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살이의 고충
오늘은 아침부터 안부인사가 많다. 터키 이스탄불은 한국보다 6시간이 느려서 밤과 낮이 한국과는 반대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을 먼저 맞이하는 한국에서 온 카톡부터 확인하게 된다. 오늘따라 엄마, 이모, 친구들까지 잘 있냐며 안부를 물어댄다. 알고 보니 터키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가 줄줄이 한국에 보도되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락한 것이다.
지난 10일 이스탄불 카르탈 구역에서 아파트 붕괴 사건에 있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211168500108?section=search
이어 11일에는 대기업 주재원 피습 사건이 일어났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212003200108?input=1195m
터키 교민 사회는 4,000명 안팎으로 이스탄불만 따지면 더 적다. 아름아름 다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현지인 폭행으로 '코 뼈가 부러진 주재원'이 아는 사람이면 어쩌나!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두려웠다. 함께 있는 주재원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을까를 생각하니 남에 일 같지 않았다.
사건 기사를 보고나서 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남편과 터키에 와서 이곳 생활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생각해봤을 때, 남편이 말하는 터키인과 내가 생각하는 터키인이 아주 다른 종족 같다는 사실이다.
이스탄불에서 한국 중견기업의 법인 책임자로 일하는 남편은 터키인과 일하는 데 곤란한 점이 많다고 했다. 일의 납기를 잘 지키지 않고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며 일을 추진하면 결과가 나오도록 계속 관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한국 사람이 일하는 방식에 비해 너무 허술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내가 만난 터키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친절한 이들이 많았다. 아이와 함께 다니면 어느 나람 사람이냐고 물으며 특히 한국인이라고 하면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고 호감을 표시했다. 한 번은 내가 길을 잘못 찾아서 못하는 터키어로 버스 기사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었다. 버스 기사는 나를 걱정하며 일단 자기 버스를 타라고 했다. 방향이 같으니 타고 가다가 정류장 앞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찾던 버스를 쉽게 탈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내릴 때 버스비를 내밀었다. 버스 기사는 "인샬라(신의 뜻으로)"라고 말하며 친절에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또 나의 첫 터키인 친구 세발(Seval). 그녀는 나에게 정말 친절하게 터키어를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이혼을 하고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느라 형편이 다소 어려운 워킹맘이었다. 힘든 처지에도 외국인인 나를 바라는 것 없이 도와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보답을 좀 하려고 하면 "인샬라"라고 말하며 우리는 신의 뜻으로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친구 사이는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며 내가 준 돈봉투를 극구 사양했다. 내가 본 터키인 중에는 화폐 가치로는 통용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자꾸 호의를 돈으로 갚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왜 이렇게 나와 남편은 다른 시각으로 터키인을 보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만나는 터키인과 남편이 만나는 터키인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별 이해관계없이 사람들과 만났다. 대다수는 영어를 하지 못하거나 아주 조금 할 수 있었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어만 가지고 말을 건네더라도 알아듣지만 터키인들은 영어 단어조차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았다. 터키어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필요한 일상 회화는 몇 마디를 더듬더듬해보지만 터키인과의 대화에는 늘 깊이가 없었다.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내 상황에서 나는 먼저 호의적인 눈빛과 몸짓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남편을 포함해서 주재원들이 만나는 터키인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고 비즈니스로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사람들이었다. 터키에서 일하는 주재원들은 일관성 있게 터키에서 비즈니스는 정말 힘들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들은 "인샬라"라고 말하며 '신의 뜻'만 찾는다고 했다. 말도 엄청 많고 달변이어서 자기 합리화에 능한데 자존심까지 너무 세다고 했다. 이런 말발과 자존심으로 "자기 의지"라는 것을 발휘해서 책임감 있게 일을 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이다. 일을 추진하고 실천하는 면에서는 한국인이 합리적이고 성실해서 터키인은 압도 당할거 같았다.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나와 남편은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터키인을 만났다는 게 명확해진다.
앞에 상황을 종합해서 터키인의 성향에 대해 거칠게 일반화해보면.
첫째 나보다 약자일 때 호의적이다.
둘째 센 자존심과 뛰어난 언변으로 자기변호에 강하다.
셋째 일이나 금전적 이해관계에 있다면 관계에 어려움이 크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터키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인샬라"라는 말이다. 확실히 이 말은 그들의 종교와 관련되어 터키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단어로 보인다. 그들의 사고에는 ‘자기 의지’가 없나? 오직
‘신의 의지’뿐?
하지만 "인샬라"라고 말하며 신이라는 무형의 존재에게 모든 것을 떠미는 듯한 비즈니스 태도를 한국 사람은 납득하기 어렵다. 내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굳이 한국식으로 이해해보려 한다면
교회 다니시는 분은 "아멘"을 외치고
절에 다니시는 분은 "나무아미타불"을 외는데
터키 사람들은 "인샬라"가 입에 붙었다고 해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 단어는 앞으로도 쭉~ 나의 연구대상이 될 듯하다.
생전 처음 해외생활을 하는 나는. 이 곳 생활이 정말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고 있다. 더불어 내 나라의 고마움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이 '헬 조선'이라 다들 성토하지만 해외에 나와보니, '한국인'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는 '한국'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단 안전하다. 누구나 병원에 갈 수 있다. 즐길 콘텐츠가 많고 문화 수준도 높다. 먹고 싶은 것, 그러니까 여기에는 없는 한식을 맘껏 먹을 수 있다. 외국에서 한국사람은 식성이 정말 큰 문제다. 무엇보다도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하고 살 수 있다. ㅜㅜ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심하게 낯설다. 자미에서 하루 5번의 기도하라는 아잔이 울려 퍼지는데, 첫 번째 아잔에 새벽잠을 깨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사는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사는 내내 너무 힘들 것 같아, 책도 읽고 세미나도 참여하면서 틈틈이 공부를 해왔지만 아직도 터키는 정말 물설고 땅설은 곳이다. 한국이 밤이면 여긴 낮이고 터키가 낮이면 거기는 밤이다. 지구본을 봐도 여기는 서양과 중동 사이고.
역사적으로 봐도 터키는 우리와 다르다. 이전에 이 땅을 차지했던 자들을 보자. 히타이트는 철기 시대를 주도했었고 동로마 제국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며 대국의 영광을 누렸다. 이스탄불은 세상으로 통하는 관문이었고 풍부한 자원과 진귀한 물건으로 넘쳤던 땅이다. 오스만 제국은 서유럽까지 쳐들어가 서양을 공포에 떨게 할 만큼 강성했기에 서구인에게는 아직도 '이슬람 포비아'의 잔상이 남아 있다.
터키는 우리나라처럼 '중국의 아우 나라'라든지 '일본의 식민지'같은 피지배의 역사가 거의 없다. 오히려 지배의 역사가 길다. 그만큼 나라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지만 현재는 대한민국이 훨씬 부유한 나라다.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고 전 세계 소녀들이 BTS를 보며 자지러지는. 우리나라는 지금이야말로 역대급 황금기, '니즈 시절'인가 보다.
터키에 대한 긍정의 시선이 우세했던 나는, 오늘따라 한국이 좋아 보인다. 끔찍한 사건 사고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내가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되뇌어 보니 앞에서 말한 남편의 '힘듦'이 이해 갔다. 터키 공기업인 투르크 텔레콤에 인터넷을 신청했을 때 일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설치 연락이 안 와서 매장을 재방문했었다. 신청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며 자세한 이유는 알려주지도 않고 다시 신청하라고만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체 4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1달을 기다려 겨우 설치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이스탄불에서 구입한 압력솥이 고장 나서 AS를 맡겼는데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도 같이 "인샬라"를 외치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4개월이 지났다. 내가 강한 컴플레인 의지를 품고 매장을 4번째로 방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장 난 압력솥을 새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기본 4번은 가야 했다.
차가 없고 길도 잘 모르는 나는 택시를 자주 이용했는데 이스탄불의 택시 기사는 정말 악명이 높다. 직선코스를 놔두고 빙빙 돌아가기 일수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나는 너무 약이 올라서, 한 번은 한국말로 "곧 장 가면 빠른데 왜 자꾸 돌아가."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택시에서 내린 적도 있다.
일을 바로 처리하지 않는 느낌이었고,
꼼꼼히 체크해서 납기 내에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약해 보였으며,
문제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 고객을 기다리게 했다.
얕은수를 써서 남을 골려 먹으려는 습성까지,
90년대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을 겪은 후 20년을 훌쩍 넘긴 한국에선 이미 사라져 가는 풍토였다.
한국 같으면 가당치도 않을 일이......
외국에 살아서 겪는 에피소드인가 싶기도 하고?
외국인 아니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있음직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일이나 돈에 얽힌 이해관계에서 곤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니,
자기 이익과 관련 된 보편적인 세상사인가?
싶기도 하지만.
확실히 한국은 내가 살기 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나는 지금 터키 이스탄불에 사는 걸?
말해 뭐하나! 오늘만 그리워 하자.
내 나라 내 땅에 살던 시절이 지금 이 순간, 무지 그립다.