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 중 재난을 대하는 자세
지난 26일 목요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진도 5.7의 지진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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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있던 날, 나는 아들의 학교 Sports Day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잠시 아이를 기다렸다가 데려가기 위해 같은 학년 엄마들과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땅바닥이 꿀렁거리며 건물이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건물 밖으로 나가보니 아이들도 이미 선생님의 지휘 하에 안전한 장소로 피신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대피한 것을 확인할 때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실리브리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이스탄불 전역이 지진 영향권 하에 있으며 한국 회사들이 많이 있는 시내 고층 건물들도 많이 흔들려서 직원들 모두 대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날 우리 가족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일찌감치 집에 왔다.
터키에 오기 전부터 이스탄불에 수차례 대지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39년과 1999년 두 차례나 리히터 규모 7.8 이상의 강진이 일어나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대재앙이었다. 설마 내가 있는 동안에 지진이 날까 하는 근거 없는 긍정 마인드로 지진 위험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지진을 겪고 나니, 마음이 너무 싱숭생숭했다. 집안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깊이 잘 수 없었다. 아들의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한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을 했고 아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학교로 갔다. 나도 매주 금요일마다 가는 화방에 나갔다. 이 날 화방에 모인 터키 사람들은 모두 지진을 걱정하며 불안을 호소했다. 터키 친구들은 나에게 집에 물과 두꺼운 옷가지 신분증과 현금을 넣은 비상용 가방을 싸놓으라고 조언했다. 이미 터키인들은 큰 지진이 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년 전 이즈미르에서 대지진을 겪었던 친구 Seval은 지진에 대한 경험을 나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자신은 단 한 번의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는 경험을 했다고. 그녀는 가족이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인샬라(신의 뜻)"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수용하는 담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 아들이 학교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남편도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왔다. 세 식구가 모두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가족이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모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지진을 겪고 나니 새삼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주말까지 나는 간헐적으로 심장이 두근댔다. 계속 불안했다. 거실 소파에 누워있다가도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고 핸드폰에 깔아 놓은 지진경보 앱에서 여진을 알리는 알람이 몇 시간에 한 번씩 울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우리는 주말 내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도 꽤 긴장한 한 주를 보냈을 것이고 나는 감기까지 겹쳐서 약을 먹으며 집 안에서 골골댔다. 한국에서 사 온 호떡믹스로 반죽을 해서 만든 호떡에 터키식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를 언저 먹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각자 넷플렉스와 유튜브, 몇 권의 책을 오락거리로 주말을 보냈다.
달이 지면 해가 뜨듯이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불안하다. 땅이 갈라질 수 있다니! 깊은 바닷속에서 계속되는 여진을 알리는 알람이 아침부터 신경 쓰인다. 오늘도 남편은 회사에 가야 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 나도 나의 일이 있다. 우리 가족의 삶의 공간이 이곳에 있는 이상 이스탄불을 떠 날 수 없다. 집 안에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집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느꼈다. 주말에 늘어놓은 책과 노트북, 아이패드를 정리하고 남편의 와이셔츠도 빨았다. 화장실 변기와 수전도 말끔히 닦아내고 주방 개수대에 가장 더러운 부분도 구석구석 닦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침대와 소파 밑까지 청소기를 돌리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시원하게 대청소를 마치고 혼자 야무지게 점심을 챙겨 먹었다.
이제 노트북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자. 나는 지금 스타벅스에서 생각나는 그대로 내 마음을 브런치에 적고 있다. 이렇게 쓰다가 시간이 흐르면 남편과 아이가 돌아 올 시간이 되고 나도 저녁밥을 지으러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진이 나든 나지 않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늘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것이 있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음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법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