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감정 정리 07화

부부 사이, 그 치사함에 대한 고찰

이스탄불에서 마흔

by 하루
기쁨, 박탈감, 분노, 슬픔
감정의 종결과 이성의 발동


코로나 19 탓인지 덕인지 우리 부부는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칼 퇴근하는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긴 저녁식사를 하곤 했는데,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요즘 우리 가족의 화두는 남편의 이직과 아이의 전학 문제이다. 최근에 남편은 본인이 평소 원했던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몇 달 간의 긴장과 고비가 있었지만 결과가 좋았다. 아들도 영어실력이 부쩍 늘어 입학시험이 있는 학교에 지원해봤는데 다행히 합격통지를 받았다. 이스탄불 생활에서 한 고비 또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다 잘된 일이었다. 코로나 펜데믹 사태 속에서 해외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 되는 좋은 소식들, 나는 정말 기뻤다.




그런데 자꾸 나는 가족들에게 묻게 되었다. '이렇게 일이 다 잘 굴러가는 데에는 내 덕도 있지 않냐고?'

남편 내조와 아이 공부를 서포트한 내 공도 있지 않며, 나는 인정받아야겠다는 투쟁을 시작했다.


“오빠가 결혼 잘해서 하는 것마다 잘 되는 거라는 생각 안 들어? 다 나 만난 이후로 잘 되는 거지?"

나는 언제나 기세 등등하고 내 공을 나 스스로 치하하는 버릇이 있다. 자기 공 생색내기는 하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지만 칭찬에 뜨뜻미지근한 남편의 반응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된다.

남편 왈, "주위에서 결혼 잘해서 잘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남편은 시치미를 뚝 잡아뗐다.

나는 계속 남편을 추궁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내가 직장 다니며, 살림하며, 아이 키우며, 집 장만하고 부동산까지 공부해서 투자하고, 나는 육아, 교육, 재테크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나는 남편이 무엇을 하든지 든든한 나의 후원이 뒷받침이 됐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참아야 하는데 나는 늘 거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번번이 대놓고 생색을 냈다. 남편은 내 말에 동조는커녕 자신이 열심히 산 덕에 결과가 좋았다며 운도 따랐다고 덧붙였다. 내 공에 대해서는 입 밖에 꺼낼 생각조차도 없어 보였다. 나는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반주로 마시던 맥주의 취기가 싹 가셨는데, 남편은 오히려 와인 몇 잔을 마셔 놓고 취기가 올라오는지 먼저 침대로 가버렸다. 남에 속만 벅벅 긁어놓고 남편은 잠만 쿨쿨 잘도 잔다. 나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그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끝까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자기만 잘났다고 늘어놓는 남편이 괘씸해서 잠도 안 왔다. ‘진짜 치사하다 치사해. 밴댕이 속 알 머리, 에고이스트, 남자가 바다 같은 마음은 다 엿 바꿔 먹었나. 포용력이라곤 1도 찾아볼 수가 없네 그려’ 옆에 자고 있는 사람을 두고 별별 흉을 다 보고 나니 자다가도 신경질이 치밀어서 잠꼬대로 나올 판이었다.




사실 나는 참 단순해서 대부분의 슬픔이나 분노는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거의 사라지는 성격이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자고 일어나면 대충 툭툭 털어버리는 나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날 일은 잊히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다 나는 이불 킥을 했다. 어젯밤 느낀 그 괘씸한 감정은 그 여세를 더해 거의 분노에 가까워졌다. 밤에 잠꼬대까지 하면서 감정을 더 부추긴 걸까? 밤새 묵힌 감정을 1박 2일로 연장해서 혼자 아들방으로 가서 문을 닫고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씩씩거렸다. 그리곤... 분함에 눈물이 펑펑 나기 시작했다.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가 왜 어제 일로 자고 일어나서도 이렇게 눈물 바람을 하고 있나? 대체 이 감정이 왜 이렇게 가시지 않는지 나는 내 감정의 원인을 알고 싶어 졌다.


배고픈 사람이 밥하겠지! 코로나 19 때문에 주말엔 무조건 통행금지인 터키에서 나는 참 열심히도 하루 세끼를 해왔다. 오늘은 밥을 아예 안 하기로 마음먹고 나는 서재에서 정말 오랜만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남편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왜 이리 지속되는 걸까? 나의 이 감정은 어디에서 밀려오는 것일까? 이 책에서 한 번 찾아보리라 생각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어려운 책이 잘만 읽힌다.

스피노자가 인간의 감정에 대해 정의해 놓은 부분을 읽다가 뭔가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에티카>에서 ‘감사는 좋은 일을 베푼 이에 대해 좋은 일을 베풀려고 노력하게 하는 욕망 또는 열렬한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인정은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사람에 대하여 좋은 일을 베풀려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감사는 결국 사랑에서 오는 감정이고 인정은 우리가 연민을 느낄만한 사람, 내가 신세를 졌던가 아니면 동정을 느낄만한 사람에게 다시 베풀려는 욕망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가 전날 저녁식사에서 주고받은 치사스러운 대화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나의 수고를 스스로 칭찬하면서까지 남편이 나에게 인정과 감사를 표현해 주기를 원했다. 내가 남편에게 원했던 것은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감정적 보상으로써 사랑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나는 여기에서 분노를 느꼈다. 그래, 그랬구나! 그럼 스피노자는 분노는 무엇이라고 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그는 분노는 나를 잘못된 방식으로 대해준 이에 대한 미움이라고 말했다. 나를 잘못 대해준 남편에 대한 미움, 이것이 나의 분노의 씨앗이었다.


그렇다면 남편은 왜 내가 원하는 감사함을 표현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 스피노자가 말하는 잘못된 태도로 나를 대한 것일까? 처음에 나는 남편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고맙지만 절대 고맙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봤다. 하지만 서로에게 솔직한 평소에 우리의 스타일로 볼 때 나는 남편의 행동에 거짓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었던 행동 그대로만 가지고 판단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이 날 그는 나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날 밤에 있었던 사실이고 여기에 나는 분개한 것이다.


요약해보면 나는 남편에게 감사와 사랑을 원했는데 남편은 이를 주지 않아 나는 마음이 삐뚤어졌다. 나는 분개했고 분노는 슬픔이 되어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까지 했다. 휘몰아치는 감정이 조금 잠잠해지고 나서야 나는 서재에서 이런저런 책을 뒤지며 나에게 일어난 요동치는 감정의 원인을 곱씹어 보았다. 사랑을 달라는 보통 여자와 자기중심적인 흔한 남자의 치사하고도 유치한 어느 날의 에피소드에 불과한가?




나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다음 다시 생각에 돌입했다. 내 시간과 노력을 남편과 아이에게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나의 시간과 노력은 나를 위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위해 쓰는 것이 더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무 저항 없이 주어진 상황과 가족의 요구에 나를 맞춘다면 엄마라는 위대한 존재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박탈감이 드는 순간을 맞이 하게 될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를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무능력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무능력은 자신의 본성이 아니라 외부 것들의 공통적인 상태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위하도록 자신을 바깥에 있는 것들에 의해 규정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가족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무능력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였다. 나를 불리한 위치에 가져다 놓고 분노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고 나니, 이제서야 나는 이 슬픔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의 이성이란 놈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야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각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자리를 다시 배치해야 할 텐데.




해바라기처럼 남편과 아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둘이 알아서 나에게 고맙다고 할 줄 알았다. 처음에 나는 남편이 나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만 부부 사이에 치사한 자존심 싸움, 그리니까 상대를 인정해주기 싫어서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 수고를 모르는 척하는 남편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남편은 나의 수고를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일과 가정에 충실했다. 우리 가족이 이스탄불에서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하고 있다. 자기가 할 만큼 역량을 다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 덕 본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이 노력한 만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가족에게 나의 수고를 알아 달라 목을 매고 고대하고 있는 꼴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았다.


일단 나는 남편과 아들의 열열한 써포터즈 역할을 하며 생색을 내봤자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를 알았다. 그럼 빨리 나의 행동과 태도를 바꿔할 필요가 있다. 소모적인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여기서 벗어나 내 영역을 확보할 기회를 잡으면 된다. 남편과 아이에게 이제부터 가사분담을 하자고 해보면 어떨까? 이스탄불 생활에 모두 잘 적응했으니 나도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었던 글쓰기에 집중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삼시 세 끼와 청소, 빨래, 남편 아들 써포터즈에서 좀 벗어나서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 그 둘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다. 나는 남편과 아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킬만한 나의 논리를 세운 후 오랜 정적을 깨고 방에서 나왔다.


“이제 나도 글을 좀 쓰고 싶어. 그러니까 가사분담을 좀 해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근데, 웬걸, 남편은 토씨 하나 안 달고 흔쾌히 자신이 밥과 빨래를 할 수 있다고 했고, 아들은 알아서 숙제를 하고 검사를 받겠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작가님은 서재에서 우아하게 글을 쓰세요."라며 놀렸다. 아들은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려볼 기세다. 너무 쉽게 가사분담을 수용하는 남편과 숙제를 후다닥 해버리는 아들. 1박 2일 동안 나 혼자 방구석 이불킥만 한 줄 알았는데 눈치 빠른 두 남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순발력 있게 나의 반격에 대처를 하고 있었다. 설득용으로 준비한 나의 푸념 섞인 궁색한 썰들은 한 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결전의 순간은 이렇게 허무하고 싱겁게 끝이 났다. 이게 과연 나의 승리일까?




올해 마흔, 내가 이스탄불에 살게 되면서 실업상태가 된 이후로 나의 정체성의 위기는 우리 가족 내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다. 회사로 가는 남편, 학교로 가는 아들, 갈 곳을 잃은 나(?).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이 문제에 대해 우리 가족은 나만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갈 곳을 잃고 집에 모인 요즘, 내 마음의 고요와 가족의 평화를 깨뜨린 장본인은 남편이 아닌 나였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고 칭하며 세상의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 했지만, 나는 요즘 오히려 마흔 춘기를 맞이했는지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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