어! 이건 우리가 아까 레벤트 오는 길에 사 먹은 그 옥수수랑 똑같네. 나는 이제야 터키 사람들이 왜 탄 옥수수를 먹었는지, 그 출처를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옥수수를 구워 놓은 모양새를 보니, 모닥불을 피고 남은 숯 위에 옥수수를 올려놓고 은은하게 익히고 있었다. 세월아 내 월아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숯불 위에 옥수수는 겉은 살짝 타고 속은 말랑말랑하게 익어갔다. 나는 차에 있는 우리 옥수수 귀신 생각이 나서 이 탄 옥수수를 냉큼 받아왔다. 홈메이드 탄 옥수수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끼리 두런두런 앉아서 옥수수를 구워 먹는 모습이 왜 이렇게 정겨운 걸까? 나는 이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그중 제일 젊은 이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흔쾌히 나의 촬영을 허락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 놓고 지금에 와서 다시 보니, 이들과 나는 참 이질적이다. 나는 문명의 때가 묻었고 그들은 삶의 때가 묻어 있었다. 나는 연약하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농사 때문에 그을린 투박하고 강인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도시에서 신용카드 한 장으로 사는 나와 시골땅에서 땀을 흘리며 사는 그들과는 무엇인가 많이 달라 보였다. 나에게선 번드르르한 물질적 풍요가 느껴졌고 그들에게는 낯선 사람에게 먹을 것과 자리를 내어 주는 정신적 여유가 느껴졌다.


남편에게 우연히 레벤트 마을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보여줬다. 요즘 회사일 때문에 무척 스트레스가 많았던 남편이 참 뱃속 편해 보인다며, 이 신경 저 신경 안 쓰고 공기 좋은데 살아도 좋을 거 같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돈으로 해결할 일이 많은 도시인의 삶에는 스트레스가 많다. 그날 내가 본 레벤트 마을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고 꽤 속 편해 보였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낯선 사람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의 호의를 베풀 줄 알았다. 농사지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도시인의 정신적 피로에 익숙할 뿐,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속사정은 잘 모른다. 그래도 이 날 내가 본 그들의 삶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참! 마을 사람들에게 얻어 온 그 홈메이드 탄 옥수수는 정말 구수했다. 사 먹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골고루 무르게 익어서 탄 맛보다는 구수한 맛이 한결 진했다. 이 날 우리 집 옥수수 귀신은 옥수수 맛에 신세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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