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감정 정리 06화

터키 생활, 일상 +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갈 것인가

by 하루
해외 살이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 해외 생활 개선 사항 두 가지
1. 영어로 말이 술술 안 나오니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의 학교에 갈 때마다 주눅이 든다.
2. 남편은 회사로, 아들은 학교로 나도 나갈 곳을 찾아야 한다.


구독자 여러분들 잘 지내시죠?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려 봅니다. 그간 저에게 심경의 변화가 조금 있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아시아인도 거의 없는 동네에서 Guney koreli(한국인)로 꿋꿋이 살고 있는 저는 해외생활 경험 단 1도 없는 토종 한국인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며 6개월이 흘렀고 이제 가족들 먹이고 입히고 정도는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정도로 이곳 생활을 알게 되었어요.

헌데 여기 생활에 적응할수록 자꾸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늘어나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도 생기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생활 반경을 더 넓히고 적극적으로 배우고 사람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터키어가 부족하긴 하지만 터키인 친구에게 배우고 있으니, 일단 나가서 부딪혀봐야 말도 더 늘고 생활에도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겨울 동안 서재에 너무 박혀 있기도 했고 봄이 되어 갈수록 날씨가 화창해져서 이제는 책을 덮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용기를 불끈불끈 솟더라고요. 이에 힘입어 내가 다닐만한 곳을 스스로 뚫어보겠다고 글도 안 쓰고 몇 주 동안 고군분투하고 다녔답니다. 지금부터 저의 그간의 행적을 정리해 봅니다.



말이 안 나오는데, 나한테 영어 잘한다고?


일단 제가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토메르(Tomer)를 찾아가 보기로 했어요. 앙카라 대학교 부속 어학원인 토메르는 탁심에 위치했고요. Tomer Dipolima라는 공식적인 어학 능력 인증서를 제공하기 때문에 학위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수료를 인정받을 수 있어요. 이스탄불에서 교사의 자질 가장 높은 어학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침 주말에 신랑이 근처에서 직원 면접 볼 일이 있다고 하기에 이 참에 같이 나가서 저는 어학원 스케줄을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일단은 남편 약속이 먼저니, 저랑 아이는 따로 놀고 있다가 남편이 용무 마치고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어요. 둘이 제가 좋아하는 이스티랄 거리에 에스프레소 랩이라는 카페로 갔지요. 아들이랑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꽁냥꽁냥 한참 놀다 지칠 때쯤 주변을 쓱 한번 둘러봤어요. 하나같이 먼가에 쏙 빠져서 집중하는 모습들이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몰입한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열심히 일도 하고 공부도 했었는데......' 하면서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신다면 죄송하지만 그때 저는 노트북을 펴고 집중해서 일 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좋아 보였어요. 상쾌한 아침 공기 만끽하면서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온통 일에 몰입한 모습. '나도 저들처럼 먼가에 몰두하고 싶다.' 속으로 말했어요. 참 별게 다 부럽죠? 직장 다닐 때는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길 바랬는데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모순 덩어리네요. 1시간 넘게 카페에 죽치고 있다가 지쳐서 남편은 여즉 뭐하나 염탐을 하러 남편이 면접 약속을 한 호텔 커피숍에 가보기로 했어요.

남편은 호텔 정원에 있는 카페에서 한껏 프로페셔널하게 예비 직원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큰 웃음을 짓고 있더라고요. 속으로 '풉! 참 푼수처럼 크게 웃네!' 했어요. 해외에서 경력을 쌓으며 열 일하는 남편에게 질투가 느껴지기도 했고요. '나도 일 할 때는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나고 인정받는 직장인이었는데.' 아내이자 엄마로 여기 와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 같은 초라함이 느껴졌거든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그것 만으로 나를 규정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인가에 대한 감정이, 아쉽게 저를 스치는 거죠. 남편이 제가 해주는 밥 먹고 나가서 일하고 아이는 학교 잘 다니니 다행이고 감사하지만, 이런 생각이 가끔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허한 마음도 잠시 남편한테 면접이 끝났다고 금세 전화가 왔어요. 이제 제 차례가 왔다 싶어서, 남편을 보자마자 선수를 쳤죠.

"신랑, 엘리트 터키 여성이랑 면접 보니까 그렇게 즐거워? 멀리서 봤는데 완전 푼수같이 웃더라. "

"나한테는 언제 그렇게 함박웃음 지어줬더라? 기억도 안 나네." 그냥 다정하게 말했거든요.

미안했는지 신랑이 저를 보면서 머쓱하게 "허허" 웃더라고요.

"나 토메르 가서 어학원 과정 알아보고 올 테니까 사랑하는 아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하고는 얼른 호텔을 빠져나왔어요.


토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을까 서둘러 어학원에 도착하니 담당 매니저가 레벨 테스트를 봐야 한답니다. 1시간 넘게 레벨 테스트를 보고 영어 선생님의 인터뷰까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후다닥 문제지를 풀고 나니 정말 오랜만에 답안지를 작성했다 생각했어요. 대학교 졸업한 게 벌써 15년 전 일이니까요. 딴생각하는 사이 선생님은 OMR카드 위에 답에만 구멍을 낸 종이를 얹고 재빨리 채점을 마치더니, 헉! 저의 레벨은 중 상급반이랍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나 영어로 말이 잘 안 나와서 여기 왔다고 했더니 아니라면서

"너 시험 아주 잘 봤다네요."

이 놈의 시험만 잘 보는 콩글리쉬. 보아하니 터키의 영어 교육 방식도 Speaking과 Listening 위주가 아니라 Reading과 Grammar 위주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시험 통과는 필요 없고 당장 smooth 하게 말을 할 수 있게 Speaking연습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더니 저에게 맞는 반은 2달 후에나 개강한다고 합니다. 레벨 테스트 비용 30TL만 쓰고 터벅터벅 수강 신청도 못하고 토메르를 빠져나왔어요.


다음날부터 저는 당장 영어를 다시 배울 곳을 찾아 매일 집 밖으로 나다녔어요. 아이 때문에 평일 오전 시간만 자유로운 저에게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구글맵을 켜고 터키어로 ingilizce(영어)라고 쓴 다음 검색되는 집 근처 어학원을 직접 가보기로 한 거죠. 우선 집에서 20분 거리에 리뷰 평이 좋은 어학원을 하나를 발견. 버스를 타고 숨을 헐떡거리며 가파른 언덕을 걷고 또 걸었어요. 지나가는 이들에게 몇 번을 묻고도 못 찾아서 또 묻고 결국 착한 터키 아가씨가 문 앞까지 데려다줘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 날 뻔! 간판이 정말 작은 글씨로 되어 있어서 멀리 서는 보이지가 안게 생겼더라고요. 안도의 한 숨을 쉬면서 안으로 들어가 봤어요. 그런데 웬걸? 제가 상담하러 왔다고 했는데 못 알아듣는 걸 보니 어학원 직원들이 전혀 영어를 못하는 거예요. 사장인지 큰 방을 따로 쓰는 학원 관계자가 저를 들어오라고 했어요. 영어 선생한테 전화를 해서 부르는 것 같았고요. 방 안에는 온통 담배 냄새가 진동해서 숨을 못 쉴 지경. 터키는 남자나 여자나 애연가들이 많거든요. 슬그머니 방 문을 열어 놓고 서서 기다렸더니, 금방 영어 선생이 2층에서 내려왔어요. 덩치 크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눈을 갖은 남자는 저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터키식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지만 여기는 대부분 터키어로 수업을 한다면서 몇 마디 대화를 하지도 않고 Free talking class는 아직 개설이 되지 않았다면서 아쉽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어요. 이런 경우 터키에선 사실상 연락이 안 온답니다. 이번에도 수강 실패.


이후로도 저는 며칠간 다른 어학원도 가보았지만 터키인을 상대로 하는 어학원에서 제가 들을만한 수업은 마땅히 없었어요. 직접 알아보다 보면 하나 얻어걸릴 줄 알았는데 외국에서 내 구미에 딱 맞게 무언가 배울만한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았죠. 결국 저는 계속 허탕만치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터키인에게 제 고민을 얘기했어요. 저랑 비슷한 고민이 있던 그 친구도 어학원보다는 모국어로 영어로 하는 사람과 Free talking으로 대화 연습을 하는 방법이 나을 거라며 다행히 영국인 선생님, Kim을 소개해 주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소개를 받은 다음날 저는 바로 그녀를 찾아갔어요. 키가 크고 훤칠한 Kim은 젊었을 때는 모델 같은 미모를 지녔을 것 같은 고운 할머니였습니다. 1시간의 레벨 테스트를 마친 후 저는 그녀와 1시간 동안 차를 마시며 인터뷰를 했어요. 영국 사람을 별로 만나 본 기억은 없지만 사람에 대한 느낌을 중시하는 저에게 2시간 동안 Kim과의 만남은 신뢰를 느끼기에 충분했어요. 제 상황을 이해하려는 정중한 태도와 현재 영어 실력에 대한 정확한 진단, 느리고 정확한 말투까지. 망설이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와 만나 대화하는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어요. 시험만 잘 보는 한국식 영어를 청산하고 정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진짜 언어로서, 영어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계속되는 할머니 선생님과의 인연


영어문제는 해결했으니, 이번에는 취미생활을 찾아 물색에 나섰습니다. 저를 받아주기만 한다면 평소 관심 없던 뜨개질이라도 할 판이었어요. 터키 아줌마들이 모여드는 곳에서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했죠. 평소 터키 여자들이 취미를 즐기는 작은 아카데미들이 많은 건물을 알아두었던데, 그곳을 1층부터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어요. 화방도 세 군데나 있고 뜨개방, 공예방, 의상실까지 여러 군데가 있더라고요. 어디를 가면 나를 받아 줄까 고민하다가 전시된 그림이 마음에 드는 한 화방 앞에 멈췄습니다. 다른 곳보다 그린 이의 감정이 담겨있는 그림의 느낌이 좋았어요. 주로 유화를 그리는 분위기였지만 저는 드로잉을 배운 적이 있어서 연필 드로잉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영어로 말했어요. 거기에는 대여섯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도 영어를 못하더라고요. 화방 선생님처럼 보이는 나이 많은 여성분이 옆에 약국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통역을 부탁하고 나서야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그림은 말을 잘 못해도 보고 배우면 된다고 하면서 배우고 싶으면 배워보라고 얘기를 전했습니다. 선생님이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제가 터키어 단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겠다 싶어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이 할머니 선생님 보통 분이 아니시더라고요. 영어도 짧게나마 쓰면서 핸드폰 번역기까지 이용할 줄 아시는 거예요. 왓츠업이라는 우리나라 카톡 같은 앱도 깔려 있어서 문자로 일정도 조율할 수 있다고. '대박! 내가 정말 운 좋게 멋진 할머니들을 계속 만나고 있구나! '생각하는 사이, 제 손목을 잡고 아래층 화구 가게까지 데리고 가시더니 필요한 준비물까지 직접 챙겨 주셨어요. 낯선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어 보였고요.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찾아왔냐는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저에게 화방에 나와 그림을 그려 보라는 듯, 따뜻한 눈빛 세례를 주시며 말을 대신하셨어요. 터키 말도 잘 못하는 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할머니 선생님, 그녀의 이름은 Raziye. 드로잉 선생님의 다정함에 저는 말도 못 하게 고마워서 그만 반해버렸답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닌가 봐요. 말을 잘 못하니 아기나 다를 바 없었고 여기 물정 모르는 저에게 할머니 선생님들과의 인연이 오히려 안성맞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 엄마 울 시엄니가 굳게 믿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터키 생활 재정비하고 새롭게 일상을 구성해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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